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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와 충북도가 메디칼 특구와 바이오의약 특구지정을 신청했습니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대전세종충남지부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대전충남지회에서 특구 지정에 따른 문제점에 대해 기고 글을 보내왔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관련 기고를 여러 회에 나누어 싣습니다. 관심과 반론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지난 5일 열린 대전 바이오 메디칼특구, 충북 바이오 의약 특구 지정 반대 기자회견 모습.
 지난 5일 열린 대전 바이오 메디칼특구, 충북 바이오 의약 특구 지정 반대 기자회견 모습.
ⓒ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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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이다.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첨생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의 문제점을 간단히 설명하면 재생의료에 관한 임상연구를 할 때 심사기준을 완화해 우선 심사, 맞춤형 심사, 조건부 허가 등이 가능하도록 한 점이다. 우선 심사란 '치료 수단이 없는 질환에 투약하는 첨단 바이오 의약품을 다른 의약품보다 먼저 심사'하는 것이다. 맞춤형 심사는 '개발자 일정에 맞춰 단계별로 사전 심사'를, 조건부 허가는 '3단계(3상 임상시험) 이후 하는 조건으로 2단계(2상 임상 시험)만으로도 일단 의약품 시판을 허가'하는 것을 말한다. 즉 신속처리 대상 의약품을 지정해 조건부로 우선 허가해 선시판-후평가 하겠다는 것이다.

선시판 후평가

일반적인 의약품 임상시험은 3단계로 나누어 진행된다. 1단계(임상 1상 시험)로 소수의 정상인을 대상으로 안전성을 검증하고, 2단계(임상 2상 시험)에서 소수의 환자를 상대로 단기간에 유효성을 검증한다. 3단계(임상 3상 시험)에서 다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안정성과 유효성 확증을 위한 검증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해야 의약품로 허가를 받을 수 있다.

당연히 3단계(임상 3상시험, 아래 3단계)가 가장 중요하다. 때문에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3단계 시험은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돼 제약회사에게는 큰 부담이다. 반면 환자 입장에서는 허가를 받기 전에 그 약이 안전한지, 효과가 있는지를 검증하는 중요한 마지막 평가절차다. 

그런데 왜 3단계 시험 과정을 소홀히 하는 법이 통과됐을까? 앞서 제약회사들이 '규제 때문에 돈벌기 어렵다'는 하소연이 있었다. 이 때문에 의약품허가에 가장 중요한 3단계 시험을 면제해 주는 `조건부 허가`가 가능해 졌다. 그 대상은 바이오신약, 줄기세포 치료제나 유전자 치료제다. 오히려 일반 화학의약품보다 더 오랫동안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해야 할 약이다.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월, 가짜약 인보사 사태가 터졌다. 인보사. 코오롱생명과학이 세계최초 연골유래세포로 만든 관절염치료제라고 광고했다. 주사 한 대에 700만원이나 하는 연골재생효과는 없는 관절통완화 수준의 약이었다. 이 약은 시술받은 환자 3900명이 암유발에 대한 불안으로 평범한 일상을 파괴당한 사기약의 대명사가 됐다.

식약처는 코오롱생명과학의 허가자료만으로 조건부 허가해 관절염치료제로 한국에서만 시판사용했다. 유전자치료제는 15년 장기추적을 해 안전성을 관찰하도록 하고 있다. 1차 중앙약사심의위원회(아래 중앙약심)는 연골재생부분에 유의미한 효과를 확정할 수 없다고 이 약의 허가를 반려했다.

그런데도 식약처는 허가를 내주기 위해 중앙약심 일부 위원을 교체하고 2차 중앙약심을 열어 허가했다. 식약처가 '세계 최초 연골유래세포치료제'라는 데만 집착해 엉터리 심의를 한 것이다. '세계 최초' 타이틀과 보건의료로 경제활성화를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인보사 사태는 언제든 또 일어날 수 있다. 이 약이 가짜 사기약이라는 게 드러난 것은 미국의 3단계 시험 과정에서다. 주사약에 꼭 들어 있어야 할 연골재생유래세포가 없다는 게 이 실험에서 밝혀졌다.

