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맷 윌리엄스 KIA 타이거즈 감독이 지난 17일 오후 광주-KIA 챔피언스필드 홈구장을 찾아 내부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 연합뉴스
현장 지도자 경험이 없는 프런트 출신 감독, 선수시절 화려한 활약을 펼치지 못했던 무명 선수 출신 감독, 심지어 메이저리그 올스타 출신에 감독상까지 수상한 역대급 경력을 갖춘 외국인 감독까지. 최근 한국프로야구에 등장한 신임 감독들의 면면이다. KBO리그에서는 모두 감독으로 첫 발을 내딛는 인물들이다. 경력도 개성도 모두 제각각이다.
올시즌이 끝나고 벌써 세 구단이 대대적인 개혁을 선언하며 감독 교체를 단행했다. 삼성 라이온스가 전력분석팀장 출신의 허삼영 감독을 새롭게 선임했고, 기아 타이거즈는 구단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사령탑인 맷 윌리엄스 감독을 낙점했으며, 마지막으로 롯데 자이언츠가 허문회 키움 수석코치를 새로운 사령탑으로 내정하며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전통적으로 한국야구에서 감독을 고르는 기준은 좋게 말하면 보수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한정적이었다. 지도자로서의 검증된 경험, 선수 시절 유명세, 구단 및 지역과의 연관성과 '순혈' 여부 등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곤 했다. 그러다보니 감독을 맡을 수 있는 인재풀이 나쁘게 말하면 '그 밥에 그 나물'이 되는 경우가 흔했다.
프로 초창기에는 이름값 있는 몇몇 인물들이 구단을 옮겨다니며 '회전문 인사' '돌려막기'를 한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감독 개인에게 집중된 권력이 너무 강하여 제왕적 권력을 누리는 권위주의형 감독들을 둘러싼 혹사-불통 논란이 종종 일어났다. 또한 한때는 세대교체 트렌드를 등에 업고 초보 감독 열풍이 불기도 했다. 하지만 지도자를 체계적으로 육성하거나 검증하는 시스템이 부족한 상황에서 유명세만 믿고 검증 안 된 인물을 성급하게 선임했다가 시행착오를 겪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최근 한국야구는 감독의 역할과 리더십을 바라보는 고정관념이 점차 바뀌고 있는 추세다. 무명 선수에 프런트 출신이었던 염경엽 SK 감독-장정석 키움 감독 등의 연착륙, 제리 로이스터-트레이 힐만같이 이전까지 KBO와 아무런 연고가 없던 외국인 감독들의 성공사례는 야구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반드시 스타 출신이 아니거나 KBO리그 경험이 없더라도, 혹은 감독 개인의 능력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리더십이 아니어도 충분히 프로야구에서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저마다 독특한 경력 지니고 있는 세 명의 감독
▲ 허삼영 삼성 라이온즈의 신임 감독 ⓒ 삼성라이온즈
다음 시즌부터 KBO리그에서 첫 선을 보에게 된 세 감독은 저마다 독특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 삼성의 신임 사령탑이 된 허삼영 감독은 1991년 삼성에서 프로야구 선수로 데뷔한 이래. 5년 동안 4경기 2.1이닝 동안 4실점, 평균자책점은 15.43에 그친 철저한 무명 투수였다. 지도자 경험도 아예 전무하다. 훈련지원요원을 거쳐 이후 전력분석팀에 합류한 이후 줄곧 프런트에서만 근무해오다가 일약 삼성의 사령탑으로 승진했다.
허문회 감독은 LG-롯데에서 평범한 선수시절을 보내고 지도자로 전향한 이후 코치로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다. LG 2군과 히어로즈 코치를 거치며 '타격 이론 전문가'로서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2013년 이후 염경엽(현 SK 와이번스 감독)-장정석 두 감독을 보좌하면서 전력상 저평가받던 소속팀이 7시즌 동안 무려 6차례의 포스트시즌 진출과 2회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기록하는데 기여했다. 합리적인 데이터와 시스템을 중시하는 프런트 출신 감독들의 리더십, 또한 효율적인 스카우트와 내부 육성으로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꾸준히 좋은 선수들을 배출하고 있는 히어로즈 구단의 노하우를 가까이서 체험해본 인물이라는 점에서, 리빌딩이 필요한 롯데가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보인다.
