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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르베다 아카데미에서 연중 가장 큰 프로그램인 '사다남'에서 학생들과 모여 앉아 고전을 낭송하고 있는 모습.
▲ 학생들과 고전 낭독을 하고있는 모습. 아유르베다 아카데미에서 연중 가장 큰 프로그램인 "사다남"에서 학생들과 모여 앉아 고전을 낭송하고 있는 모습.
ⓒ 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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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4일은 내가 태어난 날이다. 그리고 근 10년 동안 한국에서 보다는 인도에서 생일을 맞이한 기억이 더 많다. 나는 이 날이 조금 불편하다. 생일이라고 야단법석 떨고 싶은 마음도 그렇다고 여느 날처럼 그냥 지나쳐 보내버리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항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어느 정도 선에서 조금은 특별하고 즐거운 날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고 뭔가 대단한 준비를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냥 생일 아침 몇몇을 방으로 초대해서 차와 커피 그리고 전날 사온 작은 케이크를 나눴다. 반갑게도 전에 함께 공부하던 친구가 며칠 이곳에 들렀고, 그 친구도 초대해 지나간 추억들을 회상하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이곳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친구들이 있는 그룹 채팅창에 생일이라는 말과 함께 점심을 먹자는 간략한 메시지를 남겼다. 물론 각자 먹을 음식은 각자 가지고 와야 한다. 그렇게 십여 명의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며 즐거운 생일을 보냈다. 전혀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제는 내가 내 생일을 즐겁게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 같다.

생일을 즐겁게 받아들일 준비

2월 5일이 되었다. 이 날 스리랑카에서 온 친구의 생일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이 친구가 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이미 졸업하고 떠난 이후라 학교에서 마주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벵갈루루(Bangalore)에서 수련의로 근무하는 기간에 외국인 학생들이 우리 병원에 공부하기 위한 목적으로 10일 정도 방문했을 때 만났다.

그때 간혹 이야기를 나누고, 공부하는 것을 조금씩 도와주기도 했기에 비교적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순수하고 선한 친구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무엇인가 해주고 싶었는데 좀처럼 생각이 나지 않았다. 뭔가 특별하고 기억에 남을만한 선물을 하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타로 카드가 생각났다. 나는 종종 친분이 있는 타로 마스터에게 타로를 보러 간다. 저번에 그분을 뵈었을 때, 타로 카드를 하나 사서 조금씩 해보는 것도 좋겠다 라는 말을 듣고 종종 혼자 그 날의 카드를 뽑아보고 그 의미를 읽어본다. 이곳에 와서 느낀 거지만, 많은 친구들이 타로를 봐주면 좋아하더라. 그래서 기회가 되면 타로를 봐주곤 한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내가 가지고 있던 책갈피 한 장을 뽑아서 그곳에 정성스러운 글을 써넣었다. 한 손에는 책갈피를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타로 카드를 들고 그 친구의 방으로 향했다. 미리 연락을 해놓았기에 생일을 맞이한 친구와 케냐에서 온 다른 친구가 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과 책갈피를 전했다. 그리고는 함께 둘러앉아 타로 카드를 펼쳤다. 전부터 한 번 해보고 싶었다며 호기심을 보인다.

카드를 펼치고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랬더니 의외로 "내년에는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나왔다. 의외의 질문이었지만,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그 친구가 뽑은 카드 두 장을 펼쳐놓고 그 의미를 가만히 읽어줬다. 내가 타로 카드를 하는 방식은 굉장히 간단하다. 질문을 하게 하고 그냥 카드를 한 장 내지 두 장 고르게 한다. 그리고 그 카드가 가진 의미를 읽어준다. 다 읽어주자 무슨 의미인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전체적인 내용인즉슨, 먼 미래를 바라보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순간에 더 집중하고 즐기라는 의미의 카드가 나왔다. 언뜻 약간 눈시울이 붉어지는 듯 보이다가 이내 평정을 되찾은 듯싶었다. 

