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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제101주년 삼일절(3.1절)이었다. 예년 같았으면 수많은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규모로 기념식이 열렸을 테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기념식은 조촐하면서도 조금은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그런 탓에 "국민 여러분께 기쁜 소식을 들려드리겠다"며 홍범도 장군 유해의 국내 봉환 소식을 전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깜짝 발언은 잠시나마 우울했던 기분을 전환시켜주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일본군 정예부대를 맞아 승전을 거둔 주역 중 한 명인 홍범도 장군은 무장(武將) 독립운동가의 상징과도 같은 위인이다. 그런 분의 유해가 지금까지 이역만리 카자흐스탄에 잠들어 있다는 사실은,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찜찜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이제 또 한 분의 독립운동가를 국내로 모셔오게 됐으니 매우 기쁘고 다행한 일이다. 특히나 올해는 봉오동·청산리 전투 100주년을 맞는 해라 그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날으는 호랑이' 홍범도 장군
 "날으는 호랑이" 홍범도 장군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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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반민족행위자들 곁이어야만 하는가

복수의 언론 매체에 의하면 정부에서는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꼭 현충원이었어야 했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현충원은 대한민국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이 잠든 신성한 공간이지만, 동시에 친일반민족행위자·반민주세력 등 역사의 죄인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생존 독립운동가들조차 사후 안장을 거부할 정도로 문제가 많은 공간이다.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친일파 7인이, 국립대전현충원에 4인의 친일파가 각각 잠들어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중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김석범, 백홍석, 신현준, 송석하 4인의 이력을 살펴보면 기가 막히다.

이들은 모두 '일본군' 출신이다. 특히 김석범과 신현준은 독립군 토벌로 악명 높았던 '간도특설대'의 일원이었다. '정부 공인' 친일파는 4명이지만 이들 외에도 김대식, 유재흥, 이형근, 김창룡 등 해방 전까지 일본군에 몸 담았던 이들이 대전현충원에 잠들어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대전현충원에 잠든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수는 28명에 이른다고 한다.

특히 일본 관동군 헌병 오장(伍長)출신의 김창룡은 직접 나서서 적발한 항일조직만 5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해방 후 이승만 정권에 기생하며 구사일생으로 부활한 그는 대한민국 육군 특무대장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백범 김구 선생 암살의 배후 인물로 지목된 인물이기도 하다.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잠든 국립대전현충원 장군묘역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잠든 국립대전현충원 장군묘역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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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현실이지만 지금의 현충원은 '독립운동가들과 반민족행위자들이 공존하는 기괴한 명당'이다. 지금 홍범도 장군을 대전현충원에 안장한다면, 독립군을 토벌했던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발 아래 독립군 사령관을 눕히는 꼴이다. 이 사실을 안다면 홍범도 장군 역시 "차라리 나를 지금 이대로 잠들게 놔두오!"하고 역정을 낼지도 모를 일이다.

제일 좋은 방법은 현충원에 잠든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묘를 모두 '파묘'하고 오롯이 독립·호국·민주 인사들의 묘역으로만 재단장하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홍범도 장군의 대전현충원 이장을 반대할 까닭이 없다.

그러나 이 방법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현충원에 잠든 친일파들을 모두 파내라는 시민단체들의 구호는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원칙 아래 수십 년째 공허한 메아리로 울려퍼지고 있다. 그런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지금도 친일반민족행위자들로 지목된 이들의 묘 앞에는 매년 '조화'가 놓여 있다.
 
국립대전현충원 장군1묘역에 잠든 김석범의 묘. 그는 간도특설대 출신 친일반민족행위자다.
 국립대전현충원 장군1묘역에 잠든 김석범의 묘. 그는 간도특설대 출신 친일반민족행위자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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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화' 추진 중인 효창원에 안장하는 게 어떨까

대안은 있다. 서울 용산의 효창원(효창공원)에 안장하는 것이다. 효창원은 백범 김구 선생이 해방 직후 '독립운동가들이 영원한 안식을 취할 수 있는 추모의 전당'으로 조성한 곳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이동녕·차리석·조성환)들과 네 분 의사(안중근·이봉창·윤봉길·백정기)들의 묘가 이곳에 있으며, 김구 선생 당신도 안두희의 흉탄에 서거한 뒤, 이곳에 함께 잠들었다.
 
효창원 4의사(안중근·이봉창·윤봉길·백정기)의 묘역
 효창원 4의사(안중근·이봉창·윤봉길·백정기)의 묘역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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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박정희 정권의 탄압으로 지금은 작은 공원으로 전락해 버렸지만, 다행히도 작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문재인 정부와 서울시는 효창원 성역화의 일환으로 '효창독립100년공원'(가칭)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새롭게 조성될 효창독립100년공원에 홍범도 장군을 안장하는 것은 친일반민족행위자 한 명 없는 가장 순결한 공간에 모실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다. 동시에 무장독립운동사의 상징과도 같은 위인을 모심으로써 효창원 성역화의 격을 한 단계 더 높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에 나는 다시 한 번 정부에 촉구한다. 정부는 심사숙고하여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안장될 장지를 결정해 달라.

태그:#홍범도, #문재인, #현충원, #효창공원, #효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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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한국근대사 전공) / 취미로 전통활쏘기를 수련하고 있습니다.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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