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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로 로고리아 연출 <프로파간다 게임>(2015) 스틸 컷.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서 군인들이 관람하고 있다.
 알바로 로고리아 연출 <프로파간다 게임>(2015) 스틸 컷.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서 군인들이 관람하고 있다.
ⓒ 북한인권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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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필자가 쓴 기사의 댓글을 살펴보다가 그 중 하나가 눈에 띄었다. 북한은 무상주택·무상의료·무상교육을 제공하는 사회주의 국가인데 왜 주민이 집을 구입해야 하느냐는 내용이었다. 해당 기사는 북한 사람들이 '평양시민권'을 얻기 위해 평양 남자를 사윗감으로 선호하고, 그런 사위를 얻기 위해 신부 측에서 집을 마련한다는 내용이었다. 필자가 본 댓글은 기사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사실 이런 오해는 우리 사회에 꽤 널리 퍼져 있는 것 같다. 북한이 평등의 가치를 실현한 사회주의 국가라는 관념은 북한이 오늘날 빈곤과 식량 부족에 허덕이는 저소득국이 된 것이 미국의 봉쇄(대북 제재) 때문이라는 생각과 함께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오해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인식과 달리 북한에도 남한 사회처럼 소득 불평등과 계층 분화가 있다. 김일성이 다스리던 시대엔 이런 격차가 현재보다 작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때도 차별과 불평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일성·김정일 시대에도 당간부가 일반 주민보다 더 잘살았고, 당간부가 받는 배급량이 주민보다 많고, 품목도 더 다양했다. 오늘날엔 그 차이가 더 극적으로 벌어졌다. 최근엔 북한의 무상주택·무상의료·무상교육의 붕괴를 반박할 북한 전문가가 거의 없다. 북한 70년사에서 사실 이런 것들이 완전하게 달성된 적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북한에도 사경제가 발달하면서 북한 주민들은 주택이용허가증(입사증)을 사고판다. 입사증은 사실상의 '소유권'이라고 할 수 있다. 전기 공급 부족 때문에 발전소가 가까운 지역이나 당간부 등 특권층이 사는 곳의 주택가격이 폭등했다고 알려졌다. 부유층은 거실과 방 세 칸을 갖춘 아파트에서 내부를 남한식으로 인테리어하고 살고, 빈민은 살던 집을 팔고 도시 외곽으로 이사가는 모습이 관찰된다.  

또 무상의료체계를 유지하려면 해마다 막대한 예산이 들지만 북한 경제가 이런 것을 떠받치기엔 역부족이다. 의약품·병상·의료도구가 부족하기 때문에 환자가 수술을 받으려면 의사에게 뇌물을 주거나 마취제 등 필요한 물품을 직접 장마당에서 구입해 의사에게 건네기도 한다. 무허가 진료소도 판친다. 

교육제도 문제는 가장 심각하다고 알려졌다. 북한의 모든 각급 학교는 원칙적으로 국립이지만, 정부에서 운영비가 나오지 않은 지 오래됐다. 학교는 교사 임금 등 모든 운영비용을 스스로 조달해야 한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꼬마과제'를 부과해 재정을 충당한다. 꼬마과제란, 폐지·토끼가죽·고철·쥐꼬리·빈병 등을 제출받는 것이다. 잘사는 집 아이들은 과제를 사서 제출하면 되지만, 가난한 가정에선 과제를 밀리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교사가 매섭게 다그치고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을 주는 일이 반복되면 학생이 학교에 결석하거나 학업을 중단하는 일까지 발생한다. 사실 이런 가슴 아픈 전언은 북한 사회에서 아주 흔한 사연이다.

이런 일이 일부 남한 사회까지 알려지면 어떤 사람들은 주민들에게 이런 무거운 부담과 할당량을 부과하는 북한 당국을 비판하기보다는 오히려 안타까워한다. 북한 당국과 주민을 분리해서 보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 앞서 언급했듯, 미국의 봉쇄로 인해 북한이 빈국이 됐고, 그래서 당국이 자기네 주민들을 잘 돌보지 못하게 됐다고 개탄하곤 한다. 이런 태도는 북한 지도부가 지난 70년간 저질러온 인권 유린, 감시와 억압, 주민 통제를 희석시키고, 면죄부를 주도록 만든다.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고, 가해자는 종종 미제가 돼버리고 만다.

