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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9일 새벽 마사회 운영의 부조리가 담긴 유서를 남기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문중원 경마기수.
 11월 29일 새벽 마사회 운영의 부조리가 담긴 유서를 남기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문중원 경마기수.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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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먼저 써야 할지 모르겠네…. 도저히 앞이 보이질 않는 미래에 답답하고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 다니던 학교도 그만두고 경마장에 인생을 걸어 보겠다고 들어왔는데 언젠가부터 기수라는 직업은 한계가 있었다."

이렇게 시작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 고(故) 문중원(40세) 경마기수의 장례가 보름이 넘도록 치러지지 못하고 있다.

고인은 "모든 조교사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일부 조교사들의 부당한 지시에 놀아나야만 했다"며 유서에 한국마사회의 부조리와 갑질을 폭로했다.

고인은 지난 11월 29일 새벽 부산경남경마공원 기숙사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고인의 빈소는 김해장유 한 병원에 마련되었다가 지난 4일 김해성모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겼다.

14일 오후에도 유족과 동료, 고인이 가입해 활동했던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부산본부 조합원들이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유족들은 요구사항이 해결되기 전까지 장례를 치르지 않기로 했고, 공공운수노조에 장례 여부를 위임했다. 유족과 공공운수노조는 '고인 죽음의 진상규명', '재방방지와 책임자 처벌', '마사회의 공식사과', '자녀 등 유가족 위로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노조와 마사회 측은 두 차례 면담을 했다가 14일 첫 공식협상을 벌였다. 이날 협상에는 마사회 측에서 정형식 부산경남본부장 등이 참석했다. 하지만 이날 협상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노조 측은 오는 18일까지 문서로 답변서를 달라고 한 상태이다.

한편 마사회가 오는 20일 '보전경주'를 치르기로 해 논란이다. 마사회는 고인이 사망 당일(11월 29일 금요일) 경주를 하지 않고 휴장했고, 이날 '보전경주'를 치르기로 한 것이다. 부산경남경마공원은 매주 금‧일요일에 경주를 해오고 있다. 마사회는 올 한 해 연중 계획을 세우면서 12월 20일은 휴장하기로 했다. 그런데 당초 휴장하기로 했던 날에 '보전경주'를 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노조 관계자는 "마사회가 돈 밖에 모른다"며 "당초에 20일은 휴장을 하기로 했기에, 기수와 마필관리사 등이 휴가 일정을 잡아 놓았는데 엉망이 되었다. 그리고 휴장 날짜에 경주를 하는 건 단체협약에 따르면 합의 사항이고, 시간외 근무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했다. 노조는 '보전경주'에 항의하며 오는 16일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마사회 규탄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부산 강서경찰서는 고인이 남긴 유서에서 언급한 부조리‧갑질 등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는 고인 사망 뒤 마사회가 경찰에 수사의뢰했던 것이다.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는 "수사에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관련자들의 은행통장이나 통화내역을 조사해야 하는데 일부만 제출이 되었다고 한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다보니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는 "마사회는 부정경마 연루로 판단이 되면 강제로 기수의 통장과 통화내역을 제출하도록 했고, 제출하지 않으면 1년간 자격정지 등 징계를 준다"며 "고인의 죽음에 대해 마사회가 수사의뢰를 했으니, 관련자들의 자료를 마사회가 확보해 경찰에 넘겨야 할 것"이라고 했다.
   
11월 29일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의 구조적 부조리와 다단계 갑질을 주장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문중원 경남기수의 장례를 보름 넘게 치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김해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
 11월 29일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의 구조적 부조리와 다단계 갑질을 주장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문중원 경남기수의 장례를 보름 넘게 치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김해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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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9일 새벽 마사회의 부조리 등을 지적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부산경남경마공원 문중원 경마기수의 분향소를 찾은 장인이 4일 고인의 영정 사진을 어루 만지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11월 29일 새벽 마사회의 부조리 등을 지적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부산경남경마공원 문중원 경마기수의 분향소를 찾은 장인이 4일 고인의 영정 사진을 어루 만지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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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은 마음이 더 아프다. 빈소에서 만난 고인의 장인(61)은 "40살의 젊은 사람이 오죽했으면 그랬겠느냐. 사위를 보내고 나니 마사회의 큰 벽을 실감한다. 약한 사람들은 인간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고 했다.

장인은 "사위는 조교사 면허를 따고 나서 '마방'을 받을 거라고 여겼지만 몇 번이나 좌절이 되니 힘들어 했던 것 같다"며 "발표가 나기 전에 이미 누구는 되고 안 된다는 소문이 나 있었고 결과가 그대로였다"고 했다.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는 지금까지 7번째 노동자가 희생되었다. 2015년 3월 기수, 2010년 3월 기수, 2011년 11월과 2017년 5월‧7월 마필관리사, 그리고 2019년 7월 기수가 극단적 선택을 했던 것이다.

정영석 본부장 "불가피한 요인이라 보전경주 해야"

정영석 본부장은 이날 오후 전화통화에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책임자처벌, 사과는 경찰의 수사 결과가 나와야 대응하겠다. 유가족 위로보상은 생각한 바 없다"고 밝혔다.

'제도개선'과 관련해 정 본부장은 "마주와 조교사, 기수 등과 관련이 있다. 15일 마주들과 상생협력을 하는데, 의견 수렴을 해서 제도 개선을 할 것"이라고 했다.

20일 보전경주에 대해 정 본부장은 "지난 11월 29일 경주를 하지 못해서, 상금을 지급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상금을 똑같이 나눌 수는 없다. 보전경주를 해서 상금이 나가도록 하는 게 맞다"며 "휴장 기간은 '예비 경마 기간'이기도 하다. 불가피한 요인으로 발생한 것이라 보전경주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고 했다.

경찰 수사와 관련해 그는 "저도 수사를 받았고, 관련자들이 수사를 받았으며, 자료 제공도 하고 있다"고 했다.
 
11월 29일 새벽 마사회 운영의 부조리가 담긴 유서를 남기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문중원 경마기수와 관련해 부산경남경마공원에  펼침막이 걸려 있다.
 11월 29일 새벽 마사회 운영의 부조리가 담긴 유서를 남기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문중원 경마기수와 관련해 부산경남경마공원에 펼침막이 걸려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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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 #문중원, #공공운수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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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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