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05 18:13최종 업데이트 19.12.05 18:13
  • 본문듣기
'오디오'가 아니고 '전축'이라 불리던 시절, 고장난 LP판을 틀면 판이 튀면서 똑같은 소절이 반복되곤 했다. 다시 소환된 노무현 정부 때의 '종부세 폭탄론'이 언론을 통해 무한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전축 바늘이 한 곳에 머물며 내던 그 기분 나쁜 소리가 다시 떠오른다. 국민들이 '지겨우니 그만 하라'고 아무리 말해도 많은 언론이 이미 흘러간 '종부세 폭탄론'을 계속 틀고 있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가 호가 18억 원(공시가격 10억)인 마포 래미안푸르지오는 22만 원, 호가 22억 원(공시가격 11억 2000만원)인 강남 은마아파트는 48만 원이라는 기사를 보면서 종부세와는 아무런 관련 없는 99%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언론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

1% 중의 1% 집부자 걱정하는 언론
 

종부세 납부 시기가 다가오자 예의 '종부세 폭탄' 논리를 펼치고 있는 언론들.

 
마포 래미안푸르지오와 강남 은마아파트 두 채를 가지고 있는 한 40대 직장인의 종부세가 402만 원에서 1,134만 원으로 늘어 종부세 폭탄을 맞았다며 "집값을 내가 올린 것도 아닌데... 양도세 부담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을 전하고 있는 한 신문의 기사를 보면 '국민에 대한 무시가 도를 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 마포 래미안푸르지오와 강남 은마아파트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된다고 이 사람의 하소연을 온 국민이 들어주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 40대 다주택자 직장인은 종부세 대상자 1% 중에서도 다시 1%에 해당하는 특이한 사례임이 거의 분명한데, 이 사람의 의견이 종부세 대상자를 대표할 수는 없다.


직장인이라면 근로소득세에 비해 종부세가 얼마나 적은지 잘 알텐데, 정말 이렇게 말한 사람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종부세 대상이면서 '납세의 의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텐데, 굳이 국민적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는 개인의 하소연을 기사에 담아 그 사람을 공공의 적으로 만드는 것도 이해하기 힘든 언론의 행태이다.

'강남의 최고가 아파트가 몇 억씩 올랐다', '평 당 1억 원 시대가 열렸다'는 실시간 중계 보도로 무주택 서민들에게 거의 매일 절망을 안기며 투기를 부추기는 기사를 쏟아내더니 이번에는 '종부세가 올랐다'고 아우성이다. 호가가 20억 원 전후인 아파트의 종부세가 100만원 미만이라는 사실은 가볍게 무시된다. 단기간 몇 억씩 상승한 아파트 가격은 몇 억 씩 하락하기도 한다는 사실 역시 가볍게 무시된다.

아무리 신문 구독률이 과거에 비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신문 독자가 올해 종부세 대상인 약 60만 명보다 몇 배는 많을텐데, 철저히 종부세 대상자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신문 기사가 쏟아지는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여러 가지 가설을 세워 볼 수 있을 뿐이다.

'한 달에 1만8,000원을 내는 독자보다 막대한 광고비를 기꺼이 지불하는 건설사가 더 중요한 고객이다', '사주인 건설 자본의 이해 관계를 대변하기 위해서이다', '종부세 폭탄론으로 노무현 정부의 정권 재창출 저지에 성공했던 것처럼 정권 교체를 위해서이다', '기사를 쓰는 기자나 편집권을 가진 데스크가 종부세 대상자로 스스로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등의 가설을 세워보지만, 언론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 때문에 '설마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언론이 '종부세 폭탄론'을 반복하는 이유 찾기는 결국 미궁에 빠진다.

'종부세 폭탄론' 기사를 볼 때마다 '종부세가 아직 너무 약하구나', '노무현 정부 때의 종부세 폭탄론은 허구였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수 십 억짜리 아파트에 대한 현행 종부세가 얼마나 낮은지를 반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기자들이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라는 엉뚱한 상상까지 하게 된다. 이렇게 종부세 기사가 계속 쏟아지면 이념 성향과 상관없이 종부세에 대한 국민 의견의 대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명박 정권이 무력화시킨 종부세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18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국회의원 보좌진들은 의안과에 법안을 1호로 제출하기 위해 밤을 새웠다고 한다. 결국 당시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이 제출한 종합부동산세 완화 법안이 1호 법안이 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종부세 무력화를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했다. 부과 대상을 6억 원 초과 주택에서 9억 원 초과로 상향조정해 대상을 축소하였고, 세율을 인하하였으며,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도입하였고, 세 부담 상한을 150%로 낮추었다. 공정시장가액 비율은 80%의 할인율을 의미하는데, 과세표준을 낮춰 부자 감세로 이어지게 되는 장치이다.

