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에서는 야구 역사에 공헌한 인물들을 매년 선정하여 명예의 전당에 헌액한다. 메이저리그에서 10년 이상 활약한 선수, 지도자 또는 기타 분야에서 야구에 공헌한 인물들 중에서 선정하며 선수와 감독은 은퇴한 시즌 이후로 5시즌이 지나야 후보 자격을 얻는다.

대상자 결정은 전미야구기자협회(BBWAA) 투표인단의 투표로 하는데, 득표율 75%를 넘겨야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수 있다. 물론 75%가 되지 못하더라도 최대 10번까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득표율이 최소 5%가 되지 못하면 후보 자격이 박탈된다. 베테랑위원회를 통해 구제 받을 수는 있지만 그 기회가 매년 열리지는 않는다.

이번 2020년 투표에도 20명이 넘는 후보들이 있었다. 모두 메이저리그에서 한때 자신의 이름을 날린 선수들이며, 개인상 수상 이력이 있거나 역사적인 대기록을 남긴 적이 있는 인물들이 즐비하다.

최대 관심사였던 지터, 첫 도전에 입성 성공

이번 2020년 투표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후보는 단연 데릭 지터(현 마이애미 말린스 구단 사장)였다. 2014년을 끝으로 은퇴한 지터는 은퇴 시즌 이후 5년의 유예 기간을 통과하면서 2020년 투표에 처음으로 입후보 자격을 얻었다.

경력만 따지고 보면 지터는 입후보 첫 해에 무리 없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것으로 예상됐다. 선수 생활 20년 동안 뉴욕 양키스 한 팀에서만 뛰었고, 선수 시절 양키스의 캡틴으로서 선수단을 이끌었다는 점이 인정되는 인물이었다.

1974년 6월 26일 생으로 미국 뉴저지 주 출신의 지터는 1992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6순위로 양키스와 인연을 맺었다. 1995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했고, 1996년 아메리칸리그 신인상을 수상했다. 선수 생활 20시즌 중 아메리칸리그 유격수 올스타에 선정된 것만 해도 14시즌이나 된다.

비록 정규 시즌 아메리칸리그 MVP를 수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것만 빼면 경력은 화려했다. 유격수 골드 글러브 5회, 실버 슬러거 5회, 행크 아론 상 2회 등과 더불어 2009년에는 자선 활동으로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까지 수상했다.

양키스 주장으로서 팀에 대한 공헌도 컸다. 신인상 시즌인 1996년과 1998년, 1999년, 2000년 그리고 2009년에 양키스의 월드 챔피언 등극에 기여했다. 특히 2000년에는 포스트 시즌 타율 0.317에 4홈런 9타점으로 맹활약하며 월드 시리즈 MVP까지 수상했다.

지터의 정규 시즌 기록은 2747경기 출전에 3465안타(역대 6위) 1082볼넷 358도루 260홈런 1311타점 1923득점으로 타율 0.310에 OPS 0.817이다. 포스트 시즌에만 158경기에 출전해 200안타 66볼넷 18도루 20홈런 61타점 111득점으로 타율 0.308에 OPS 0.838을 기록하며 정규 시즌 1시즌 분량의 기록을 냈다.

기자들과의 원만한 관계도 득표율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 지터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양키스의 주장으로서 물의를 빚은 적도 딱히 없었고, 기자들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그랬던 만큼 지터는 입후보 첫 해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명예의 전당 입성에 성공했다.

지지율 99.7%... 단 "1표" 차이로 만장일치는 실패

이번 2020 명예의 전당 투표에 참가한 전미야구기자협회 투표인단은 모두 397명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396명이 지터를 지지했다. 득표율 99.7%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고, 아쉽게도 단 1표 차이로 만장일치엔 실패했다. 만장일치로 입성한 사례는 지난 해 투표로 입성한 마리아노 리베라 1명 뿐이다.

명예의 전당 입후보 첫 해에 헌액된 선수 출신 인물은 지터가 역대 57번째다. 입후보 횟수와 관계 없이 오로지 한 팀에서만 뛰었던 선수들 중에서는 55번째다. 현재 지터가 만장일치에 실패하자 현지에서는 반대한 1표를 던진 사람이 누구인지 찾는 이들도 생겼다. 투표 결과가 공개되자 결백을 주장하며 자신의 투표 용지를 공개하는 기자들도 나왔다. 오렌지 카운티 레지스터의 제프 플레처는 SNS에 투표 용지를 게시하면서 반대 1표는 자신이 아님을 당당히 밝혔다. 존 헤이먼은 과거에 지터가 만장일치를 받을 것이라는 예측을 했던 자신의 게시물을 인용하며 지터에게 반대한 1명의 기자를 '멍청이'라 표현했다.