물론 이런 태도가 일반적인 경향이나 흐름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필자는 북한에 대해 이런 태도와 사고를 갖고 접근하는 사람들을 종종 접했다. 실제로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 대항해 학생운동을 했던 이들 가운데 일부가 공유했던 담론이기도 하다. 필자는 북한 지도부를 자녀들을 사랑하지만 무능한 술주정뱅이 폭군 아버지에, 주민들은 자녀들에 '비유'하는 지식인도 봤다. 그보다는 최고지도자를 고아원 원장에, 주민들을 부모가 없는 고아에 빗댄 소설 <고아원 원장의 아들>(애덤 존슨·아산정책연구원·2014)이 더 적절한 접근인 것 같다.
 
로스 아담, 로버트 캐넌 연출 <연인과 독재자>(2016) 스틸컷. 납북된 배우 최은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한 모습.
 로스 아담, 로버트 캐넌 연출 <연인과 독재자>(2016) 스틸컷. 납북된 배우 최은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한 모습.
ⓒ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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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북한 경제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북한 경제의 파탄 원인으로 꼽는 것은 대략 3가지다. 일반적으로 과한 군비 지출, 사회주의 경제모델의 실패, '자립경제'를 지향한 경제정책이 그것들이다.

드러난 어떤 결과의 원인은 한 가지가 아니고, 복합적인 경우가 많기에 '미국책임론'도 북한 경제 붕괴의 네 번째 이유쯤은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냉전시대부터 시작된 대북제재는 북한 주민과 당국에게 큰 타격을 안겼고, 핵개발이 본격화된 이후로 제재가 더 강화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제재는 경제파탄의 직접적이고 유일한 이유는 될 수 없는 것 같다.

1990년대까지 북한은 인구 대비 군인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남북한의 대결구도도 영향을 미쳤다. 사회주의 경제모델의 비효율성은 이미 철저히 연구됐고 새삼 더 논증할 것이 없다. 이러한 경제모델의 문제점은 사회주의를 포기한 여타 국가에서 이미 관찰된 것들이다.

부연이 좀 더 필요한 것은 자립경제 노선이다. 이는 김일성 시대인 1960년대부터 시작된 구호라고 한다. 해당 노선은 북한이 필요한 모든 물자를 자국 국경 안에서 만들어 '자급자족' '자력갱생'해야 한다는 논리다. 외세의 간섭과 영향을 최소화하려면 최대한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한다며 마오쩌둥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서로 연결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국제분업화된 세계 경제질서에서 시대에 뒤처진 공허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 전략이 북한을 중국과 러시아 같은 강대국에 되레 더 의존하게 만들었다고 보고 있다.    

이런 경제파탄의 원인들은 북한 당국의 선택과 결정이며 주로 내부에 원인을 두고 있다. 그래서 과거 사회주의 국가가 그랬듯이 당국 스스로 해결책을 찾고, 개혁 의지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개혁개방이 정치 부문(체제 존속)과 주민의식에 미칠 파급력과 영향 때문에 주저한 당국이 제때 개혁을 실시하지 않았고, 현재도 적극적으로 실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 다수의 관측이다.

이러한 북한을 향해 '고립'을 중단하고 국제사회에 편입돼 그 일원이 되라고 조언하고 조력하는 것이 남한 정부와 시민사회의 역할이다. 전 세계 모든 나라와 비정부기구가 이 일에 동참할 수 있다. 어떤 종류의 교류협력이건 남북한이 함께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북한이 외부 세계와 교류협력을 증가시킨다면 경제개발, 주민의식 변화, 인권개선 등의 효과도 뒤따라올 것이다. 

태그:#경제파탄, #자력갱생, #개혁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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