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11일 NCAA 대학농구 경기 후반전에 짐 왓슨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코비 브라이언트 전 LA레이커스 선수.

코비 브라이언트의 모습. ⓒ AP-연합뉴스

 
최근 헬기 사고로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전 NBA스타 코비 브라이언트를 향한 추모 열기가 계속되고 있다. 코비는 지난달 27일 자신의 전용 헬리콥터를 타고 딸의 농구경기를 보기 위하여 이동중 헬기가 추락하며 사망했다. 헬기에는 코비와 딸인 지아나 브라이언트를 비롯하여 동승자들까지 총 9명이 탑승하고 있었지만 생존자는 없었다.

NBA 농구계와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코비를 향한 추모에 동참했다. 사고가 벌어진 지 벌써 나흘이 지났지만 추모 열기는 오히려 더욱 커지고 있다. 코비가 선수로서 20년을 활약했던 LA 레이커스는 경기를 연기하는가 하면 홈구장 스테이플스 센터와 LA 광장에는 코비를 기리는 팬들의 헌화와 메시지, 기념물로 공간을 가득 메우기도 했다. 미국 뉴욕 맨하탄의 심장부 타임스퀘어에는 코비의 현역 시절 사진으로 뒤덮였고, 코비를 추모하는 수많은 특집 방송들이 긴급 편성되기도 했다. 농구스타를 비롯한 정치인, 연예인, 셀럽 등도 앞다투어 SNS를 통하여 코비를 애도하는 글과 사진을 올렸다.

전 세계적인 추모

코비 추모 열기는 미국 밖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 IOC의 토마스 바흐 위원장이 올림픽 금메달 2회를 기록한 코비를 '진정한 챔피언'이라며 추모하는 메시지를 남겼고, 이탈리아 프로축구 AC밀란과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에서 경기에 앞서 코비를 추모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KBL(한국프로농구) 서울 SK-안양 KGC 경기에서 코비의 등번호였던 '8-24'를 의미하는 8초-24초 공격제한 시간동안 플레이를 전개하지 않고 고인을 기리는 시간을 가져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국내 스포츠계에서 한국 선수도 아닌 해외의 유명 스타를 추모하기 위하여 세리머니를 가진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코비가 NBA를 대표하는 슈퍼스타였던 것을 감안해도 이러한 전 세계적인 추모 열기는 확실히 이례적이다. 코비는 NBA 5회 우승, 올림픽 2회 우승, 정규리그 MVP 1회, 올스타 18회 선정 등 화려한 업적을 남겼고, 2000년대 미국 농구계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꼽힌다. 하지만 농구 선수로서의 위상만 놓고 보면 독보적이라고까지 할 정도는 아니었다. NBA만 놓고봐도 마이클 조던, 샤킬 오닐, 르브론 제임스, 팀 던컨 등 코비 이상의 족적을 남긴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현역 시절에는 이기적인 플레이스타일과 자기애가 강한 이미지 때문에 인기만큼이나 안티도 많은 선수로 꼽혔다.
 
  팀 던컨(좌), 코비 브라이언트(우)

팀 던컨(좌), 코비 브라이언트(우) ⓒ NBA.com

 
하지만 많은 이들이 코비를 애도하는 진정한 이유는 우승 트로피나 숫자보다도, 그가 걸어온 인생역정 자체가 전해주는 메시지와 공감대 때문일 것이다. 코비는 1996년 고졸 선수로 프로에 처음 데뷔한 이래 재능은 있지만 미숙하던 풋내기 시절을 거쳐 불굴의 노력과 투지로 당대 최고 선수의 반열에 올라섰다. '농구황제' 조던의 후계자로 거론되며 선수인생 내내 비교에 시달리기도 했고, '애증의 파트너' 오닐과는 공존과 경쟁을 거듭하며 1인자로 올라서기까지 험난한 여정을 거쳤다. 20년간 LA 레이커스라는 한 팀을 묵묵히 지키며 팀이 잘나갈때나 부진할때나 끝까지 흥망성쇠를 함께하는 의리도 지켰다. 소년에서 남자로, 다시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코비의 스토리텔링은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영웅담의 전형에 부합했다.

