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승환이 2일 오후 '제12차 공수처 설치, 검찰개혁 여의도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티셔츠에 그려진 촛불을 손으로 가리키며 촛불시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고 있다.

가수 이승환이 2일 오후 '제12차 공수처 설치, 검찰개혁 여의도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티셔츠에 그려진 촛불을 손으로 가리키며 촛불시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고 있다. ⓒ 유성호

 
이 음반에 새로움이나 재발견은 없다. 이승환은 여전히 양질의 소리샘으로 음악을 뽑아내고 있었다. 서정적인 발라드, 특유의 창법이 맴도는 거친 록 트랙, 코러스를 무겁게 담아 힘을 주는 구성의 반복까지. 앨범에는 그간 그의 작법이 여기저기 들어차 있다. 5년의 시간 차이를 두고 발매된 자그마치 정규 12집의 나머지 '반쪽'은 그렇게 지금까지의 이승환을 집대성한다.

그러나 이 거대한 차용에 '먼지'가 날리지는 않는다. 그는 이번에도 젊고 활력 넘치며 청춘의 사랑과 중년의 뭉근함을, 또한 사회 저항적 메시지를 옹골차게 들여온다. 밝은 분위기의 첫 곡 '30년'으로 지난날을 회고하다가 이내 '나는 다 너야', '너만 들음 돼'로 전달하는 생생하고 생기 어린 사랑의 발화는 이승환의 시선이 여전히 젊은 감각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데뷔 30년 차가 된 그는 지금까지 운동하며 세상을 본다. '어린 왕자'라는 타이틀이 과연 과하지 않다.

전반부가 밝고 조금은 힘을 푼 채로 노래한다면 중, 후반부는 이승환 스케일의 화려함을 뽐낸다. 진면목은 'Do the right thing'. 나머지 반쪽이자 먼저 나왔던 정규 12집의 앞면인 < Fall To Fly 前 >의 'Star wars'와 상응하는 이 곡은 펑키하고 록킹하며 재즈의 자유로움과 코러스의 흥겨움으로 중무장했다. 말 그대로 '자본'과 '음악성'이 만난 좋은 예. 꼼꼼하게 채워진 사운드에 귀가 즐겁고 군더더기 없이 딱 떨어져 끝나는 마무리에 노래가 탄탄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전작의 '내게만 일어나는 일'과 비슷한 흐름을 보이는 '10억 광년의 신호'는 피아노와 현악기로 공고한 감성의 탑을 쌓는다. 차오르고 터트리고 벅차오르는 호흡 아래 모스부호와 같은 효과음으로 무언가의 메시지를 던지는데 이는 어렵지 않게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와 피해자에게 향한다. 음악적 우회를 통한 '대화의 가능성'은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그가 전하는 따뜻한 위로다.

반면 '돈의 신'에는 냉철한 비판이 담겨있다(참고로 '돈의 신'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사업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삽질>의 뮤직비디오에 삽입되기도 했다-편집자 말). 록 오페라 형식으로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 등의 은유를 장착한 이 곡은 록의 시원시원함을 경유해 과거 정권에 일갈을 날린다.

한 곡, 한 곡의 확실한 정체성은 밝음과 어두움을 두서없이 오가는 음반 구성의 단점을 상쇄한다. 기존 이승환의 대표 발라드인 '천일동안',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풍의 '백야' 이후 강렬하게 달려 나가는 '돈의 신'이 배치되고, 자글자글한 사운드를 겹쳐 올리며 만든 발라드 '그저 다 안녕' 이후 미니멀한 사운드의 찰랑찰랑한 기타가 중심인 '생존과 낭만 사이'가 이어진다. 다시 한번 이 들쭉날쭉함의 경계는 곡 단위 확실한 콘셉트와 완성도가 무마시키니 웃다가 슬프고, 설레다가 마음 아픈 진행은 매 순간 현재가 된다.

5년에 걸쳐 만들어진 정규 12집은 그래서 '이승환의 현재'다. 지금껏 그의 음악적 질료들로 재생산한 이 음반에는 어떤 타협도 없다. 확실하게 사랑하고, 비판하고, 노래한다. 그 와중 대중의 취향을 놓치지 않았고 무언가를 잃을까 두려워 뒤를 돌아보지도 않는다. < Fall To Fly 前 >의 첫 곡 'Fall to fly'가 담았던 하락의 회색빛은 청아한 목소리의 곽이안이 부른 이번 < Fall To Fly 後 >의 끝 곡 'Fall to fly'로 맑고 빛나는 '비상을 위한 추락'의 서사를 완성했다. 매끈하고 단단하다. 여기에 30년의 세월은 빛 바란 추억이 아닌 지금의 순간일 뿐. 이승환은 살아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대중음악 웹진 이즘(www.izm.co.kr)에도 실렸습니다.
음악 리뷰 음악리뷰 이승환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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