반대의 반응도 있다. 디 애슬레틱의 필진 마크 캐릭은 만장일치 여부는 상관 없으며 헌액 자체에 의미를 뒀다. 같은 필진의 파비안 아르다야는 만장일치 여부에 신경쓰지 않는 반응을 보였다.

만장일치에는 실패했지만, 지터의 득표율은 리베라에 이은 역대 2위다. 역대 3위 득표율은 2016년에 입성한 켄 그리피 주니어(99.3%)가 뒤를 이었다. 그 뒤로는 톰 시버(1992년 98.8%)와 놀란 라이언(1999년 98.8%) 칼 립켄 주니어(2007년 98.5%) 순이다.

다만 리베라의 만장일치는 최다 득표수 기록은 아니다. 최근 들어 전미야구기자협회에서는 투표 인단의 규모를 대거 줄였다. 투표 인단의 세대가 바뀌면서 리베라와 지터 그리고 그리피 주니어 등의 득표율이 상대적으로 올라갔다.

마지막 기회였던 워커, 10수 끝에 입성

한편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던 외야수 래리 워커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지난해 투표까지만 해도 54.6%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입성 가능성이 불투명했던 워커는 이번 투표에서 득표율 76.6%를 기록하며 최저 기준점인 75%를 간신히 넘기며 극적으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1966년 12월 1일 생으로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 출신이었던 워커는 우투좌타 외야수로 1984년 몬트리올 엑스포스(현 워싱턴 내셔널스의 전신)와 계약하며 메이저리그와 인연을 맺었다.

1989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여 1994년까지 엑스포스에서 활약한 워커는 1995년 콜로라도 로키스로 이적하며 쿠어스 필드(1995 개장)의 역사를 함께 시작했다. 그는 2004년까지 로키스에서 활약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2004년 여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트레이드되어 2005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워커는 소속 팀에서 월드 챔피언을 차지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로키스는 2007년이 되어서야 내셔널리그 챔피언을 차지(와일드 카드)했으며, 카디널스는 워커가 은퇴한 뒤 2006년이 되어서야 월드 챔피언 트로피를 탈환했다. 워커는 2004년 카디널스에서 내셔널리그 챔피언 반지를 얻은 것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개인상은 화려했다. 내셔널리그 올스타 5회, 외야수 골드 글러브 7회, 실버 슬러거 3회를 수상했으며 리그 타격왕 3회에 홈런왕 1회(1997년) 기록이 있다. 커리어 하이였던 1997년에는 내셔널리그 MVP까지 수상했다.

워커의 정규 시즌 통산 기록은 1988경기 2160안타 913볼넷 230도루 383홈런 1311타점 1355득점으로 타율 0.313에 OPS 0.965를 기록했다. 소속 팀이 상위권에 올라간 적이 적었기 때문에 포스트 시즌을 경험한 시즌은 3시즌으로 28경기 타율 0.230에 7홈런 15타점 기록이 있다.

개인 기록으로 따지면 나름 뛰어난 성적을 남겼지만 타자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쿠어스 필드에서 대부분의 기록을 세웠다는 점에서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기 힘들었다. 이전까지 9번의 투표에서 득표율이 조금씩 오르기는 했지만 입성 가능성을 장담하기 어려웠는데, 마지막 투표에서 20% 이상의 상승을 기록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클레멘스, 본즈, 실링, 소사는 8수 실패... 다른 후보들은?

2020년 투표에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선수 출신 인물은 지터와 워커 2명 뿐이다. 20명이 넘는 나머지 후보들은 득표율 75%를 넘지 못하여 명예의 전당 헌액에 실패하며 다음 기회를 노리게 됐다.

이제 남아있는 후보들 중에서 기회가 가장 적게 남은 후보는 커트 실링과 로저 클레멘스, 배리 본즈 그리고 새미 소사 4명으로 이번이 8번째 투표였다. 앞으로 2번의 투표에서 75%를 넘지 못한다면 후보 자격을 상실하게 되며 베테랑 위원회의 구제를 기다려야 한다.

