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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일 숨진 고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 민족통일장 영결식이 10일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7일 숨진 고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 민족통일장 영결식이 10일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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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대 맨 앞에 있던 사람'이라는 비난 댓글조차 늘 민중운동 선두에 섰던 고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에겐 '최고의 훈장'이었다.

지난 30여 년 민중·민주·통일운동을 이끌다 지난 7일 밤 숨진 고 오종렬 의장(향년 81세) 민족통일장 영결식이 10일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임종 직전 이글이글거리던 아버지 눈빛 잊지 못해"

 
▲ '데모대 맨 앞 사람' 고 오종렬 의장 영결식 고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 민족통일장 영결식이 12월 10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열렸습니다. 부고 기사에 달린 ‘데모대에 맨 앞에 있던 사람’이라는 비난 댓글조차 고인에게 '최고의 훈장'이라고 할 만큼 그는 늘 민중운동의 선두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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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 8시쯤 서울대병원 빈소에서 진행된 발인을 시작으로, 오전 9시쯤 서울시청 앞 광장부터 광화문 광장까지 1시간 남짓 운구 행진을 벌였다. 영정과 영구차를 선두로 고인의 평소 바람과 어록을 적은 수십 개의 만장 행렬이 이어졌고, 수백 명의 동지와 조문객들이 그 뒤를 따라 걸었다.

광화문광장 북측 연단에 마련된 영결식장에서는 묵상과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민중의례를 시작으로, 평소 고인과 함께 활동했던 진보연대를 비롯한 주요 시민사회노동단체 대표들의 추모사와 추모공연, 분향까지 1시간 30분에 걸쳐 엄숙하게 이어졌다.

고인은 교사 생활을 하던 지난 1987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전신인 전국교사협의회 출범 참여를 시작으로 민중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전국교사협의회 대의원 대회 의장을 맡았고, 전교조 초대 광주지부장으로 활동하다 구속되고 해직되는 등 전교조와 인연이 깊다. 이날 고인의 약력 소개도 권정오 전교조 위원장이 맡았다.

고인은 지난 1999년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 상임의장을 맡으면서 민중운동 지도자 반열에 올랐고, 이후 통일연대 상임대표, 전국민중연대 공동대표,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 등을 맡으며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 사건, 한미FTA 저지 투쟁, 광우병 소고기 투쟁 등의 중심에 있으며 수배와 구속, 수감 생활을 반복했다.

지난 2014년 2월 간경화와 급성신부전증으로 건강이 악화됐고 6년여 투병하다 지난 7일 오후 10시 57분 숨졌다.(관련기사 : '민중운동 지도자'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 별세 http://omn.kr/1ltur)

 
 고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 민족통일장 아들 오정규씨가 10일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인사하고 있다
 고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 맏아들 오정규씨가 10일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민족통일장 영결식에서 인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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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 힘없던 아버지가 임종 서너 시간 전부터 눈을 부릅뜨고 깜빡이지도 않고, 특유의 짙은 눈썹과 이글이글하고 형형한 눈빛으로 강렬하게 하늘을 치켜 바라보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유가족을 대표해 나온 맏아들 오정규씨는 이날 수백 명의 동지들과 시민 앞에서 아버지 임종 순간을 생생하게 전했다. 오씨는 "아버지가 그 고통 속에 운명과 사투하면서도 눈을 감지 못하고 염원했던 뭔가가 있는 것 같다"면서, "우리 가족보다 아버지의 동지들이 판단해서 그 한과 염원을 꼭 실현시켜 달라"고 당부했다.

송경동 시인도 이날 조시 '우리는 당신을 보내지 않습니다'에서 "한없이 따뜻하던 그 마음과 말씀도/ 그 형형한 눈빛, 그 거센 포효/ 모두 우리 가슴 속에 명징하게 살아있으니..."라며 고인 특유의 강렬한 눈빛과 우렁찬 연설을 떠올렸다.

이날 영결식에는 상임장례위원장인 이창복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을 비롯해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박행덕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등이 직접 참석해 추모사를 했고, 이재명 경기도지사, 이상규 민중당 대표 등 정관계 인사도 참석해 애도했다.