지난 2016년 폐암치료제로 개발된 한미약품 올리타정(성분명 올무티닙)도 신속심사에 따라 3단계 시험 조건부 허가를 받아 시판됐다. 역시 결과는 이후 임상시험 과정에서 심각한 부작용으로 5명의 시험대상자가 사망했다. 

'조건부 허가'라는 예외조항은 매우 엄격한 기준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치료법이 없는 질환에 극히 제한적으로 시행해 현행 제도의 부실을 보완하면서 운영하여야 한다. 줄기세포나 유전자 치료제와 같은 바이오의약품의 경우 상대적으로 더 긴 시간(일반적으로 15년) 장기추적을 통해 안전과 유효성을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도 규제자유특례지구 지정기간 5년 안에 `조건부 허가`로 3단계 시험을 면제 받고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약을 바이오신약으로 광고하며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으로 치료의 희망을 기대하는 환자들에게 적용되게 해서는 안 된다. 말기 암 환자들이 개구충제인 '펜벤다졸'을 복용하고 있다는 최근의 언론보도만 보더라도 환자들의 치료에 대한 기대를 이용한, 검증되지 않은 바이오신약의 출시와 적용이 어떤 상황을 불러올지 짐작하게 한다.
 
지난 5일 열린 대전 바이오 메디칼특구, 충북 바이오 의약 특구 지정 반대 기자회견 모습.
 지난 5일 열린 대전 바이오 메디칼특구, 충북 바이오 의약 특구 지정 반대 기자회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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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국회의 이번 조치는 바이오 신약과 신의료기술 조기제품화에 목을 메고 있는 기업에게 '규제 완화'라는 날개를 달아 준 격이다. 기존 약사법·생명윤리법·혈액관리법 등과 관련한 규제를 일원화해 재생의료 관련 임상연구와 바이오 의약품을 신속하게 허가하는 법까지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할 수도 있는 위험하기 이를 데 없는 발상이다. 시장 진입이 빠르고 쉬운 만큼, 위험 부담 또한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결국 대전과 충청북도의 특구신청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의 몫이 된다. 

대전시와 충북도는 첨생법이 통과되자 의료와 의약 분야 특구를 신청했다. 대전은 '바이오 메디컬', 충북은 '바이오의약'을 각각 신청했다. 대전은 '체외진단제품 조기 시장 진출 실증'을 위해, 충북은 '자가유래세포 항암치료제 임시허가, 식물체기반 의약품 임상시험 실증'을 위한 규제자유특구 유치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첨생법 통과로 특구 지정만 되면 관련 기업연구소와 벤처기업이 몰려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업의 시장 진출을 돕기 위해 관련 규제를 추가 완화하는 계획도 세웠다. 정부는 오는 12일 국무총리 주재로 규제자유특구를 최종 지정, 발표할 예정이다.

대전시의 경우 특구 신청을 하면서 지역주민 대상 공청회를 '시민공청회'가 아닌 '기업 설명회 수준`으로 진행했다. 시민의 안전보다는 기업의 이해를 대변했다고 보이는 대목이다.

적어도 생명을 다루는 일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규제를 위한 규제는 철폐하는 게 마땅하다. 온갖 질병들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고 불치병에 걸린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새로운 의약품이나 의료기술의 개발은 인류의 지난한 숙제이자 권장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소중한 생명을 다루는 일에 기업 이윤이 규제 철폐라는 이름으로 생명 윤리보다 중시되서는 안 된다. 사람들의 질병이나 소중한 생명을 담보로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반드시 거쳐야 할 절차를 생략한 채 미완성 제품을 내놓게 하는 것은 불특정 환자들에게 상상하기 힘든 피해를 줄 수 있다. 

정부는 `바이오헬스 혁신전략`과 규제 완화를 하면서 투자유치와 일자리창출, 지역경제활성화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관절염 환자 3900명에게 주사된 인보사가 출시될 수 있었던 것도 바이오의약품 허가규제가 완화 됐기 때문임을 상기해야 한다. 

환자안전을 위협하고 의료비 증가를 초래할 대전 메디칼 특구와 충북 바이오 의약 특구 지정은 막아야 한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 의료비증가 등 환자가 감당해야 할 안전위협과 부담은 안중에 없는 기업을 위한 특구지정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대전세종충남지부 소속입니다.


태그:#바이오의약, #메디칼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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