실링은 통산 3261이닝 216승 146패 10홀드 평균 자책점 3.46에 3116탈삼진을 기록했다. 특히 포스트 시즌 통산 19경기 11승 2패 평균 자책점 2.23으로 2001년(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과 2004년 그리고 2007년(이상 보스턴 레드삭스)까지 무려 3번이나 소속 팀의 월드 챔피언 등극을 이끌었다.

그러나 실링은 은퇴 이후 사업 실패와 정치적 발언, 그 외의 부적절한 언행 문제 등으로 인해 득표율을 높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다. 이번 투표에서는 278표로 70%의 지지를 받았다. 

클레멘스는 통산 4916.2이닝 354승 184패 평균 자책점 3.12에 4672탈삼진을 기록했다. 사이 영 상 수상 통산 7회로 역대 최다 수상 이력을 갖고 있는 투수지만, 2007년 미첼 리포트 사건과 관련하여 재판까지 받았던 이력으로 인해 높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번 투표에서는 242표로 61%의 지지를 받아 남은 2번의 기회가 주목된다.

본즈는 통산 2935안타 2558볼넷 514도루 762홈런 1996타점 2227득점에 타율 0.298에 OPS 1.051 기록을 갖고 있다.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홈런 기록을 보유하고 있지만, 역시 미첼 리포트 사건과 관련하여 재판까지 받은 이력이 있다. 이번 투표에서는 241표로 60.7%의 지지를 받았다.

오마 비즈켈은 209표로 52.6%(3번째)의 지지를 받으며 향후 투표에서 입성 가능성을 조금씩 높이고 있다. 스캇 롤렌은 140표로 35.3%(3번째), 빌리 와그너는 126표로 31.7%(5번째), 게리 셰필드는 121표로 30.5%(6번째), 토드 헬튼은 116표로 29.2%(2번째) 등의 지지를 받았다.

약물 복용 혐의가 2번이나 적발된 매니 라미레스는 112표로 28.2%(4번째) 등의 지지를 받았다. 제프 켄트는 109표로 27.5%(7번째)의 지지를 받았는데, 앞으로 투표가 3번 밖에 남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입성 가능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 앤드류 존스는 77표로 19.4%(3번째)의 지지를 받았다.

새미 소사는 55표로 13.9%(8번째)에 그치며 그 역시 입성 가능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통산 609홈런으로 이 부문 역대 9위에 올랐지만 부정 배트 사용 등 영 좋지 않은 이력들이 많아 기자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미첼 리포트 사건 때 약물 복용을 시인하며 사과했던 앤디 페티트는 이번 2번째 투표에서 45표로 11.3%의 지지를 받았다. 평소에 깔끔한 이미지를 보였던 페티트는 미첼 리포트 사건 이외에는 별다른 사고가 없었기 때문에 향후 득표율 상승 여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이번이 첫 투표였던 바비 아브레유는 22표로 5.5%의 득표율을 기록, 간신히 후보 자격을 유지했다. 득표율이 5% 미만일 경우 후보 자격을 영구 상실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간신히 후보 자격을 유지했지만, 앞으로는 장담할 수 없다.

5% 미만의 득표율로 후보 자격을 상실한 선수들은 모두 첫 번째 투표였다. 폴 코너코(10표), 제이슨 지암비(6표), 알폰소 소리아노(6표), 에릭 차베즈(2표), 클리프 리(2표), 애덤 던(1표), 브레드 페니(1표), 라울 이바네즈(1표), J.J. 푸츠(1표) 등이 탈락했다.

아예 0표의 굴욕을 겪은 선수들도 있다. 포스트 시즌에 강하여 2003 월드 시리즈 MVP와 2007 ALCS MVP 등 2번의 우승을 이끈 조시 베켓은 잦은 부상으로 조기 은퇴하는 바람에 정규 시즌 누적 기록이 적어 0표의 굴욕을 당했다. 그 외 히스 벨, 션 피긴스, 라파엘 퍼칼, 카를로스 페냐, 호세 발베르데 그리고 데이브 로버츠(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감독)의 동생 브라이언 로버츠도 0표의 굴욕을 당했다.

현재 남아있는 후보들 중에는 논란이 따라다니는 후보들이 여럿 있다. 약물 파동에 관련된 인물들, 특히 미첼 리포트 사건 이후 은퇴한 후보들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는 편이다. 최근 사인 훔치기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남아있는 후보들이 향후 득표율에 어떤 변화를 보일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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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메이저리그야구 명예의전당투표 데릭지터 래리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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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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