이곳에서 아유르베다를 공부하고 생활하는 학생들은 환경적, 때로는 육체적 그리고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는다. 이유야 셀 수 없이 많다. 많은 양의 공부, 인도의 교육 시스템이 '권위적이고 주입식'이라 외국에서 온 학생들에게는 많은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하고, 수업의 질 또한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가 많다. 문화적 차이, 때로는 모국에 있는 가족이 겪는 어려움, 경제적 어려움, 외로움, 고립감, 우울 등 많은 변화를 겪는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의 원인을 흔히 인도라는 나라와 잠나가르라는 도시에서 오는 문제로 치부해버린다. 그렇다면 과연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분명 비슷한 문제로 고생할 것이다. 애초에 이곳에 온 이유 또한 무언가 부족했기에 더 배우고 깨우치기 위해 온 것이 아닌가. 계속해서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지금, 되도록 함께, 즐겁게

내가 무엇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냈는지 돌아봤다. 여러 가지 활동들을 해왔고, 그러한 모든 활동들을 통해 배움을 얻고 그로 인해 조금씩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중 지금 할 수 있고, 되도록 함께 그리고 즐겁게 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책을 읽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지난 6개월 동안 독서 모임 '씽큐베이션'에서 활동하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생각을 나누는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경험했기에 생각해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책을 읽으며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르고 있는지 알게 되고, 내가 알고 싶어 하는 대부분이 책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글을 쓰며 책을 읽고 내가 무엇을 이해했고, 무엇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마지막으로 서로의 글을 읽고 토론을 진행하면 질이 다른 이야기가 오고 간다. 그 안에서 오는 배움과 즐거움은 글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충만한 감정을 주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변화를 할 수 있는 계기와 원동력을 심어준다. 내가 지금 꾸준히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는 힘이 그러한 경험에서 온다. 지금 이 순간 조금 힘들더라도 견뎌내면 발전하고 그것이 내 실력이 된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이 내 삶을 충만하게 만들어준다. 나는 이곳에 있는 친구들에게도 그러한 배움을 나누고 싶었다. 

지난 일요일 스리랑카에서 온 친구와 케냐에서 온 친구로부터 점심 초대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미리 사놓은 책 두 권을 가방에 넣고 갔다. 점심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공부와 생활에서 오는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둘에게 함께 책을 읽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그간의 경험과 변화들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덧붙이며 이야기를 하니 흔쾌히 함께 하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나는 가방에서 책 두 권을 꺼내어 나눠주었다. 그리고 이야기했다. "이게 우리가 이번 달에 함께 읽을 책이야" <Atomic Habit(아주 작은 습관의 힘)>. 어떻게 하면 나쁜 습관을 버리고 좋은 작은 습관들로 하루하루의 삶을 채울 수 있을지에 대한 내용이 담긴 책이다. 전에는 한국어로 번역된 책을 읽었으니, 이번에는 함께 원서를 읽어나갈 생각이다. 그래야 토론을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한 달 동안 이 책을 읽으려면 하루 11페이지만 읽으면 된다. 기껏해야 30분이면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시간이 없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모두가 동의했고, 우리는 우리들의 독서모임의 이름을 정했다. 바로 'Butterfly Book Club(나비 독서 모임)'.

어떤 문화에서 '나비'는 삶에서 다시 한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증명으로의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그리고 번외로 얼마 전에 있었던 신입생 환영파티에서 윤도현의 "나는 나비 (Flying Butterfly)"를 부른 것이 나비를 생각하는 단서가 되기도 했다. 어찌 됐든 그렇게 이곳 인도에서 'Butterfly Book Club'의 첫 발을 디딘다. 이것을 시작으로 서서히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고 더욱 많은 친구들이 함께 책을 읽을 날을 꿈 꾸며 우리의 작은 모임은 시작되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 블로그 등에 중복게재 합니다.


태그:#인도에산다, #북클럽모임, #아유르베다,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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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부터 인도 아유르베다 의학대학 아유르베다 전공. 인도 아유르베다 병원에서 수련의로 근무 후 동 대학원 고전연구학 석사를 마치고 건강상담, 온/오프 특강을 통해 활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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