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이 아시아 출신 투수 최초의 사이 영 상 수상에 실패했다. 그러나 그는 여러 가지로 아시아 야구 역사의 또 다른 한 획을 긋는 계기를 만들어냈다.

14일(이하 한국 시각) 2019 메이저리그 각 리그 사이 영 상 수상자 발표에서 류현진은 내셔널리그 사이 영 상 투표 2위에 올랐다. 비록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류현진은 아시아 투수 최초로 1위표를 1표 이상 얻어내는 성과를 올렸다.

사이 영 상은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승 투수인 사이 영(511승)의 이름을 따 그가 사망한 이듬해인 1956년부터 제정됐다. 처음에는 메이저리그 전체 1명에게만 시상했으나 1967년부터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에서 각각 시상했다.

전미야구기자협회(BBWAA) 소속 기자 30명이 처음에는 1명에게만 투표했으나, 1969년 동점이 나온 뒤로는 1970년부터 최대 3명씩 우선 순위를 매겨 투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2010년부터는 기자 1명이 1위부터 5위까지 투표하며 1위표 7점, 2위표 4점, 3위표 3점, 2위표 2점, 5위표 1점을 매겨 총점 1위에게 시상한다.

아시아 투수 최초의 1위표 획득, 최종 수상은 실패

이번 사이 영 상 투표에서 류현진은 1위표 1장(7점), 2위표 10장(40점), 3위표 8장(24점), 4위표 7장(14점) 그리고 5위표 3장(3점)을 받았다. 총 점수 88점으로 72점을 획득한 통산 3회 수상자인 맥스 슈어저(워싱턴 내셔널스)를 제쳤다. 슈어저는 1위표 없이 2위표 8장(32점), 3위표 8장(24점), 4위표 6장(12점), 5위표 4장(4점) 등을 포함하여 3위에 올랐다.

처음 발표한 시점에서는 류현진이 슈어저와 함께 공동 2위로 발표됐다. 그러나 류현진의 2위표 득표수가 6표로 잘못 계산된 것이 발견되어 수정되었고, 이에 단독 2위로 바뀌었다. 실수로 인해 일부 표가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워싱턴 내셔널스)에게 잘못 집계된 탓이었다. 

아시아 출신 투수가 사이 영 상 투표에서 2위에 오른 적은 여러 차례 있었다. 2006년 대만 출신의 왕 치엔밍이 2위에 올랐고, 2013년에 일본 출신 다르빗슈 유(당시 텍사스 레인저스, 현 시카고 컵스)가 2위에 올랐으나 둘 다 1위표를 받지는 못했다. 2006년에는 요한 산타나가 트리플 크라운을 기록하는 바람에 1위표를 싹쓸이했고, 2013년은 슈어저의 사이 영 상 첫 수상 시즌이었다.

류현진이 내셔널리그 사이 영 상 투표 2위에 오를 수 있었던 요소는 평균 자책점이었다. 류현진은 29경기 선발 등판하여 182.2이닝 14승 5패 평균 자책점 2.32에 163탈삼진을 기록, 아시아 출신 투수 최초로 리그 평균 자책점 타이틀을 수성했다. 내셔널리그는 물론이고 메이저리그 전체 선발투수를 통틀어 가장 우수한 평균 자책점이었다.

그러나 부진했던 4경기 성적으로 인해 더 많은 1위표를 가져오진 못했다. 8월 12일까지 12승 2패 평균 자책점 1.45로 압도적인 페이스를 달리고 있었던 류현진은 이후 4경기 연속 부진을 포함하여 2승 3패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 제이콥 디그롬(뉴욕 메츠)이 강력한 구위를 내세워 사이 영 상 레이스에서 류현진을 제쳤다.

디그롬 2년 연속 사이 영 상 수상, 일부 지표에서 류현진 눌러

내셔널리그 사이 영 상은 디그롬이 2년 연속으로 수상하게 됐다. 디그롬은 2018년에 217이닝 10승 9패 평균 자책점 1.70에 269탈삼진으로 첫 수상에 성공했다. 당시 워낙에 승운이 없어서 수상 여부가 불투명했으나 시즌 마지막 등판에서 간신히 10승에 성공, 역대 선발투수들 중 10승으로 사이 영 상 수상에 성공한 최초의 투수가 됐다.

2019년에도 디그롬은 32경기에 선발로 등판하여 204이닝 11승 8패 평균 자책점 2.43에 255탈삼진을 기록했다. 다승과 평균 자책점, 이닝 당 출루 허용률(WHIP) 등에서 류현진에게 밀렸으나 이닝에서 류현진에게 크게 앞섰고, 탈삼진에서는 리그 1위에 올랐다. 리그 평균 자책점 2위, 이닝 3위, 탈삼진 1위, WHIP 2위 등으로 구위에 걸맞은 강력한 임팩트를 선보였다.

임팩트에서 앞섰던 디그롬은 1위표 29장(203점)과 2위표 1장(4점)으로 도합 207점을 기록, 내셔널리그 사이 영 상을 수상하게 됐다. 공교롭게 투표 2위에 오른 류현진이 1위표 1장을 얻으며 디그롬의 만장일치를 저지하면서 평균 자책점 타이틀 역시 올 시즌 훌륭한 지표였음을 증명했다.

이 1표는 서던 캘리포니아 뉴스 그룹(SCNG)의 기자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에인절스 소식을 주로 다루는 마크 위커의 표였다. 위커는 디그롬에게 2위표를 던진 유일한 기자였으며, 3위표는 잭 플래허티(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4위표는 커비 예이츠(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그리고 5위표는 다승왕 스트라스버그에게 행사했다.

