지난 8일 방송된 <저널리즘 토크쇼J> '조선-동아 100년, 지워진 진실은?'의 한 장면

지난 8일 방송된 <저널리즘 토크쇼J> '조선-동아 100년, 지워진 진실은?'의 한 장면 ⓒ KBS

 
"조선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그동안 지면에 게재된 주요 오보를 소개합니다. 이미 정정된 오보를 포함해 조선일보의 오보를 바로잡고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조선일보에 대한 언론 중재 건수는 2018년 34건, 2019년 31건을 기록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오보를 정정하는 것은 사실 보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원칙에 따라 언론 중재 절차에도 성실하게 임하고 있습니다." (4일 <조선일보>, <김일성 사망 보도 이튿날 오보 판명… 무관한 사람을 성폭행범 오인> 중에서)

100주년 기념일(5일) 하루 전날, <조선일보>가 '조선일보 100년, 100개의 장면' 연재의 일환으로 내놓은 이례적인 사과이자 오류 수정이었다. 여러모로 이례적인 제스처가 아닐 수 없었다. 최근 한국 언론사의 대표적인 오보로 손꼽히는 2013년 8월 29일 <현송월 부부장이 공개총살됐다>를 비롯해 '조선'이 사과에 나선 대표적인 오보들의 면면은 이랬다.

진정성 의심되는 <조선>의 '100년만의 사과'

'김일성 피살설' 보도'(1986년 11월 16일), '김정남, 천안함, 북(北)의 필요로 이뤄진 것'(2012년 1월 17일), '나주 초등생 성폭행 사건 범인 사진'(2012년 9월 1일), '해운대의 성난 파도… 오늘 태풍 카눈 수도권 관통' 사진(2012년 7월 19일) 등등 외에도 2004년 1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 발언 관련 기사나 2016년 7월 우병우 민정수석과 넥슨 거래 기사 등이 '조선'이 스스로 꼽은 대표적인 오보였다.

"조선일보 기자는 취재를 통해 사실을 밝히고 최대한 진실에 접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제작상 실수로 인명·지명이 틀리거나 엉뚱한 수치를 쓰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단순한 오류 이외에도 교차 확인을 게을리 한 잘못된 취재 관행, 기자의 판단 실수, 과욕과 집착 때문에 저지른 뼈아픈 오보(誤報)도 있었습니다. 지난 100년 동안 조선일보는 오보를 정정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기사 게재 후 시일이 너무 지나 정정 기회를 잡지 못하거나 반대로 사실이 즉각 밝혀져 속보 기사로 정정을 대신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조선>은 같은 지면에 위와 같이 <과거의 오류, 사과드리고 바로잡습니다> 짤막한 사과를 싣기도 했다. 과연 이러한 사과에 얼마나 많은 이가 공감할까. 이렇게 질문해 보자. 과연 1980년대 이후 나온 오보들은 <조선>의 변명처럼 "최대한 진실에 접근하려고 노력"한 결과의 산물인가.

과연 저 중대하고 수많은 오보들을 제작상 실수라 변명할 수 있겠는가. 행여 '팩트 확인'이 어려운 대북 관련 기사로 '조선'의 전공이라 할 수 있는 '색깔론'과 진영논리를 대놓고 강화해왔던 것은 아닌가. 노무현 대통령의 검찰 관련 발언에서 볼 수 있듯, 악의적인 왜곡 보도를 두고도 "뼈아픈 오보"라 둘러댈 수 있겠는가.

이를 실감케 하듯, 5일 <조선일보>는 자사 찬양에 해당하는 특집 기사와 대기업 협찬성 기사로 지면을 채웠다. 그러고선 다음 날인 6일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한 협력을 제안했다는 보도를 했고 이에 청와대가 즉각 "친서를 본 적도 없으면서 무슨 의도로 보도했나"라며 정정과 항의에 나섰다. 이런 데도 그 누가 '조선'의 사과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있겠는가.
 
 지난 8일 방송된 <저널리즘 토크쇼J> '조선-동아 100년, 지워진 진실은?'의 한 장면

지난 8일 방송된 <저널리즘 토크쇼J> '조선-동아 100년, 지워진 진실은?'의 한 장면 ⓒ KBS


"오류는 그릇되어서 이치에 맞지 않는 모든 일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지금 보아하니 <조선일보>의 오류가 아니라 아주 명확한 오보에 대해서만 몇 가지 해명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제가 알고 있었던 오류 같은 경우는 가령 5.18 민주항쟁 같은 경우를 일종의 광란의 사태처럼 묘사했었던 것들은 분명히 오류이거든요.

