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창원 LG가 올 시즌 10개 구단 중 첫 번째 두 자릿수 패배라는 불명예 고지에 먼저 등극했다. LG는 8일 창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9~2020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정규리그에서 서울 삼성에 65-76으로 패했다. 4승 10패에 그친 LG는 최하위 고양 오리온(3승 8패)보다 승률에서 앞서 겨우 9위를 유지했다.

LG 입장에서는 좋은 흐름을 이어갈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LG는 지난 6일 부산 KT를 제압하고 탈꼴찌에 성공했다. 부진하던 외국인 선수 버논 맥클린을 마이크 해리스로 교체하면서 득점력을 보강했고, 신인드래프트에서 1순위 지명권을 얻어 대학 최고 센터라는 박정현을 지명하면서 팀의 가장 큰 약점이던 토종빅맨 부재도 보완할 수 있게 됐다. 1라운드에서 오심 논란과 연장 접전 끝에 아쉽게 석패했던 서울 삼성을 잡는다면 중위권 진입도 노려볼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LG는 전반에 캐디 라렌의 활약을 앞세워 주도권을 움켜쥐고도, 후반 들어 수비가 급격하게 무너지며 뼈아픈 역전패를 당했다. 전반에 점수차를 더 벌릴 수 있었던 타이밍에 달아나지 못한 것도 아쉬웠다.

김시래의 공백이 크게 느껴진 경기였다. LG의 주전 포인트가드인 김시래는 햄스트링 부상으로 지난달 31일 원주 DB와 경기부터 5경기 연속 결장 중이다. 정성우와 이원대가 최근 출장 시간이 늘어나며 LG의 앞선을 책임지고 있지만 득점력이나 경기 운영 능력 면에서 모두 김시래보다 많이 떨어진다.

LG에는 라렌과 해리스라는 10개구단 최고의 득점력을 자랑하는 외국인 듀오가 있다. 하지만 LG는 이 두 선수의 각기 다른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라렌을 중심으로 2대 2 게임이 LG의 주 공격루트인데, 국내 선수들이 라렌에게 수비가 몰리는 틈을 타 외곽에서 오픈 찬스를 연결해주거나 아니면 골 밑으로 쇄도하는 라렌에게 한 박자 빠른 타이밍에 패스를 건네줘야 공격이 원활해진다.

하지만 삼성전에서 LG는 19개의 3점 슛을 던져 고작 4개를 성공시키는 데 그쳤다. 리바운드 싸움에서 35-22로 앞서고도 우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이유다. 1쿼터에만 14점을 몰아넣었던 라렌은 후반 들어 삼성의 밀집수비에 둘러싸여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6점 14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제 몫을 다했지만 동료들의 지원을 받지못하고 혼자서 승리를 이끌수는 없었다.

초반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해리스도 점점 약점이 드러나고 있다. 외국인 1인 출전제에서 라렌과 출전시간을 나누어야 하는 탓도 있지만 초반 3경기에서 29.3점을 올렸던 기세가 최근 2경기에 출전시간이 급격히 줄어들며 3점, 6점에 그쳤다. 해리스는 라렌과 달리 1대 1과 외곽 위주의 플레이에 강점이 있는 선수인데 동료들을 활용하는 능력은 떨어진다. 3쿼터에는 오히려 수비 조직력 면에서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았는지 여러 차례 실수를 저지르며 라렌의 휴식시간을 제대로 커버해주지 못했다.

1순위로 선발되며 신인왕 후보로까지 기대를 모았던 박정현의 활용도도 기대 이하다. 데뷔전이었던 6일 KT전에서 고작 2분 53초를 뛰며 리바운드 1개를 기록하는 데 그쳤고 삼성전에서는 아예 코트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대학과 프로의 격차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대학 최고 선수이자 이번 신인드래프트에서 몇 안 되는 즉시전력감으로 꼽힌 선수치고는 실망스럽다. 현주엽 감독으로부터 대놓고 살부터 빼야 한다는 지적을 받을 만큼 무거워 보이는 몸 상태는 과연 프로 입단을 준비한 선수가 맞나 싶을 만큼 자기 관리가 되어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박정현이 팀 전력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는 선수가 되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듯하다.

현주엽 감독의 고질적인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 대처 능력도 여전히 개선이 되지 않고 있다. 전반에 라렌의 득점이 폭발하고 준비했던 게임 플랜이 잘 가동되었을때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3쿼터부터 삼성이 장신 라인업으로 경기 운영에 변화를 주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상민 감독은 포워드지만 경기 운영능력이 있는 김동욱과 델로이 제임스에게 리딩을 맡기고 김준일-장민국-이관희 등 각 포지션별로 LG 수비수들보다 신장과 힘에서 우위가 있는 선수들을 활용하며 미스매치를 유도하는 전술을 구사했다. 전반에 가드진만 3명을 내세운 스몰라인업과는 정반대의 경기 운영이었다.

하지만 현주엽 감독에게는 이러한 '플랜B'가 없었다. 부랴부랴 해리스, 정희재, 정준원 등을 번갈아 투입했지만 미스매치는 해결되지 않았고 오히려 공격마저 정체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올 시즌 LG가 대체로 경기를 잘 풀어나갔던 경기에서도 후반 들어 뒷심부족 현상은 반복되고 있는 문제다.

LG가 이러한 불안요소들을 짧은 시간내에 해결하지 못한다면 반등은 어렵다. 가장 우선순위는 역시 김시래의 복귀지만 정확한 시점은 아직도 불투명하다. 사실 김시래가 있을 때도 오히려 LG의 경기력은 썩 좋지 않았다. 김시래와 외국인 선수 중심으로 편중된 공격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LG의 다른 선수들이 김시래가 없을 때 더 적극적인 농구에 적응해야한다.

그나마 LG에는 다음 경기인 14일까지 5일간의 휴식기간이 있다. 주말 다른 팀들의 경기를 지켜보며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빡빡한 일정에 지친 선수단이 체력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다. 하지만 휴식기 이후에는 14일 디펜딩챔피언 모비스를 시작으로 16일에는 꼴찌 경쟁을 펼치고 있는 오리온, 19일에는 우승후보 서울 SK를 상대로 잇달아 만만찮은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이미 10개 구단 중 가장 많은 경기(14경기)를 소화한 LG가 2라운드 후반까지 경기력에서 별다른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이제는 트레이드나 감독교체 같은 마지막 승부수까지도 과감하게 고려해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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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 현주엽 김시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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