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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스티븐슨의 <그만하길 다행이야!>는 늘 '그만하길 다행이야'라고 말하는 할아버지의 말버릇을 궁금해하는 손자와 손녀에게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어마무시(?)한 모험담이 담긴 이야기이다. 일상이 지루해 보이기만 했던 할아버지의 육해공을 넘나드는 찰진 모험에 손자·손녀는 '그만하길 다행이에요'라며 안도한다.
표지
▲ 제임스 스티븐슨 <그만하길 다행이야!> 표지
ⓒ 보물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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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위트 넘치는 그림책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위트는 어떤 현상을 웃음을 주는 상황으로 변환시키는 과정이 첨가되어야 한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이해하기 좋을 만큼 적당한 위트를 구사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만하길 다행이야!>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위트를 재미있게 구사해낸다.

위트는 현실을 날카롭게 제시하되, 웃음을 잃지 않는다. 위트가 주는 웃음에는 지적인 성찰이 겸비된다. 위트는 웃는 와중에도 현상의 본질을 꿰뚫는 날카로움이 동반된다. 그 날카로움은 지적인 만족을 줄 뿐, 누군가를 상처 주지 않는다. <그만하길 다행이야!>에서 읽히는 위트 역시 그러하다.

아이들이 할아버지에게 다가와 전하는 여러 어려움에 할아버지는 그저 그만하길 다행이라 대답할 뿐이다. 한결같은 할아버지의 대답에 아이들은 할아버지의 매번 반복되는 일상이 재미없기 때문일 것이라 예상한다.

할아버지는 아이들에게 반복되는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일견 지루해 보이는 시간들이 무사한 삶을 어떻게 증명하는지 구구절절히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하룻밤 사이에 일어났던 엄청난 사건을 들려준다. 무척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그 사건들은 얼토당토하지만 괴리감을 주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그리 낯설지 않은 큰 새며 설인, 아이들의 호소에 등장하는 개, 할아버지의 쨈·식빵·신문 등은 이후 전개되는 모험에 익숙함을 선사해, 할아버지의 모험은 결코 일상과 유리되지 않는다.

영문도 모른 채 갑작스럽게 산 속에 떨어진 할아버지의 상황은 익살스럽게 그려진다. 할아버지를 위험에 빠트리는 동물과 괴물들은 무섭기는 커녕 장난꾸러기처럼 느껴진다. 그들에게 할아버지를 부러 괴롭히려는 의도는 없어보인다. 그들 역시 할아버지를 어쩌다 보니 만난 것만 같다. 거대한 그들의 크기 앞에 할어버지는 너무나 조그맣지만 기죽지 않는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살짝 놀라기는 하지만 그뿐이다. 특유의 심드렁한 표정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할 뿐이다.

그 이야기의 방식은 지루한 틈을 만들지 않는다. 할아버지의 모험은 난데없이 시작되고, 예기치 않게 끝이 난다. 할아버지는 눈 앞에 보이는 적당한 것으로 위기를 피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중에 도움을 받는다.

큰 새로부터 비롯된(서양은 아기를 새가 데려다 준다고 아이들에게 말한다. 난데없이 나타난 할아버지를 산 속에 떨어트리고 가는 큰 새는 탄생을 의미할 것이다) 그 모험이 할아버지의 파란만장했던 일생을 이야기한다는 것을 그림책을 읽어주는 어른들은 알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쉽게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그림책 속 위기는 뜻하지 않게 다양한 형태로 일어난다. 삶의 위기들이 그러하듯 말이다. 할아버지는 이 놀라운 상황 앞에 잠깐 깜짝 놀랄 뿐 여전히 시큰둥하다. 거기에는 불평도 호소도 누구의 탓도 없다. 해봐야 소용도 없다. 그런다고 이미 일어난 일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는 누구든 살아남기 위해 상황에 맞게 대처해야 한다.

물론, 세상의 할아버지들이 삶의 고난 앞에 이런 호들갑 없는 수용만 했을 리는 없다. 할아버지도 분명, 수도 없이 네 탓과 내 탓을 했을 테고, 상처받고 힘들어 했을 것이다. 그러나, 위기와 그 결과 앞에 부질없는 자책과 과도한 감정적 반응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할아버지는 아는 것이다. 책임질 것은 책임져야겠지만, 지난 일을 붙들고 있느라 지금을 놓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터득한 삶의 혜안은 그만하길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아이들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덜 힘겹고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할아버지의 모험을 접한 아이들은 일상의 소중함과 지금에 감사하며 호들갑스럽게 반응하던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힘을 조금이나마 가지게 될 것이다.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보다 더 효과적으로 말이다. 소기의 목적을 가진 긴 말이 때로는 얼마나 지루한 것인지 더 말해 무엇하랴.

작가가 주인공을 '노인'으로 설정한 것은 참으로 현명하다. 인생의 위기 앞에 저런 심드렁함을 보일 수 있는 연령대는 높을수록 공감하기 좋다. 삶의 소란 앞에 달관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어느 연령이나 가능하겠지만, 그 태도가 어울리는 것은 아무래도 노년층이다.

물론, 삶의 지혜는 나이와 상관없이 터득할 수 있으며 나이와 상관없이 전달할 수 있다. 세월의 무게는 통찰력을 좀더 키워주겠지만, 인류의 지적 통찰은 세대를 불문하고 이루어진다. <그만하길 다행이야!>는 그러한 지적 통찰을 웃음과 함께 담아내며 세련된 위트를 선사한다.

한 해가 저물고 있다. 기쁘고 행복한 일이 많았다면 좋았지만, 어쩐지 시간은 돌이켜 살피면 후회와 자책할 일들로 가득하다. 상처받고 아파한 일도 부지기수이다. 후회도 자책도, 슬픔도 좀더 용기를 내기 위한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 아팠던 지난 시간은 그저 '그만하길 다행이야!'라고 호기롭게 흘러보내고 새해를 희망으로 맞이하길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그만하길 다행이야! - 어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는 긍정의 힘

제임스 스티븐슨 (지은이), 신형건 (옮긴이), 보물창고(2010)


태그:#그만하길다행이야, #제임스스티븐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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