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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지끈거리고 콧물이 나는 등의 증세가 나타날 때 찾아먹는 감기약이 있다. 조그만 병에 든 그것을 마시면 좀 전까지 몸을 괴롭히던 증세들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경험을 여러 번 했기 때문이다. 

책 중에도 이렇듯 효과 좋고 맛까지 좋은 약이 있다. 타인과 자꾸만 의도하지 않은 갈등이 생겨 마음에 화와 피로가 쌓이던 중에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된 류시화 작가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가 그랬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나쁜 일들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 수 있다고, 전화위복이 되어 언젠가는 좋은 무엇으로 나를 기쁘게 할 수도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파도가 후려친다면, 그것은 새로운 삶을 살 때가 되었다는 메시지이다.'

첫 문장은 마치 혜안 있는 의사의 정곡을 찌르는 진단 같았다. 고통스러운 다양한 증세만을 호소하던 환자가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며 자신의 병을 이해하고 부지불식간 원인이 됐던 행동도 돌아보게 되는. 이미 치유가 시작된 느낌. 

'외부 상황에 대한 지나친 해석으로 내면의 전투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일은 인간 심리의 흔한 측면이다. (...) 우리는 영원하지 않은 문제들에 너무 쉽게 큰 힘을 부여하고, 그것과 싸우느라 삶의 아름다움에 애정을 가질 여유가 없다. 단지 하나의 사건일 뿐인데도 마음은 그 하나를 전체로 만든다.' 

'내가 이러고 있었네. 내 귀한 시간과 에너지를 전혀 엉뚱한 데 쓰고 있었네.'

최근 몇 달 이런 상황이 이어졌다. 일례로 유명한 관광지 한 옷가게에서 약 10만 원을 주고 산 외투 한 벌이 몇 번 입지도 않았는데 온통 보풀이 일어 더는 입고 나갈 수 없는 상태가 됐다. 판매업자에 환불을 요구하니 맘대로 하라며 배짱을 부렸다. 돈보다 그 뻔뻔한 태도에 화가 났다. 

그래서 말과 글로써 업자의 인격을 거듭 비난하고 전문 기관에 의류 심의를 요청, 객관적으로 원단에 하자가 있다는 판명을 받아 옷값을 환불 받게 된 후에도 거기서 멈추지 않고 소송까지 하려 들었다. 스스로 반성하지 않는 판매상에 더 큰 피해보상을 요구함으로써 어떻게든 자기 잘못을 체감하게 하고 싶었다. 

그러다 자각했다. 시작은 내가 안 했더라도 하나의 문제 상황에 지나치게 집착해 그것을 확대 해석하므로써 내게 고통을 더하고 있는 게 다름 아닌 나라는 것을. 불량 제품을 팔고 나몰라라 하는 상인도 잘못이지만 그런 상대를 날카로운 언어로 욕하고 여러 방식으로 어떻게든 괴롭혀 보려는 내 마음의 옹졸함과 폭력성도.

티베트어에 '셴파'라는 단어가 있다. 대개는 '집착'으로 번역하지만, 정확히는 물고기가 낚싯바늘에 걸리듯 '붙잡히는 것' 혹은 '생각에 사로잡혀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의미 (...) 나날의 삶에서 셴파는 흔하게 일어난다. 누군가의 비난, 무례함, 불친절, 나의 잘못된 판단과 실수 등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영혼을 괴롭힌다.
 
 류시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 류시화 공식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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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의사에게 명약을 받고도 제대로 먹지 않으면 무슨 소용. 책을 통해 얻은 귀한 깨달음 또한 삶으로 옮기지 않으면 무용지물일 뿐. 결국 소송 계획을 철회하고 옷값만 환불받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판매상을 향한 미움도 내려놓았다.  

지난해 내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규정을 무시한 채 술담배에 고성방가를 즐기다 이를 지적당하자 허위신고를 해서 나를 괴롭힌 여행자들, 이웃이라 믿고 샀지만 고철에 가까운 중고 가전제품을 속여 판 또다른 판매상, 매번 자기집 쓰레기를 복도에 내두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이웃에 대해서도 원망을 거두기로.  