최종 투표 4위는 3위표를 가장 많이 얻은 플래허티(2위표 5장, 3위표 11장, 4위표 6장, 5위표 4장)에게 돌아갔다. 리그 다승왕 스트라스버그는 4위표와 5위표를 제일 많이 얻어 5위(2위표 6장, 3위표 1장, 4위표 9장, 5위표 8장)에 올랐다.

그 외에 1위표와 2위표를 한 장도 얻지 못했지만, 다른 순위의 표를 1장이라도 얻은 선수들이 몇 명 있었다. 마이크 소로카(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3위표 1장과 5위표 6장을 얻어 9점으로 6위에 올랐고, 소니 그레이(신시내티 레즈)는 5위표 4장(4점)으로 7위에 올랐다.

류현진의 팀 동료였던 클레이튼 커쇼는 3위표 1장을 얻어 3점으로 8위, 워커 뷸러는 4위표 1장을 얻어 2점으로 공동 9위에 올랐다. 류현진에게 1위표를 주었던 위커 덕분에 4위표 1장을 얻은 예이츠가 뷸러와 함께 공동 9위를 기록했다.

사이 영 상 발표에 앞서 워렌 스판 상을 수상한 패트릭 코빈(워싱턴 내셔널스)은 5위표 1장을 얻어 사이 영 상 투표 11위에 올랐다. 워렌 스판 상은 메이저리그 왼손 투수 역대 최다승 투수인 워렌 스판을 기념하여 1999년부터 메이저리그 왼손 투수 1명에게 시상하고 있는데, 류현진보다 탈삼진에서 앞섰던 코빈이 생애 첫 수상의 영광을 얻었다.

벌랜더 통산 2회 수상, 같은 팀 경쟁자 콜 제쳐

아메리칸리그에서는 베테랑 투수 저스틴 벌랜더(휴스턴 애스트로스)가 같은 팀의 젊은 투수 게릿 콜을 제치고 통산 2회 수상에 성공했다. 2006년 신인상 수상, 2011년 리그 사이 영 상과 MVP 동시 수상 후 8년 만의 수상이다. 

사실상 애스트로스의 집안 싸움이었던 아메리칸리그 사이 영 상 투표는 벌랜더와 콜 둘이서 1위표를 모두 가져갔다. 벌랜더가 1위표 17장, 2위표 13장으로 171점을 획득하여 총점 1위를 차지했다. 콜은 1위표 13장, 2위표 17장을 포함하여 159점으로 2위에 올랐다.

벌랜더는 올 시즌 34경기에 선발로 등판하여 223이닝 21승 6패 평균 자책점 2.58에 300탈삼진을 기록하며 통산 2회 수상에 성공했다. 첫 수상이었던 2011년에는 251이닝 24승 5패 평균 자책점 2.40에 250탈삼진이었고, 당시에는 사이 영 상 투표에서 1위표를 싹쓸이했으며 리그 MVP까지 동시 수상했다.

아메리칸리그 사이 영 상 투표에서 기타 순위에 오른 선수들은 1위표와 2위표를 거의 얻지 못했다. 총점 3위에 오른 찰리 모튼(탬파베이 레이스)이 1위표와 2위표를 한 장도 얻지 못하고 3위표만 18장을 얻는 등 총점 75점에 그쳤다.

2위 콜도 33경기 212.2이닝 20승 5패 평균 자책점 2.50에 326탈삼진이었다. 평균 자책점과 탈삼진에서 리그 1위를 차지했지만, 벌랜더 역시 300탈삼진을 돌파했고 다승과 이닝에서 벌랜더에게 밀린 것이 패인이었다.

아쉬웠지만 류현진에게는 최고의 시즌

류현진은 올 시즌 선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 상, 워렌 스판 상, 사이 영 상까지 3부문에서 모두 최종 수상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류현진은 KBO리그와 메이저리그 선수 생활을 통틀어 2006년(신인상, MVP)과 2010년(평균 자책점 1.82)을 뛰어넘어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14일 수상자를 발표했던 MLB 네트워크는 8월 12일까지 12승 2패 평균 자책점 1.45를 기록했을 때까지만 해도 류현진의 독주 체제였다고 언급했다. 8월 중순 이후 4경기에서 평균 자책점 9.95로 흔들렸던 것이 어느 정도 수상 불발에 영향을 끼쳤다는 의미인 듯하다. 

류현진이 워렌 스판 상 수상에 실패했던 것도 이러한 요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올해 생애 첫 워렌 스판 상 수상에 성공한 코빈은 202이닝 14승 7패 평균 자책점 3.25에 238탈삼진을 기록, 류현진과 같은 14승을 거뒀지만 이닝과 탈삼진에서 류현진에게 크게 앞선 기록을 보였다.

트리플 크라운 급의 압도적인 시즌을 보내지 않고서는 모든 지표에서 리그 최정상권을 차지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범타를 유도하는 효율적인 투구를 통해 실점을 최소화했던 류현진의 올 시즌은 수상 여부를 떠나서 개인적으로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한편 올 시즌 류현진과 동행하며 한국인 트레이너 최초로 메이저리그 팀 코치로 활동한 김용일 코치는 류현진이 올해 커리어 최고의 시즌을 만드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했다. 류현진의 FA 행선지에 따라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올 겨울도 류현진과 함께 국내 훈련을 함께할 예정이다.

FA 시장에서 류현진의 가치가 최종적으로 어떻게 보일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2018년과 2019년 류현진은 어깨 수술을 극복하고 다시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들과 경쟁하며 향후 진로를 밝게 했음은 분명하다. 수상에 실패했지만 류현진의 2019년은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야구 역사에 새로운 한 획을 그었음을 보여준 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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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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