그런데 여기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 다른 말로 하자면 면피성이죠. 굉장히 많은 오류들을 다 이 작은 오보 기사 안에 응축함으로써 마치 모든 오류를 자신이 사죄하고 바로 잡는 것 같은 착각을 주고 있는데 사실은 이게 조선일보가 자주 사용하고 있는 언어유희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8일 방송된 KBS1 <저널리즘 토크쇼 J>에 출연한 강유정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의 일침이다. 이날 <저널리즘 토크쇼 J>는 '조선·동아 100년, 지워진 진실은?' 편은 이렇게 100주년을 맞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얼룩진 100년사를 낱낱이, 정면으로 해부하고 있었다. 그리고 MB 정권의 비호아래 거대 미디어 그룹으로 재탄생한 두 언론사 중 이날 방송에서 눈길이 가는 것은 아무래도 <조선>일 수밖에 없었다.

1985년 친일 언론 논쟁을 벌였던 <조선>과 <동아>
 
 지난 8일 방송된 <저널리즘 토크쇼J> '조선-동아 100년, 지워진 진실은?'의 한 장면

지난 8일 방송된 <저널리즘 토크쇼J> '조선-동아 100년, 지워진 진실은?'의 한 장면 ⓒ KBS

 
<조선>과 <동아>의 친일‧반민족 행위는 재론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이날 방송에 출연한 김종철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수많은 언론계 인사들이 이들의 친일‧반민족 행위를 비판해왔고, 2000년대 들어 '안티조선' 운동과 같은 '조선일보' 폐간 운동이 활기를 띠었던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박정희 정권의 언론통폐합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친 이후 '전두환 정권 찬가'를 부르며 수익을 비약적으로 상승시켰던 두 언론사가 1985년 서로를 향해 '친일 언론' 논쟁을 벌였던 것은 가히 코미디라 할 수 있었고.

문제는 그것이 현재에도 진행형이라 사실일 터. 지난 여름, '노재팬' 운동 국면에서 <조선>의 논조가 이를 고스란히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이날 방송에서 소개된 지난해 11월 '조선'의 < BBC가 일본을 사랑한 이유 >와 같은 칼럼이 대표적이다. 이렇듯, 멀리가 친일‧반민족 행위라면, 군사독재 이후엔 '권력의 시녀'로 승승장구한 '조선'의 전력을 복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김대중 주필이 광주 현장을 담았다는 르포 <무정부 상태 광주 1주>와 12.12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인간 전두환>은 전두환 정권 이후 <조선>의 지금을 있게 한 보석(?) 같은 기사라 할 수 있다.

이날 <저널리즘 토크쇼 J>는 지난 2월 보도된 <조선일보 100년은 불의한 시대와의 투쟁>이라는 <조선>의 명불허전(?)과 같은 자사 찬양 기사를 소개하는 한편 한국 언론사에 전설적으로 회자되는 <조선>의 두 기사를 함께 소개하기도 했다.

피해자 강기훈의 끝나지 않는 분노    진짜 문제는 <조선>의 악의적인 왜곡보도와 오보들로 고통 받은 이들의 '오늘' 또한 진행형이란 사실이다. 노태우 정권이던 1991년 '유서 대필'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2015년 재심을 통해 무죄를 확정 받은 강기훈씨도 그 중 하나였다. 이날 방송에서 전화 인터뷰에 나선 강기훈씨의 <조선>을 향한 분노는 여전히 생생했다.

"사실은 전체 정국을 주도한 신문이 조선일보였고 나머지 신문이나 방송들은 그것을 따라가는 어떤 그런 형태였어요. 그러니까 뭐 처음부터 끝까지 조선일보는 이 사건과 같이하고 있었다고 생각을 하고요. 화나는 이유야 한두 가지겠습니까? 유서대필, 자살 방조 이런 단어들이 갖고 있는 어감은 제가 느끼기에는 살인마, 이런 정도 급의 어떤 느낌이었거든요. 그런데 이게 검찰발 속보로 계속 속보 형식, 그러니까 경쟁을 하듯이 보도가 되고 있었어요.