이창복 의장은 이날 조사에서 "우렁찼던 그대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선한데, 조국과 민중을 걱정하던 그대의 얼굴이 여전히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어찌 그리 먼저 가셨나"라면서 "민족민주운동의 오랜 동지를 먼저 보내는 아픔이 너무 크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의장은 "당신은 한국진보운동의 선각자이자 참된 지도자였다"면서 "민중들이 들고 일어 설 때면 그 전선의 첫 자리에 항상 당신이 있었다, 모두 단결하여 힘을 모아야 할 때면 가장 먼저 제안자가 돼 길을 열었다"고 회고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도 "단 한 순간도 투쟁의 최전선을 비우지 않은 오종렬 의장은 교사 노동자의 선봉이자 자주민주통일 운동의 지도자였다"면서 "이 절체절명의 시기에 맞은 부고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프고 안타깝지만, 우리는 오종렬 의장의 결의를 받아 모든 노동자민중과 함께 드팀없이 싸워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6.15민족공동위원회 해외측 위원장인 손형근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 의장도 이날 직접 참석하지 못 했지만, 한미경 전국여성연대 대표가 대신 읽은 조사에서 "20년 전 통일운동 지도자로서 처음 일본을 방문한 오 의장은 곽동의(전 한통련) 의장과 백년지기 만난 듯 이야기를 나누었든 그 누구보다 해외통일운동과 한통련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을 보여줬다"면서 "지금 자주민주통일운동의 중심을 잃은 것은 크나큰 손실이지만 이 슬픔을 딛고 운동을 더욱 전진시키는 것이야말로 의장의 가르침과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데모대 맨 앞에 있던 사람'이란 비난 댓글조차 최고의 훈장"

 
 고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 영결식이 열린 10일 오전 9시쯤 서울시청 앞 광장부터 광화문 광장까지 운구 행렬이 이어졌다. 영정과 영구차를 선두로 고인의 평소 바람과 어록을 적은 수십 개의 만장 행렬이 이어졌고, 수백 명의 동지와 조문객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고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 영결식이 열린 10일 오전 9시쯤 서울시청 앞 광장부터 광화문 광장까지 운구 행렬이 이어졌다. 영정과 영구차를 선두로 고인의 평소 바람과 어록을 적은 수십 개의 만장 행렬이 이어졌고, 수백 명의 동지와 조문객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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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고인이 상임공동대표를 맡았던 한국진보연대를 이어받은 문경식, 박석운, 한충목 상임대표들도 이날 결의문에서 '사상은 뿌리 깊게! 표현은 얕고 낮게! 연대는 넓디 넓게! 실천은 무궁토록!'이라는 고인의 말을 되새겼다.

고인의 부고 기사에 붙은 '데모대에 맨 앞에 있던 사람'이라는 비난 댓글조차 고인에게 최고의 훈장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이들은 "의장님은 항상 민족과 민중이 요구하는 투쟁의 맨 앞에 계셨다"면서 "비록 비난일지라도, 그 댓글은 의장님께 부여된 최고의 훈장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의장은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이 외면받고, 많은 이들이 다른 길을 찾아 떠나던 시기, 자주민주통일 운동이 혼란에 빠져 외면받던 시기, 산처럼 버티며 위기에 빠진 우리의 운동, 우리 민족, 민중의 미래를 지켜냈다"면서 "그렇게 우리는 이제 북미가 대화하고 이 땅에 평화체제를 구축하며, 외세와 외국군을 저들의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우리 민족이 하나 되는 '새로운 시대'가 보이는 언덕에 올라서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있다"면서 "외세를 몰아내고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통일을 이루는 그날까지 우리는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날 서울에서 영결식을 마친 영구차는 유가족, 동지들과 함께 고인의 고향인 광주로 떠났다. 이날 오후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마련하고, 11일 발인과 광주 금남로에서 5.18학교까지 이어지는 노제를 거쳐, 광주 망월동 민주열사 묘역에 고인을 안장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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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미디어 분야를 주로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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