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벌룬>의 한 장면

영화 <벌룬>의 한 장면 ⓒ 세미클론 스튜디오


1979년 독일 민주공화국(동독). 피터(프리드리히 머크 분)와 도리스(카롤리네 슈허 분) 부부, 권터(데이빗 크로스 분)와 페트라(알리샤 본 리트버그 분) 부부는 서독으로 탈출하기 위해 열기구를 준비한다. 기다리던 바람이 부는 날, 피터가 계획을 실행하려 하자 권터는 모두가 타기엔 열기구가 충분치 않다고 말린다. 결국 피터 가족만 탈출을 시도하지만, 국경을 얼마 안남기고 열기구가 땅으로 추락한다.

살아남은 피터 가족은 집으로 돌아와 권터 가족과 함께 새로운 열기구를 만들며 다시금 탈출을 계획한다. 그런데 추락한 열기구를 조사하는 비밀경찰국 콜로넬 중위(토마스 크레취만 분)의 수색망이 이들을 조여오기 시작한다. 잡히면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피터 가족과 권터 가족은 열기구를 띄운다.
 
 영화 <벌룬>의 한 장면

영화 <벌룬>의 한 장면 ⓒ 세미클론 스튜디오


1961년 동독 정부가 동베를린과 서방 3개국의 분할점령 지역인 서베를린 경계에 쌓았던 콘크리트 담장 '베를린 장벽'은 1989년 동유럽의 자유화로 철거될 때까지 동서냉전의 상징물이었다. 독일이 분단되었던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이 정치적인 이유 또는 개인적인 사유로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탈출에 성공한 이도 많았지만, 실패한 예도 적지 않았다. 1976년부터 1988년까지 약 38000명의 동독 시민이 서독으로 탈출하려다 실패했다. 이 중에서 460명 이상은 국경에서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자들은 배반자로 낙인이 찍혔다.

영화 <벌룬>은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했던 사례 가운데 가장 기발하면서 위험천만했던 열기구 사건을 영화화했다. 그런데 <벌룬>이 열기구 사건을 다룬 첫 번째 영화는 아니다. 1979년 당시 열기구를 타고 서독으로 온 피터 가족과 권터 가족의 사연은 전 세계 주요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많은 화제를 뿌렸다. 흥미로운 영화 소재라 판단한 디즈니는 가족들로부터 영화화 권리를 얻어 1982년 존 허트 주연의 <심야의 탈출>을 선보인 바 있다.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독일 감독 미카엘 헤르비그 감독은 피터, 권터 가족의 이야기가 여전히 스릴러 영화로 만들기에 이상적인 실화라 생각했다. 그는 삶을 바꾸기 위해 몇 차례나 목숨을 건 위험을 감수했던 이들의 사연을 새롭게 영상으로 만들기 위해 같은 독일 출신인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도움을 받아 디즈니로부터 판권을 사들였다. 그렇게 열기구 사건을 조명한 두 번째 작품이지만, 할리우드가 아닌 독일의 시선으로 본 첫 번째 작품 <벌룬>은 태어났다.
 
 영화 <벌룬>의 한 장면

영화 <벌룬>의 한 장면 ⓒ 세미클론 스튜디오


<벌룬>은 역사적 사건을 재해석하기보단 사실 그대로를 충실히게 옮겼다. 그러나 영화에 맞게 이야기의 재구성은 이루어졌다. 영화는 빠른 전개를 통해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해 세 번 시도했던 열기구 탈출은 두 번으로 줄여졌다. 피터 가족과 권터 가족이 동독을 떠나려는 이유 같은 캐릭터의 과거도 최소한도에서 그려졌다. 실화를 알든 모르던 상관없이 영화가 전하는 스릴의 힘은 대단하다.

<벌룬>은 사실감을 얻기 위해 열기구를 CG가 아닌 실제 사이즈로 제작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열기구는 총 2개다. 첫 번째 탈출에 사용한 열기구는 높이 28m에 달했다. 두 번째 탈출에는 더 높이, 더 멀리 비행하기 위해 더 큰 사이즈인 높이 32m, 무게 150kg의 열기구를 만들었다. 피터 가족과 권터 가족은 여기에 몸을 싣고  2.5km 상공까지 올라 28분간 18km를 비행했다.

색의 활용은 <벌룬>에서 눈여겨 볼 대목이다. 영화에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 동독의 풍경은 음울함이 가득한 무색에 가깝다. 처음 만들었던 열기구의 색깔은 파랑이다. 반면에 피터 가족과 권터 가족을 추적하는 콜로넬 중위는 빨강 계열의 코트를 입는다. 무채색의 거리에서 파랑과 빨강은 대비 효과를 형성한다.

감시가 심해 대량의 방수천을 구매할 수 없었던 피터 가족과 권터 가족은 조금씩 사서 열기구를 만든다. 여러 방수천을 덧붙인 두 번째 열기구는 형형색색을 이룬다. 이것은 대단한 노력의 결과이고, 다채로운 사람들, 즉 개인의 자유를 뜻하기도 한다.
 
 영화 <벌룬>의 한 장면

영화 <벌룬>의 한 장면 ⓒ 세미클론 스튜디오


피터 가족과 권터 가족엔 독일을 대표하는 명배우들인 프리드리히 머크, 카롤리네 슈허, 데이빗 크로스, 알리샤 본 리트버그가 참여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배우는 콜로넬 중위 역할을 맡은 토마스 크레취만이다. 우리에겐 <택시운전사>(2017)의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로 친숙한 배우 토마스 크레취만은 실제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한 경험이 있다. 그는 "직접 연기한 비밀경찰 같은 사람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고 밝히며 "그 두려움과 공포가 피부에 와닿았다"고 말한다.

과거의 이야기인 <벌룬>은 오늘날 두 가지 의미를 전한다. 첫째는 실화란 소재 자체가 주는 강렬함이다. 열기구는 쉽게 만들기도 힘들뿐더러 바람 등 변수가 너무 많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과감하게 도전했던 피터 가족과 권터 가족의 사연은 실화이기에 더욱 극적이다.

둘째는 역사를 되돌아보게 한다. 베를린 장벽에 무너진 지도 벌써 30여 년이 지났다. 지금은 당연한 듯 자유를 만끽하고 있지만, 그 시절엔 목숨을 걸고 나서야 비로소 얻을 수 있던 값진 결과였다. <벌룬>은 자유를 찾아 떠났던 동독 국민의 용기를 보여줌으로써 그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지금까지도 분단의 장벽에 가로막힌 채로 살아가는 우리에겐 <벌룬>의 메시지는 더욱 크게 다가온다.
벌룬 미카엘 헤르비그 카롤리네 슈허 프리드리히 머크 데이빗 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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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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