(중략) 그런 (치가 떨리는) 말을 쓰고 무고한 사람을 잡아다 몇 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시달리게 한 일들에 대한 반성이 먼저라고 생각을 하고요. 제 사건 이후로도 수많은 이런 비슷한 케이스들이 있었어요. 특히 검찰과 언론의 어떤 유착에 의한 권력의 편에 선 거죠. 그래서 사실을 왜곡하고 심지어는 조작을 하고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고 그러면서 권력을 유지해 왔던 그런 통한의 역사, 이런 것들이 어느 하나 청산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강기훈씨는 무죄 확정 판결 직후 '사설'을 통해 "유서를 대신 썼는지 안 썼는지에 대한 진실은 강기훈만 알 것이다"라고 주장한 <조선>을 향해 "(이 모든 사건을 조작했던 당사자인 조선일보가) 이런 말을 쓸 수 있다는, 이게 언론 맞습니까?"라고 반문하며 "방송 3사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신문들, 당시의 대부분의 신문들이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꼬집기도 했다.

그리고, 임은정 검사의 진정성 어린 일침
 
 지난 8일 방송된 <저널리즘 토크쇼J> '조선-동아 100년, 지워진 진실은?'의 한 장면

지난 8일 방송된 <저널리즘 토크쇼J> '조선-동아 100년, 지워진 진실은?'의 한 장면 ⓒ KBS

 
"저는 강기훈씨 인터뷰 중 서울신문과 한 18년도 2월 2일자 인터뷰가 굉장히 좀 기억에 남는데요. 왜냐하면 '얼마나 재미있어요, 연쇄된 죽음에 배후가 있다는 둥, 자살할 사람을 뽑는다는 둥, 검찰이 흘리면 언론은 사실인 양 보도해요. 보도가 나가면 또 검찰은 보도대로 수사하죠' 그 다음 말이 굉장히 의미심장합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요?'라고 말씀하시는 게 너무 가슴에 남습니다. 저는 현재 언론의 형태라든가 그리고 언론과 정치 그리고 검찰의 유착 관계라는 게 끊어지지 않는 이상 새로운 강기훈씨가 계속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언론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강기훈씨의 뼈아픈 인터뷰를 접한 강유정 교수는 이렇듯 언론과 권력의 유착에 따른 새로운 피해자의 출현을 우려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러한 피해자들은 지금도 속출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종의 내부고발자로서 검찰개혁의 일선에 나서고 있는 임은정 울산지방검찰청 부장검사도 그 중 한 명일 터. 임 검사는 8일 <경향신문>의 <언론에 묻다>란 칼럼을 통해 과거 2012년 과거사 재심사건 무죄구형을 강행하며 "법과 원칙에 따라 검사직을 수행했던" 자신을 "얼치기 운동권 검사로 매도했던 ('조선'의) 2013년 첫 사설과 기사들이 아직 제 심장에 비수처럼 박혀 있다"고 밝혔다.

100주년을 맞아 오보를 사과한 '조선'이 자신이나 오보의 피해자들에게 사과하지 않은 것이 "실망"스럽고 "허탈"하다면서. '조선'과 한국 언론을 향해 "언론에 언론다움을 요구합니다"라던 임 검사의 칼럼 역시 강기훈씨의 일침만큼이나 서슬이 퍼랬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렇게.

"신문윤리강령과 윤리실천요강이 있더군요. 금번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감염병 등 질병 재난 등에 대한 취재와 보도 기준을 정한 재난보도준칙도 있습니다. 곡필 언론으로 고통스러울 때 혹시나 싶어 규정들을 찾아보다가 슬펐습니다. 검찰이 법을 지키지 않는 것처럼 언론도 마찬가지라는 걸 알았으니까요. 공익의 대표자여야 할 검찰이나 사회의 공기(公器)인 언론이 부조리의 데칼코마니 같다는 건 비극입니다.

권력자들에 대한 질문은 언론의 권리이자 의무지요. 또한 언론은 시민인 독자들에게 답하고 오보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의무 역시 있습니다. 이에, 언론에 묻습니다. 검증과 확인을 제대로 하고 있습니까.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거나 부풀리는 등 편파적이거나 불공정하게 취재하고 있지 않습니까. 권력 감시자인 양하다 권력화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워왔다. 피해자가 납득하고 공감하지 않는 것은 사과가 아니라는 것을. 가해자의 자기만족을 위한 사과는 2차 가해일 뿐이라는 것을. 이날 <조선>(과 <동아>)의 역사를 모르는 세대들에게 더 없이 유익했을, 작금의 지상파 보도환경으로서는 꽤나 용기를 낸 <저널리즘 토크쇼 J>가 '조선 100주년'에 되새겨 준 교훈은 이것 아니었을까. 
조선일보 저널리즘토크쇼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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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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