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드소마> 포스터

영화 <미드소마> 포스터 ⓒ (주)팝엔터테인먼트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첫 장면은 밤이었고, 삐죽 튀어나온 지붕이 무성했다. 무언가 호흡하며 마음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분명 기괴했다. 전작 <유전>에서처럼, 모든 것이 통제된 세상 속에 나만 홀로 초대된 느낌이라고 할까. 감독은 또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기에 못내 내키지 않았던 나를 초대하는 것일까.

전화벨 소음이 울린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어느 지붕 아래 주인공 대니(플로렌스 퓨)가 있다. 전화를 받지 않는 동생에게 전화를 거는 대니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온다. 애인인 크리스티안(잭 레이너)에게 전화하니, 그는 너무 걱정말라며 무심하게 말을 뱉는다. 그에게 대니는 불안감과 의존성을 버리지 못한 '귀찮은 존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크리스티안의 눈치를 살핀 대니는 그만 말을 줄인다.

이후, 대니의 부모와 동생이 한집에서 모두 죽은 상태로 등장한다. 대니는 슬픔에 목놓아 울고, 크리스티안은 그녀를 품에 안고 함께 위로한다.
 
초반부 모든 장면은 어두운 밤에서 시작한다. 눈이 내리는 겨울, 대니는 가족을 잃고 혼자가 된다.
 
펠레(빌헬름 브롬그렌)는 스웨덴의 작은 마을 호르가(Harga)에서 열리는 90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9일간의 축제 '미드소마'에 대해 설명한다. 펠레의 이야기를 들은 크리스티안과 친구들은 '미드소마'에 가자고 이야기한다. 대니는 크리스티안이 친구들과 함께 자신에게 언질도 없이 스웨덴 여행을 가려 했던 것에 실망했지만, 그래서인지 대니 또한 그들을 따라나서기로 한다. 딱히 내키는 여행은 아니었겠지만, 대니가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정말 크리스티안과 이별을 하게 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인 것처럼 느껴졌다.

대니, 크리스티안, 마크, 조쉬는 펠레의 주도를 따라 스웨덴에 간다. 가족을 잃은 대니의 슬픔은 누구도 관심 없다는 듯 시간은 흐르고, 아무렇지 않게 그들은 스웨덴에 와있다.
 
그들이 도착한 호르가 마을은 환한 여름이었다. 너무 밝아서 오히려 기괴한 날씨였다. 모두가 하얀 옷을 입고 있고, 꽃과 풀, 나무가 가득한 들판에서 행복만을 꿈꾸는 듯 마을 사람들 얼굴엔 미소가 묻어있다. 대니가 살던 곳과 너무나 대비되는 날씨와 배경에 살짝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무언가 이상하다고 말할 순 없었다. 그저 호르가 마을이 너무 아름다워서 주춤했던 것뿐.
 
 <미드소마> 스틸컷

<미드소마> 스틸컷 ⓒ (주)팝엔터테인먼트

 
어디든 사람 사는 마을인 것인데, 나는 호르가 마을을 보자마자 이 영화는 무엇을 말하든 가감 없이 쏟아부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예상처럼, 공포는 내가 자각한 곳에서부터 시작됐다. 넋 놓고 있다가 당하는 느낌이 아니라, 어떤 잔인한 장면이 나올지 알고 있는 중에, 정말로 그런 장면을 보여주는 식이었다. 예상한 것을 마주하게 됐을 때, 처음에 살짝 엄습했던 공포는 떠날 줄 모르고 계속 들러붙었다.

축제의 첫날, 72세 이후가 되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그 마을의 전통 아래, 두 명의 노인이 절벽에서 투신한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 고꾸라지는 새처럼 날아내린다. 결국 노인들은 바닥에 놓인 돌에 머리가 찧이고, 마을 사람들은 아직 죽지 않은 노인의 얼굴을 쳐 대신 죽여주기까지 한다. 죽은 노인들의 이름은, 새로 태어나는 아기들이 물려받는다. 이게 이 마을의 축제 즉, 문화였다.