여기에 탁월한 실력, 준수한 외모, 농구에 모든 것을 바친 열정과 도전정신과 승부욕 등은 코비만의 자아가 뚜렷한 '캐릭터'를 형성하며, 팬들은 물론 수많은 당대 농구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동시대에 코비 못지않은 명성을 떨친 수많은 선수들이 있었지만 르브론 제임스, 케빈 듀란트등 후배세대의 슈퍼스타에게 '우리 시대의 마이클 조던'이라는 극찬을 들은 것은 코비가 유일하다. 그가 농구계는 물론 미국 스포츠팬들에게서 차지하는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농구 코트 위에서 승부욕의 화신같은 모습과는 달리 인간적인 면모도 코비가 많은 이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많은 슈퍼스타들이 음주, 도박, 폭력, 성추문 등 불미스러운 사건 사고나 자기관리 실패로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코비도 2004년 성폭행 파문으로 한때 농구인생의 위기를 맞이한 적이 있지만 무혐의로 사건이 종결된 이후로는 사생활에 대한 어떤 구설수도 나오지 않았다. 코비는 2001년 결혼한 아내 바네사 브라이언트와 네 딸과 화목한 가정을 꾸리며 은퇴 이후에도 모범적인 가장의 면모를 보였다.

좋은 인성의 소유자, 코비

내성적인 성격과 이기적인 플레이스타일 탓에 선수생활 초기에는 동료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코비의 인간성을 문제 삼은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한때 불화설이 있었던 오닐이나 드와이트 하워드 등과는 '농구와 성공'을 바라보는 인식 차이 때문에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시간이 흘러서는 모두 화해하며 좋은 관계를 회복했다. 프로 데뷔 이전 자신을 SNS에서 비난했던 어린 선수를 용서하거나, 자신의 통산 기록을 깬 후배를 축하해주는 대인배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팬서비스도 대단히 뛰어나 어떤 상황에서도 팬들의 사인과 사진 요구를 흔쾌히 응해주기로 유명했고 미디어와의 관계도 우호적이었다. 이러한 면모는 코비가 현역 시절 부침을 겪던 시절에도 팬덤과 미디어로부터 상대적으로 비판보다는 많은 보호를 받을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했다.

코비의 비극적인 사망소식이 알려진 이후 그와 인연이 있었던 수많은 인물들이 하나같이 고인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진심으로 애도하고 눈물까지 흘리는 장면은, 그만큼 코비가 얼마나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는 인물이었는지를 증명한다. 바꿔말하면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선수라도 해도 인생역정이나 인간미 자체에서 팬들을 감동시킬만한 코드가 없었다면 이 정도의 존경과 예우를 받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코비를 향한 추모 열기는 한국 스포츠에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프로스포츠의 사회적 위상이 한국보다 훨씬 높고, 스포츠 영웅담을 유독 선호하는 미국에서 코비를 추앙하는 현상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코비라는 전 농구선수 한명을 추모하는데 동참하고 있다는 것은 단지 선수의 스타성이나 농구인기만으로 설명할수 없는 것이다.

한국에도 차범근, 박지성, 박찬호, 김연아, 이승엽, 김연경 등 많은 스포츠 영웅들이 있다. 하지만 선수로서 '성공'했다는 것을 넘어 대중으로부터 '존경'까지 받을 정도의 인물은 생각보다 많지않다. 심지어 코비와 같은 농구계로 범위를 좁히면 더욱 그렇다. 선수로서의 실력을 넘어서 '한 인간으로서' 누군가에게 닮고싶을만한 존재가 많아질 때 스포츠의 위상과 가치도 높아진다.

오늘날 많은 스포츠스타들이 선수로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지만 한편으로 많은 비판도 동시에 받고 있다. 음주운전, 도박, 폭행 등 각종 사건 사고와 사생활로 물의를 일으키기는가하면, 미숙한 팬서비스나 프로의식으로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운동이라는 좁은 세계에만 갇혀서 사회적 책임감이나 대중과 소통할수 있는 공감대가 부족한 것도 지적받는다. 많은 연봉과 호화로운 대우를 보장받는 인기종목 출신일수록 더하다.

단지 운동만 잘해도 성공(successful)은 얻을수 있겠지만, 존중(respectable)을 받는다는 것은 또다른 차원의 일이다. '국보' '대통령' '천재'' 전설'같은 과분한 수식어를 얻는다고 해도 그에 걸맞는 사회적 공헌과 인간적인 매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팬들의 진심 어린 존중과 예우를 받기는 불가능하다. 우리 스포츠계에서도 앞으로는 성공 자체보다도 오랫동안 사회적으로 많은 이들의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스포츠 영웅들이 더 많아져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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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브라이언트 롤모델 스포츠영웅 RESPEC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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