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JTBC <뉴스룸> 문화초대석에 출연한 가수 양준일

지난 25일 JTBC <뉴스룸> 문화초대석에 출연한 가수 양준일 ⓒ JTBC

 
"시대를 지나치게 앞서간 탓이었을까, 그의 음악과 퍼포먼스는 그 시대에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단지 음악이 하고 싶었지만 한국 사회에 그가 설 곳은 없었고 결국 몇 곡의 히트곡과 궁금증만을 남긴 채 사라진 진정한 슈가맨…. 그의 조용조용한 회고담 속에는 그 시절 한국사회의 자화상이 모두 담겨있었습니다."

손석희 앵커는 "다들 놀랐고 왠지 모를 미안함을 느꼈던 순간"이라 묘사했다. 그러면서 지난 9일 JTBC <뉴스룸>의 앵커 브리핑 '양준일... 나의 사랑 리베카'을 온전히 양준일이란 '시간여행자'에게 바쳤다.

손 앵커는 앞선 6일 JTBC <슈가맨을 찾아서> 시즌3(이하 <슈가맨3>)에 출연해 화제를 모은 양준일의 사연을 전하며 1990년대 초반 양준일이란 재미교포를 거부하다시피 했던 한국사회를 이렇게 묘사했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손가락질하거나, 아예 견고한 벽을 쌓아버리는 사회. 가혹했던 그 시절 탓에 몸짓과 손짓 하나까지 예사롭지 않았던 가수는 삼십 년이란 시간 동안 묻혀 지내야 했습니다."

"무대에서 노래를 하면 돌이 날아왔다"거나 "너 같은 사람이 한국에 있는 것이 싫다며 비자 연장을 거부했다"던 양준일의 사연은 분명 많은 이들에게 성찰을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손 앵커가 던진 "지금 시대에 또 다른 양준일이 등장한다면 과연 세상은 선뜻 환영의 불을 켜줄까?"란 질문처럼, 우리 사회는 과거와 다르지 않은 길에 서 있다. 손 앵커의 문제제기는 이랬다.

"자유롭고 글로벌한 세상이 되었다고는 하나, 나와 다른 이를 험하게 밀쳐내는 마음은 여전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 생각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인터넷과 SNS는 물론, 거리에서는 오늘(9일)도 서로를 향한 삿대질과 욕설의 전쟁이 진행 중입니다. 연예인들은 과거와는 아예 수위 자체가 다른 '악플'이라는 예리한 칼로 인해서 상처받고 있죠."

롤러코스터 같았다던 양준일의 30년
 
 지난 25일 JTBC <뉴스룸> 문화초대석에 출연한 가수 양준일

지난 25일 JTBC <뉴스룸> 문화초대석에 출연한 가수 양준일 ⓒ JTBC

 
눈물이 났다고 했다. <슈가맨3> 출연은 슬프지 않았지만, <뉴스룸> '앵커 브리핑'을 보고 울었단다.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고 내가 보이는 구나" 싶어서. 손석희의 눈에 "내가 보인다는 느낌"을 받아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지 않는 것 같아서. "내가 왜 존재하나라는 퀘스천마크"를 지워주는 것 같아서.

25일 JTBC <뉴스룸>에 직접 출연한 양준일이 '앵커 브리핑'을 본 소감이다. 이러한 직접적인 고백에 손 앵커는 "들으면서 민망하긴 합니다만 아무튼 좀 숙연해지기도 하고 그렇습니다"라며 살짝 민망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 '문화 초대석'은 24일 앵커 하차를 공식화한 손 앵커가 <뉴스룸>의 앵커 자격으로 진행한 마지막 인터뷰였다. 인터뷰 말미 손 앵커도 "오늘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입니다, 저한테. 왜냐하면 저의 마지막 문화초대석 손님이시기도 합니다"라며 '앵커 하차'를 재차 확인하기도 했다.

'앵커 손석희'에게는 <뉴스룸> 앵커로서의 '마지막 인터뷰'였지만,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 정착을 도모하며 '컴백'을 준비 중인 양준일에게는 30년 만의 첫 인터뷰라 할 수 있었다. 오는 31일 팬미팅을 시작으로 음원과 광고, 뮤지컬 출연 제안을 받고 있다는 양준일의 얼굴은 기쁨과 당황스러움이 교차하는 듯했다. 양준일은 그런 자신의 상황을 '쇼크'로 표현했다.

"제 표정이 한마디로 얘기를 하면 쇼크 먹은 표정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인생이 그냥 롤러코스터 같았었어요. 롤러코스터 같았었고 그리고 실질적으로 제가 그 삶을 살면서 쓰레기를 많이 버려야 되는, 그러니까 쓰레기라는 게 제 머릿속에 있는 쓰레기를 많이 버려야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왜냐하면 나의 과거를 보면 꼭 그게 나의 미래로 그냥 이어간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을 자꾸 버려야지, 버려야지. 그래서 예를 들어 행복하기 전에 불행함을 버려야 되는 것처럼 해서 제 머리에서 가득 차 있는 나의 나 자신에 대한 편견이라 그럴까요. 그것을 버리느라고 노력을 거의 뭐 생활처럼 했었었어요."


<슈가맨3>에 출연해서 자신의 생활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놨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는 진실한 고백이었다. 그렇게 그의 30년 만의 '강제 소환'이 더 특별한 것은 양준일이란 존재가 대중과 언론의 시야에서 완전히 지워져 있었고 유튜브를 통해 '강제 소환'된 드라마틱한 과정도 과정이지만, 양준일 스스로가 롤러코스터와 같은 삶을 부정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이 준 신선한 충격 때문이기도 했다.