의식을 본 대니와 그의 일행들은 (마을로 가는 길에 새롭게 만난 영국인 커플 사이먼과 코니까지) 경악한다. 이것은 살인행위나 마찬가지라며, 호르가 마을의 문화를 혐오한다. 사이먼과 코니는 이곳에 있을 수 없다며 마을을 떠나려 하고, 마을 사람들은 사이먼이 먼저 온 기차를 타고 역으로 가버렸다며, 코니를 속인다. 이후, 사이먼과 코니는 한동안 카메라에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는 단 한시도 긴장을 놓지 않는다. 물론 보는 관객들만 긴장한채 영화를 따라가는 것일 수도 있다. 감독은 어쩌면,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공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계속해서 밝은 배경에 기괴하도록 친절해보이는 마을 사람들을 우리 앞에 배치시키고선, 투신하는 노인과 환각 성분이 들은 음료를 마시는 대니와, 알몸으로 있는 여자들 앞에서 대니가 아닌 여자와 성관계를 하는 크리스티안을 들이민다. 심지어 마지막엔, 살아있는 사람을 포함해서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을 모아 화형식을 치루는 장면까지. 우리가 아는 공포를 벼랑끝까지 몰아붙여, 절대로 후퇴하지 않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드소마> 스틸컷

<미드소마> 스틸컷 ⓒ (주)팝엔터테인먼트

 
혐오와 증오와 질투와 역겨움이 인다.
 
그럼에도 주인공 대니에 이입해 영화를 관람하면 약간은 위로받는 부분도 있다. 대니에게 줄곧 차갑고 무심하던 크리스티안이 결국 마을 사람들의 꾀임에 넘어가 다른 여자와 성관계를 치룬다. 그것도 하나의 의식처럼 진행되지만 결국 그것은 간음이고, 대니에 대한 배신이다. 그 장면을 목격한 대니는 엄청난 충격에 빠져 울부짖고, 그런 대니를 마을 여자들이 둘러싸고 함께 위로하며 울부짖는다.

이 장면에서 대니라는 인물이 무조건 공포에만 노출된 인물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줄곧 그녀를 은근히 무시하던 애인에게서 벗어나, 더러운 소굴로 들어간 그를 이젠 대니가 내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을의 메이퀸(여자들끼리 메이폴이라는 나무를 중심으로 도는 놀이에서 일등을 한 사람.)이 된 대니가 마지막 선택권을 쥐게 된다. 미드소마의 화룡점정인 마지막 화형식에 참여할 사람을 고를 수 있게 된다. 대니는 주저하는 듯 보였지만, 크리스티안을 선택한다. 그는 곰가죽을 뒤집어 쓰고 움막 안에 들어간다.

외부에서 온 네명의 사람과, 처음 투신한 노인 두명, 마을에서 자원한 두명과 대니가 선택한 크리스티안까지 총 9명의 사람이 화형당한다. 마을 사람들은 불타는 움막을 보며 함께 울부짖는다. 그들이 믿는 신인지 신념인지 모를 것을 위해 제물을 받치는 행위다. 이것이 호르가의 축제이자 문화, 미드소마다.

마지막 장면엔 화형당하는 크리스티안을 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 대니의 얼굴이 클로즈업됐다.

이 영화가 대니에 대한 위로극인지 잔혹한 살인극인지는 보는 사람마다 관점이 달라질 수 있지만, 난 두 가지 중에 대니에게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싶다. 대니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어디서도 위로 받지 못했었다. 그 후 자신을 무심하게 대하던 연인을 버림으로써 줄곧 그녀에게 들러붙던 초라한 마음을 벗어버렸다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물론 그 방식이 잔혹함의 극치일 수 있겠지만, 대니를 진정 위로해준 것은 함께 울어준 호르가 마을의 여자들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대니에겐 더 잔인했을지도 모른다.
 
 <미드소마> 스틸컷

<미드소마> 스틸컷 ⓒ (주)팝엔터테인먼트

 
호르가 마을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난 이 영화가 무심한 타인과 세상에 상처받은 사람이 사이비 문화 혹은 종교에 빠지는 장면을 그린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타인에게서 얻을 순 없겠지만, 타인이 아니라면 절대로 얻을 수 없는 것도 분명 있다. 그중 하나가 난 '이해'와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기연민에 가깝다. 설령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본인은 본인을 구태여 이해하려 한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자기애의 일부다. 하지만 타인에게서 오는 이해와 존중은 결코 얻어내기 쉽지 않다. 그것을 누군가에게 시도하는 타인조차 사실 없다. 그럼에도 그들에게서 받을 수 있는 작은 온기가, 이해의 조각이, 절실히 필요할 때가 있다. 내가 나에게 해주는 위로 말고도, 다른 누군가에게서 들을 수밖에 없는, 내게 없는 톤의 목소리로 말이다.
 
환각제처럼 비틀린 영화 속으로 우리를 꾀어내 듯, 기괴하게 아름다웠던 영화였다.아리 에스터 감독은 앞으로 또 어떤 아름다운 잔혹함으로 우리를 초대할까.
 
미드소마 아리에스터 플로렌스 퓨 유전 오컬트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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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기사와 문학 그리고 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저의 부족한 생각과 관찰을 통해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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