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마에게> 스틸컷

영화 <사마에게>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몇 해 전 해변으로 밀려온 시리아 아이의 모습을 기억하는가? 가냘픈 3살짜리 꼬마의 등을 쓸어 주고 싶은 처참한 사진은 다시 한번 잔혹한 전쟁의 비극을 떠올리기 충분했다.

영화 <사마에게>는 참혹하고 끔찍한 실화다. 영화라고 생각하고 싶을 만큼 충격적이지만 아쉽게도 실제로 일어난 일이며 전 과정은 와드가 직접 찍은 영상을 편집해 만들었다. 영화는 실제로 시리아에서 일어난 일 중 단 10%만 담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심각한 무력감이 든다. 2019년 <가버나움>이 있었다면 2020년에는 <사마에게>가 있다.

와드는 엄마, 저널리스트, 시민기자, 영화감독까지 멀티플레이어로서 5년간 종횡무진 했다.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도 용기를 내고 이타주의를 실천하는 투쟁.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에서 발현되는 진정한 저널리즘을 목격할 수 있다.
 
 영화 <사마에게> 스틸컷

영화 <사마에게>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대학생이자 저널리스트가 꿈인 와드는 휴대폰으로 시리아 알레포에서 참상을 알리던 중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운동권 의사 함자와 사랑에 빠져 아이 사마를 얻는다. 그 새로운 빛은 죽음의 땅에서 피어난 생명이었다. 그러나 폭격의 소리가 커질수록 마음의 무게감도 짙어진다. 사마가 태어나서 본 거라곤 전쟁터뿐이고 들은 거라곤 폭격 소리가 전부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를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나게 한 부모의 죄책감과 끝까지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이 상충한다. 나라면 과연 이 상황을 버텨낼 수 있었을까.

와드와 함자는 자유를 위해 끝까지 떠나지 않고 사람들과 의지하며 서로를 돌본다. 특히 함자는 다친 시민들을 위해 밤낮없이 치료에 매진한다. 영화는 그 참상을 날것 그대로 담고 있다. 5년 동안 본 모든 순간을 빠짐없이 기록하고자 했다. 바로 옆집에 포탄이 떨어지고, 촬영하는 지금 순간도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눈물 대신 피눈물이 흐르고 피 냄새가 진동하는 병원은 또 다른 전쟁터다. 와드와 함자는 스스로 위험으로부터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아비규환이 된 도시에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은 병원이었다. 병원은 폭격하지 않는다는 당초 약속을 깨고 병원마저 폭격 당하던 날, 모든 것이 무너지고 희망도 사라진다. 하지만 그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다른 지역에 병원을 세워 진료를 이어간다. 이제 와서 포기할 것이라면 지금까지 버티지도 않았고, 여기서 포기하면 다시는 되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영화 <사마에게> 스틸컷

영화 <사마에게>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식량이 부족하고, 깨끗한 물도 잘 나오지 않으며, 전기도 끊어진 지옥 같은 곳에서 사마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다. 잠시나마 고개를 내밀었던 행복은 폭격기 소리에 이내 자취를 감추고 만다. 이곳에서는 그 무엇도 버텨내기 힘들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인 셈이다.

아이를 키우기 최악의 상황이지만 떠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와드와 함자는 딸 사마를 위해서라도 맑고 깨끗한 도시를 되찾아주고 싶다. 그렇게 미래가 저당잡힌 알레포에서 사랑하고 결혼하며 아이를 낳아 저항한다. 폐허 속에서도 생명이 피어나고 있다고, 보란 듯이 살아가고 있다는 일종의 선언 같다.

모두가 떠난 알레프지만 사랑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었다. 와드와 함자가 가깝게 지내는 이웃 부부는 아이가 셋이다. 와드는 그들을 존경한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기 때문에 힘들어도 내색을 하지 않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한다. 언제 내 자식이 주검으로 발견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도 말이다.

이들 부부가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은 스크린 너머까지 충분히 전달된다. 먹을 것이 없이 벌레 먹은 쌀로 밥을 지어야 하는 아내는 내심 미안할 뿐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귀한 식량이라 차마 버릴 수가 없다. 이런 마음을 아는 남편은 귀한 단감 하나를 가져와 아내에게 선물한다. 아내는 어디서 구했냐며 값비싼 보석이나 예쁜 꽃을 받았을 때 보다 더 환하게 웃는다. 감 하나에 저리도 행복할 수 있다니. 작은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불평하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가졌기에 불행한 건 아닐까. 때로는 부족함이 넘침만 못하다.
 
 영화 <사마에게> 스틸컷

영화 <사마에게>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영화는 우리에게 정의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만든다. 중요한 건 장소가 아니라 거기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생명이다. 그렇다. 폭격이 일상인 알레프에도 사람이 있었다. 여기 아직 사람이 있다. 그리고 꺼지지 않은 희망도 남아 있다. 영화는 끝났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9년째 현재진행형이다. 우리가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사소한 행동이 전쟁을 끝낼 수 있다. 이 길이 우리가 갈 유일한 길 일지라도 너무나 멀고 힘들어도, 그 끝에 자유가 있기에 함께 걸어가면 된다.
사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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