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형님>의 한 장면

JTBC <아는 형님>의 한 장면 ⓒ JTBC


지난 11일 방영된 JTBC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의 '취업 상담실' 코너에 걸그룹 (여자)아이들 멤버 슈화, 수진, 우기가 방문했다. 슈화와 우기는 '취업 상담실'의 첫 외국인 학생이었다. 

대만 국적으로 한국에 온 지 3년 남짓 된 슈화는 이날 방송에서 "게임 예능보다 토크 예능에 더 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이에 장성규는 "토크를 하기에 우리말(한국어)이 어렵지 않느냐"고 물었고 슈화는 망설임 없이 "어렵지 않다"고 답했다. 하지만 여기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조롱'이 날아왔다.

"되게 어려워 보이는데."(장성규)
"아니지. 슈화는 어렵지 않아. 듣는 우리가 어려워."(신동)
"스스로 달변가라고 생각하는 건가?"(장성규)


방송 이후 일부 시청자들은 장성규와 신동의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슈화는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외국인이니 한국어 구사에 어색한 부분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스스로 직접 "한국어가 어렵지 않다"고 말했음에도, 타인의 언어능력을 평가하고 조롱하는 듯 말하는 것은 무례하다는 비판이었다. 하물며 이날 방송에서 슈화와 MC들의 의사소통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다.

시청자인 나는 이날 방송을 보면서 슈화의 말을 이해하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장성규와 신동의 발언이 듣기 불편하게 느껴졌다. 상대방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태도였기 때문이다.

이번 논란을 지켜보면서 2년 전 다른 아이돌 그룹의 한 외국인 멤버가 했던 문제제기가 문득 떠올랐다. 2018년 1월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서 보이그룹 갓세븐의 외국인 멤버 잭슨은 "일부러 못 알아듣는 척 하고 웃기려는 게 아니냐"는 동료 출연자의 말에 발끈했다.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 게) 귀엽다는 이야기다"라는 그의 해명에도 잭슨은 "그게 왜 귀엽냐", "(한국말을 잘 못 알아듣는 것으로)이걸로 웃기려고 한 적 없다", "나는 재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사실 잭슨은 앞서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친근한 이미지를 보여줬고, 그의 어눌한 한국말을 놀리거나 귀엽게 여기는 반응은 방송에서 여러 번 반복된 일이었다. 하지만 잭슨이 이에 대해 직접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현한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말은 "잭슨이 사춘기인가봐"(과하게 예민하게 군다는 의미), "내가 웃기고 귀엽다는 데 네가 왜 그러냐"였다. 결국 이날 방송에서 잭슨은 별다른 사과를 받지 못했다. 
 
 MBC <라디오스타>의 한 장면

MBC <라디오스타>의 한 장면 ⓒ MBC

 
외국인의 어눌한 한국어 발음과 억양이 귀엽고 재밌어서, 웃음 요소로 활용하는 것은 사실 '외국인 혐오'라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예능에서 웃자고 한 말일 뿐인데 그렇게 잘못된 것이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달리 생각해보자. 만약 미국 프로그램에 출연한 봉준호 감독에게, 누군가가 유머러스 하게 영어 발음을 지적했다면 어떨까. 해당 프로그램은 한국 팬들의 엄청난 비난을 사지 않았을까.

지난해 국내 거주 외국인이 200만 명을 돌파했지만 '외국인 혐오'는 여전히 우리 삶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과거 KBS 2TV 예능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 출연자 크리스티나는 성대모사는 그 대표적 사례다. 방송이 종료된 이후에도 크리스티나의 억양을 '재미있는 개인기'라며 우스꽝스럽게 흉내내는 사람이 매우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10여년 사이 이런 개그들이 시대에 맞지 않고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소재라는 시각이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아직 '성숙한 사회'라고 하기엔 미진한 부분이 많다. 이번 <아는 형님>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방송이 끝난 후 장성규, 신동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슈화는 자신의 SNS에 "저는 하나도 상처받지 않았고 오히려 MC 선배님들이 친절하게 잘 챙겨줘서 즐거웠다"며 "선배님들도 연락 와서 걱정해줬다. 선배님들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아이돌 그룹에 외국인 멤버가 속해있을 경우 일부 팬들은 말투가 귀엽다며 말투 모음 영상을 제작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례를 살피면 혐오에 항상 악의가 전제되진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라이관린은 방송 당시 한국어를 정확하게 발음하기 위해 입에 볼펜을 물고 밤새 발음 연습을 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귀엽다'는 평가는 그를 비롯한 외국인들의 노력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었을까. 의도가 어찌 되었든 그 행위 자체가 무례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한국에 살며 적어도 10년 이상 영어를 배웠다. 그러나 영어 구사 능력이 완벽하다고 자부하진 못한다. 나에게 영어가 외국어이듯, 외국인에게 한국어는 외국어다. 외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외국인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고 조금이라도 서툴다 싶으면 웃음거리로 삼는다. 외국인 인식에 대한 한국의 현주소다. <미녀들의 수다>가 종영한 것도 벌써 10년 전 일이다. 이제 2020년에 걸맞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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