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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사 학자들, 교육부에 개선 촉구…"현지어 표기조차 틀려"
"근현대사 늘리고 공동체 관점 개발해야…학자 양성도 필요"

(세종=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정부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10개국과 인도를 묶어 '신남방 국가'라 부르며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려 애쓰고 있지만, 미래 세대에게는 신남방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교육계에 따르면, 서강대 윤대영 교수 등 사단법인 한국동남아연구소 연구진은 교육부가 용역을 맡긴 '아세안·인도 근현대사 교육 강화를 위한 방안 정책연구' 결과보고서에서 이처럼 지적했다.

연구진은 "한국과 신남방은 다양한 분야에서 상호 교류가 왕성해지고 있는데, 여전히 한국에서 신남방은 가난하고 열등·낙후한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다"면서 현행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서도 이런 경향이 발견된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아세안에 관해서는 "(현행 교과서가) 동남아의 역사를 '주변부의 역사'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동남아사의 서술 관점이 중국·인도 등 외부 영향을 강조하고 있으며, 인도와 무리하게 연관 짓거나 중화주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세계사 교과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동남아 지역에서 일어난 복합적인 역사·사회·문화적 변동에 관한 서술이 취약하다"면서 "미얀마의 '버강' 왕조를 영어식인 '파간'으로 잘못 쓰는 등 현지어 표기조차 틀린 경우가 있다"고 꼬집었다.

연구진은 인도에 관해서는 "종교적이고 정신적인 나라, 가난하고 못 사는 후진국, 잠재력이 큰 나라 정도로만 기술하고 있다"면서 "한국중심주의나 유럽중심주의에 입각한 기술 방식도 발견되며, 식민 사관을 답습한 부분도 있었다"고 분석했다.

대다수 교과서가 다루는 인도 '세포이 항쟁'의 경우에도 연구진은 "2년간 진행된 봉기의 성격은 거의 언급하지 않으면서, 세포이들이 돼지기름이 묻은 탄창을 입으로 뜯기 싫어하는 작은 불만에서 항쟁을 일으킨 것처럼만 기술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세포이 항쟁이라는 명칭 자체가 영국인들이 대규모 민간인 봉기를 깎아내리기 위해 붙인 이름인데, 오랫동안 인도사 전공자가 없었던 한국이 편향된 시각을 수용했다는 게 연구진의 지적이다. 연구진에 따르면 인도 역사학계 의견 등을 고려했을 때 '1857년 인도 봉기'가 바람직한 용어다.

연구진이 중·고교 교사 67명에게 '1년 동안 동남아시아사 수업 시간이 얼마나 되냐'고 묻자, 가르치지 않거나 1∼2시간만 가르친다고 응답한 교사가 62.7%(42명)였다.

교과서와 수업이 부실한 탓에 학생들은 동남아시아의 개념도 잘 모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진이 고등학교 3학년 105명을 대상으로 '알고 있는 동남아 국가'를 묻자 67%가 4개국 이하를 적었고, 1개국을 적은 학생도 15%였다. 대만, 몽골, 부탄 등 동남아에 속하지 않는 국가를 적은 학생도 있었다.

연구진은 "인도와 동남아를 하나로 묶어서 서술하는 체계 자체부터 재고해야 한다"면서 "동남아 고대사·중세사보다 근현대사 비중을 늘리고, 동아시아 공동체라는 큰 그림에서 동남아 역사를 이해하는 관점을 개발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이들은 "동남아가 기원전부터 인도·서남아·유럽과 동북아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을 조명해야 한다"면서 "근현대사는 자문화 중심주의와 지배자·정치사 중심주의, 식민 사관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언어 중심으로 돼 있는 대학 학과 체계를 지역학 또는 융복합 학제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면서 "현재 전국의 200여개 사학·역사교육과에 인도사 전공 교수가 단 한 명도 없는데, 이 역시 정부 차원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hyo@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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