공정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오히려 '반공정시장가액 비율'이라는 이름이 더 걸맞는 제도였다. 세 부담 상한은 주택 가격 상승으로 종부세가 올라도 전년에 비해 50% 이상 올리지 못하게 하는 역시 부자 감세 장치였다. 고령자와 감면, 장기보유자에 대한 세액공제 제도도 도입하였다.

2018년 발표된 9·13 대책에서는 무력화되어 있던 종부세를 일부 정상화하는 조치가 시행되었다. 다주택자를 중심으로 세율을 인상하였고,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상향조정하였으며, 다주택자의 세 부담 상한을 200∼300%로 상향하였다. 올해는 공정시장가액 비율이 85%로 상향되었는데, 매년 5%씩 상향되어 2022년에는 100%가 될 예정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이루어진 종부세 무력화를 위한 다양한 수단 중 일부가 시정되었을 뿐이다. 1주택 세대에 대해서는 세율, 세 부담 상한이 이명박 정부 때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호가 20억 전후 고가 아파트의 종부세가 100만 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호가 22억 원(공시가격 11억 2000만 원)인 강남 은마아파트의 종부세가 48만 원에 불과한 또 다른 중요 원인은 실거래가에 비해 과세표준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이 너무 낮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는 공시가격의 실거래가 반영률을 낮춰 꼼꼼하게 종부세를 무력화시켰다. 지역별, 가격대별로 공시가격의 실거래가 반영률이 크게 다른데, 강남처럼 주택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고가 주택일수록 반영률이 낮은 것은 조세 형평성 측면에서 매우 큰 문제이다.

다행히 정부가 조만간 '공시가격 개선 방안(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주택 시장의 안정과 함께 보유 자산에 따른 세 부담의 형평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강력한 대책이 발표되기를 기대한다.
 

서울 송파구 아파트 단지 모습. ⓒ 연합뉴스

 
이젠 양도소득세까지 깎아주라고?

종부세 폭탄론과 함께 '보유세를 높였으면, 거래세라도 낮춰 다주택자에게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는 주장도 언론을 통해 반복되고 있다. 취·등록세가 거래세이고, 엄연히 소득세인 양도소득세를 거래세로 둔갑시켜 '낮추라고' 한다.

내 집 마련의 꿈을 가지고 사는 무주택 서민과 중산층, 내 집 마련의 꿈조차 꾸지 못하는 청년과 저소득층은 주택을 사고 팔면서 생기는 시세 차익에 부과되는 양도세를 낮춤으로써 어떤 혜택도 보지 못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묻지마 양도세 감면'을 주장한다.

9억 원 이하 1세대 1주택 비과세, 조세제한특례법에 따른 양도세 비과세, 10년만 보유하면 80%에 달하는 장기보유특별공제, 임대등록시 양도소득세 중과 배제 등 기존의 양도세 감면만으로도 주택을 사고 팔아 시세 차익을 얻는 사람들에 대한 혜택은 지나치다. 현행 법제도 하에서 근로소득세와 사업소득세에 비해 양도소득세는 너무 합법적으로 회피할 방법이 많다. 불노소득인 양도세의 실상을 무주택 서민들이 알게 되었을 때 느낄 분노는 종부세의 실상에 대한 국민적 분노보다 클 것이다.

양도세 감면이 이루어지면 안되는 이유는 또 있다. 양도세 감면이 이루어지면 그동안 오른 시세 차익 실현을 위해 많은 매물이 쏟아질 것이고, 높은 가격에 주택을 사게 된 실수요자는 향후 주택 가격 하락시 모든 위험을 떠안게 된다. 최근 단기간에 주택 가격이 급등한 만큼 낮은 가격에 주택을 구입한 원소유자가 장기간 그 주택을 가지고 있어야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주택 가격 하락에 따른 사회적 파장을 최소화 할 수 있다.

올해 상반기 이후 서울의 일부 아파트가 수 억 원 씩 올랐지만 그렇게 사고 팔린 아파트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폭탄 돌리기'가 제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언론은 '종부세 폭탄론'과 다주택자의 퇴로 마련을 위해 '양도소득세를 감면하라'는 엉터리 처방 반복을 멈추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소중한 신뢰자산이어야 할 언론이 신뢰를 잃는 길이기 때문이다. 슬기로운 국민은 '종부세 폭탄론'에 한번 속지 두 번은 속지 않는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