구차하게 의존하는 것, 시도와 모험을 가로막는 것을 제거해야만 낡은 삶을 뒤엎을 수 있다 (...) 나는 지금 절벽으로 밀어뜨려야 할 어떤 암소를 가지고 있는가? (...) 내 삶이 의존하고 있는 안락하고 익숙한 것, 그래서 더 나아가지 못하게 나를 붙잡는 것은? (...) 스스로 그 암소와 작별해야 한다. 삶이 더 넓어지고 더 자유로울 수 있도록. 

세상과의 불화가 나날이 늘어날 때 혹시 기쁨의 근원이 내 안에서 줄어든 것이 아닌가 의심해 봐야 한다. ... 삶에 대한 신뢰와 열정이 멈춘 것은 아닌가도.


그리고 모처럼 차분한 상태에서 나와 내 삶을 다시 생각했다. 진정 나이고 싶은 나. 내가 살고 싶은 삶에 대하여. 그러자 몇 달에 걸쳐 타인과의 불화가 있기 전 이미 나와 내 삶이 삐걱거리고 있었음을 알았다. '늙은 염소'가 주는, 배고픔을 간신히 달랠 만큼의 우유와 치즈에 의지하며 그 익숙하고 작은 만족에 안주하면서 실은 그런 나 자신을 한심해하며 의심하고 있었던 것. 

'한 가지 삶의 방식에만 매여 거기에 속박되는 것은 존재하는 것일 뿐, 사는 것은 아니다.  (...) 자연은 우리를 자유롭고 속박되지 않는 존재로 이 세상에 내어놓았는데,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특정한 지역에 가둬놓는다.'

앞서 찾은 책보석, 몽테뉴 수상록 선집 <나이듦과 죽음에 대하여>에서도 같은 깨침을 얻은 바 있다(관련기사 : 늙음, 이 낯선 손님과의 괜찮은 동거를 원한다면). 나는 여러 번 각성하여 스스로 달라질 것을 다짐하고도 계속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하늘을 날고 싶어 하면서 날개를 펼쳐 나는 연습은 하지 않고 계속 땅만 보며 산 것과 같은. 땅에 쌓아둔 것들에 집착하면서.  

의지 약한 자신을 데리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인생의 가장 고귀한 수행

추구의 여정에는 두 가지 잘못밖에 없다. 하나는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는 끝까지 가지 않는 것이다. 


8년 전 나름의 큰 용기와 벅찬 설렘으로 지금의 자리에 다다랐다. 그리고 더이상 가슴이 뛰지 않을 만큼 충분히 누렸다. 낯설음이 익숙함이 되고 익숙함이 지루함이 되기까지. 이제 또다른 세상과 영감을 만나러 갈 때가 됐다. 그러려면 고맙고 정든, 하지만 나의 발길을 붙드는 '늙은 염소'와 작별을 해야 한다. 

그 첫 시작으로 나의 집을 처분하기로 했다. 그러면 운영하던 게스트하우스도 잠정 휴업에 돌입하게 된다. 지난 8년간 재미와 보람에 원하는 삶을 산다는 특권에 비하면 절대 적다 할 수 없는 돈까지 벌게 해준 사랑스러운 직업. 하지만 지금으로선 공허한. 그리고 보증금을 마련하려 무리해 빌린 돈을 갚고 마지막 남는 얼마쯤의 돈이 여비가 될 거다. 

그리고 이제부터의 여행은 시작보다 어디든 '끝까지' 가는 데 의미를 두고 최선을 다하기로. 나는 아직 한 번도 '끝까지' 가본 적이 없다. '이렇게 힘들고 외롭고 더이상 왜 떠돌아다니는지 이유를 모르겠어' 하고 돌아온 적이 여러 번이지만 결국에 그 모두는 최선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끝도 아니었으며. 

새로운 여정이 어떻게 얼마 동안 계속될 지 모르지만 확실한 건 나는 지금 이쯤에 멈춰서 죽음까지 지루한 삶을 살 생각이 전혀 없고, 그렇기에 어떤 질병이나 사고, 늙음이 나를 움직일 수 없게 하기 전에 어서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가능한 한 계속해야 한다는 것. 자유롭게 기쁘게 끈기있게. 
 판화_ Yuko Hosaka
 판화_ Yuko Hosaka
ⓒ 류시화 공식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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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지은이), 더숲(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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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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