재미교로포서, 또 시대를 한 발 앞서 갔다 평가받는 대중예술인이 겪어야 했을 고충도 고충이지만, <슈가맨3>에서 보여준 30년이란 세월 속에 녹아있는 아버지로서, 생활인으로서의 담담함이, 그 무형의 공감대가 특유의 순수함, 진실함과 더불어 양준일을 호감으로 만들어 준 것이다. 오는 31일 오후 4시와 8시 두 차례 마련된다는 양준일의 생애 첫 번째 팬미팅 자리에 대한 손 앵커와의 문답도 그러한 양준일의 진실함을 엿보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왜 슈가맨에서 그러셨잖아요, 팬 여러분들한테 왜 하필 나를 만났느냐. 그래서 어찌 보면 그 팬미팅은 서로가 위로해 주는 그런 팬미팅이 될 것 같습니다." (손석희)

"저한테는 이런 대규모의 팬미팅이 처음이고, 그냥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박수쳐주는 팬미팅이 돼서 기대도 됩니다. 모든 팬 분들이 제가 그 팬미팅에서 그냥 나의 진실한 모습을 남기고 왔다는 것을..." (양준일)


잔짜 슈가맨 양준일
 
 JTBC <슈가맨3>에 출연한 양준일의 모습

JTBC <슈가맨3>에 출연한 양준일의 모습 ⓒ JTBC


"예를 들면 거기 영화에 나오는 로드리게스는 굉장히 혁신적이고 천재적인 음악을 했는데 하필 그때 밥 딜런이 있었고요. 양준일씨 역시 매우 혁신적이고 천재적인 음악을 했는데 하필 그때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왔고. 그리고 뭐랄까, 또 여러 가지 공통점을 찾아낼 수가 있었는데 로드리게스는 사실은 소수민족이었잖아요.

그런데 그때 일화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만, 그 당시에 굉장히 젊은 재미교포라는 존재는 한국 사회에서는 어떤 또 다른 의미에서의 소수민족일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차별받았다라는 것. 그런 생각. 그리고 결국은 매우 소박한 노동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이어갔다라는 것. 그리고 다시 재조명을 받으면서 등장했다는 것. 너무 똑같지 않습니까?"


손석희 앵커는 다큐멘터리 영화 <슈가맨을 찾아서>의 주인공을 양준일에게 빗대며 거듭 놀라고 있었다. 양준일 역시 "너무 똑같아요"라며 "예를 들어 100년이면 100년 이런 사이클에 한 번씩 나오는 스토리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비슷한 것 같다"고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이러한 손 앵커의 고백에 동참해야 할 듯 싶다. 그렇게, 그때 그 시절 수많은 대중들이 양준일을 몰라봤고 그냥 지나쳤다. 양준일 데뷔한 다음 해, 서태지와 아이들은 대한민국을 집어 삼키면서 '문화 대통령'에 등극했다. '리베카'가 설 자리는 없었다.

양준일이 천재인지, 천재적인 음악을 했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할 수 있다. <리베카>의 도입부는 지금 들어봐도 자넷 잭슨의 < Miss You Much >와 판박이다. 분명한 것은 미국에서 온 이 청년이 '뉴잭스윙' 등 당대 미국의 장르 음악을 한국에 이식하려 노력했다는 사실이리라.

사실 더 흥미로운 것은 음악 그 자체보다 양준일이 강제 소환되는 양상이었다. 이른바 '온라인 탑골공원'의 인기에 힘입어 올해 들어 유튜브를 중심으로 이뤄진 양준일의 재발견은 말 그대로 전무후무한 장면이라 할 수 있었다.

유튜브 세대들이 선사한 '90년대 지디', '온라인 탑골공원 지디'란 별명과 세대를 넘나든 열광 역시 그 누구도 누리지 못한 새로운 장면이었다. 누구는 앞서간 그의 패션에 열광했고, 누구는 30년 전 양준일의 신선한 외모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퍼포먼스에 환호했다.

'취향 저격'에 집중하는 유튜브의 노출 알고리즘은 각 지상파 방송사들이 편집해서 내놓은 과거 자료화면 영상에 수백만에 달하는 조회 수를 선사하는데 일조했다. 더불어 <슈가맨3>에서 보여준 양준일의 순수함과 솔직함도 화제였다. '꼰대'에 대한 비호감이 넘쳐나는 시대에, 그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이 50대 남자의 시간이 멈춘 듯한 화법과 표정이야말로 신선함 그 자체로 다가올 법했다.

그리하여, 양준일이 이 시대의 '재기의 아이콘'으로, '세컨드 찬스의 대명사'로 등극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천재적인 음악'이란 평가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젊은 시절 자신만의 열정을 불살랐던 대중예술인이 '자식 세대'로부터 환호를 받고 재발견되는 장면은 누구에게라도 감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시간이 되면요. 시간이 되면 다 하고 그냥 여러분들이 저를 원하는 동안은 그것을 다 해 보고 싶습니다."

50대로 접어든 90년대 스타 '양준일의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또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그가 본인의 음악과 매력 이외에 외적인 요소로 활동에 지장을 받아야 했던 30년 전과 달리 그를 방해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번엔 양준일이 시간이, 불행보다 행복이 깃들었으면 하는 그 시간이 30년 전 보다 좀 더 오래 허락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양준일 손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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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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