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퍼 디스코> 포스터

영화 <수퍼 디스코> 포스터 ⓒ 명필름랩

 
지난 십여 년 사이 인디 밴드를 다룬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가 다수 등장했다. <반드시 크게 들을 것>(2009), <좋아서 만든 영화>(2009),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이야기>(2010), <반드시 크게 들을 것 2: WILD DAYS>(2012), <노후 대책 없다>(2016), <인투 더 나잇>(2016),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2017), <불빛 아래서>(2017) 등이 극장가에 걸렸다. 영화제까지 범위를 넓히면 작품은 더욱 늘어난다.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의 하위 범주에 '홍대 인디 밴드' 장르를 따로 만들어도 될 정도다.

다큐멘터리 영화 <수퍼 디스코>도 이 계보에 들어간다. 영화는 인디 밴드로 활동하는 '술탄 오브 더 디스코'와 레이블 '붕가붕가레코드'의 분투기를 화면에 담았다. 먼저, 술탄 오브 더 디스코는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많을 테니 간단한 설명이 필요하지 싶다.

홍대 최초의 립싱크 댄스 그룹을 표방한 '술탄 오브 더 디스코'는 '장기하와 얼굴들'을 배출하며 홍대 앞 인디 신에 혜성처럼 나타난 레이블 붕가붕가레코드의 간판스타다. 나잠 수와 윤석원이 프로젝트로 함께 노래를 해보자고 해서 즉흥적으로 만든 곡 <너무너무 좋아>로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영화 <수퍼 디스코>의 한 장면

영화 <수퍼 디스코>의 한 장면 ⓒ 명필름랩

 
결성 초기엔 MR에 맞춰 립싱크 공연을 하는 퍼포먼스 그룹으로 출발했다. 2010년 나잠 수(보컬, 댄스), J.J.핫산(댄스, 코러스), 김간지(드럼), 지(베이스), 홍기(기타)로 현재 진용을 확립한 이후부턴 정통 디스코 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하는 밴드로 활동 중이다.

한국 독립 음악 신에선 보기 드물게 펑크, 디스코를 구사하는 밴드지만, 처음엔 그저 괴상한 팀이란 오해를 받았다. 그러나 2013년 발매한 첫 정규앨범 < The Golden Age >가 제11회 한국대중음악상 댄스&일렉트로닉 최우수 앨범 부문 후보에 오르며 음악성을 인정받았다.

<수퍼 디스코>는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매니저였던 이주호 감독이 2014년부터 4년 동안 밴드와 함께 생활하며 촬영한 결과물이다. 2014년 음악 다큐 <씨 없는 수박 김대중>을 연출한 바 있는 이주호 감독은 2014년 술탄 오브 더 디스코가 세계 최대 규모의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에 공식 초청된 것을 계기로 이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기로 결심했다고 말한다.
 
 영화 <수퍼 디스코>의 한 장면

영화 <수퍼 디스코>의 한 장면 ⓒ 명필름랩


<수퍼 디스코>는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2집 앨범이 나오는 과정을 상세히 카메라에 기록한다. 어느 음악 다큐멘터리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수퍼 디스코>도 '날 것 그대로'가 특징이다. 난무하는 욕설, 멤버들의 속내,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의 고민, 계속되는 토론이 가감 없이 드러난다. 특히 회사의 매출을 적나라하게 공개하는 2016년 붕가붕가레코드 워크숍 장면은 충격적이다. 오죽하면 EIDF 고혜현 프로그래머로부터 "음악 다큐멘터리로서 '솔직함'을 무기로 치자면 거의 핵폭탄급"이란 평을 받았겠는가!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2집 앨범은 늦어도 2016년 하반기엔 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2018년 하반기가 되어서야 2집 앨범이 발매되었다. 왜 그렇게 늦어진 걸까? 가장 큰 이유는 곡을 만드는 나잠 수가 창작욕을 잃었기 때문이다. "디스코 음악을 너무 완성시키고 싶다"며 의욕을 불태우던 나 잠수는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에 참가하며 개그 밴드로 취급 받는다는 콤플렉스와 가짜 음악을 한다는 두려움을 떨쳐버린다. 분위기론 곧 2집 앨범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잠 수는 매너리즘에 빠져버린다. 나중엔 "펑크, 디스코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지경에 이른다. 다른 멤버들에게도 비슷한 감정은 엿보인다. 이들은 해외 진출과 반복되는 공연 등에 지친 것이다.
 
 영화 <수퍼 디스코>의 한 장면

영화 <수퍼 디스코>의 한 장면 ⓒ 명필름랩


영화는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음악적 열정이 고갈되는 과정과 고건혁 대표의 회사 운영에 대한 애로사항을 함께 조명한다. 고건혁 대표는 술탄 오브 더 디스코가 모멘텀을 상실할 것을 우려하여 2집 발매, 해외 진출 등 다음 단계에 대해 다양하게 고민한다.

반면에 나잠 수는 다음 단계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 창작과 비즈니스 중간에서 두 사람은 줄다리기를 거듭한다. J.J.핫산은 이런 문제로 수많은 뮤지션이 인디 신을 떠나는 것을 보았기에 두 사람의 입장 모두 이해가 간다고 털어놓는다.

고건혁 대표는 회사가 어려움을 겪으며 꿈과 열정이 사그라든다. 2010년 TED 강연에서 "자긍심을 가지고 대중과 소통하며 자기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게 저희가 지향하는 인디 음악"이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던 모습은 사라진 상태다. 그저 "재미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영화 <수퍼 디스코>의 한 장면

영화 <수퍼 디스코>의 한 장면 ⓒ 먕필름랩

  
충돌과 상호보완을 오가던 술탄 오브 더 디스코와 붕가붕가레코드는 2집 앨범을 만들며 한 단계 성장한다. 음악을 규정짓는 것에 피로를 느끼던 나잠 수는 음악적 제약을 두지 않는 변화를 꾀하며 창작의 실마리를 찾는다.

그렇게 고건혁 대표의 소개를 빌리자면 "이전의 디스코를 넘어서는, 디스코 이상의 디스코" 타이틀곡 <수퍼 디스코>, 그리고 다양한 장르 음악이 뒤섞인 앨범 2집 앨범 < Aliens >가 태어난다. 그리고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음악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만난다. 이주호 감독이 원했던 방향은 아니었지만, 영화는 돌고 돌아 멋지게 마침표를 찍었다. 바로 "다시 뛰는 심장의 장단, 기다려왔던 변화의 시간"(<수퍼 디스코> 가사 중에서)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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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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