윌리엄스 감독은 허삼영-허문회 감독과는 또다른 의미에서 한국야구에 충격을 줬다. 전통적으로 순혈주의가 강한 타이거즈에서 외국인 감독을 선임한 것도 놀랍지만 경력이 역대급으로 화려하다는 점에 두 번 놀라게 된다.
윌리엄스 감독은 메이저리그 홈런왕-올스타-골든글러브-월드시리즈 우승을 두루 경험한 스타 출신 감독이다. 역대 KBO를 거쳐간 로이스터 전 롯데 감독이나 힐만 전 SK 감독보다도 야구인(선수-감독시절 모두 포함)으로서의 명성이 더 높은 외국인 감독이다. 이미 로이스터와 힐만의 성공으로 한국야구에서 소통이 제한적인 외국인 지도자나, 자율적인 메이저리그식 리더십이 통하기 어렵다는 편견도 사라진 지 오래다.
각 감독마다 개인의 명성이나 선임 배경에 차이는 있지만 공통점은 '수평적이고 합리적인 리더십', '데이터와 프런트 중심의 야구'를 선호하는 최근 KBO 구단들의 트렌드가 반영되었다는 점이다. 한국야구는 더 이상 과거처럼 감독들이 카리스마와 강한 권위를 앞세워 팀운영의 전권을 휘두르는 시대는 지났다. 감독의 역할은 주로 1군 운영과 선수단 장악에 국한되고 전반적인 팀운영과 육성은 프런트가 전담하여 시스템 위주의 역할 분담이 대세가 되고 있다. 감독들에게도 이제는 선수들 위에 군림하기보다 소통과 공감을 바탕으로 함께 눈높이를 맞추는 인화의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
새로운 감독들이 가져올 다양한 변화가 기대되는 이유
▲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키움 선수단과 하이파이브하는 허문회 수석코치 ⓒ 키움히어로즈
물론 과거와 다른 유형의 지도자들이 등장한다고 해서 모두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삼성과 롯데, 기아는 모두 프로 원년부터 오랜 역사를 지닌 명문구단이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최근 몇 년간 심각한 부침을 겪고 있는 팀들이다.
허삼영-허문회 감독은 불과 얼마 전까지 장정석이나 염경엽 감독이 그러했듯이 '화려하지 않은 무명 선수 출신 혹은 갓 데뷔한 초보 감독 출신으로, 개성 강한 선수들이 넘쳐나는 명문팀을 잘 이끌수 있겠는가', '구단내 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감독의 권한이 얼마나 보장될 수 있을까' 같은 의문부호를 극복해야한다.
윌리엄스 감독 역시 미국과는 전혀 다른 한국야구 시스템에다가 야구에 관한 극성팬덤과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타이거즈에서 성적과 세대교체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새로운 감독들의 연착륙 여부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일단 과거에 비하여 KBO 감독 후보들의 선택지가 넓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긍정적으로 볼 만하다. 더 이상 선수 시절의 명성이나, 구단-지역출신이라는 배경에 연연하지 말고 오직 현재의 능력과 자질, 비전을 놓고 객관적으로 인물을 검증할수 있다는 것은, 미래에 지도자를 꿈꾸는 야구인들에게도 좋은 자극이 될 만하다.
예를 들어 무명 선수와 프런트 출신일 경우 스타 출신 감독에 비하여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평범한 선수의 심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외국인 감독은 국내 감독과 달리 학연-지연이나 기존 한국야구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선수와 야구를 바라보고 판단할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종합적으로 선수를 대하는 태도, 훈련방식, 야구철학 등에서 좀더 다양한 형태의 리더십을 기대할 수 있다.
어차피 선수뿐만 아니라 지도자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경쟁해야 하는 시대다. 감독마다 과거의 스펙이 아니라 자신만의 확실한 색깔과 개성을 갖춘 차별화된 리더십으로 승부해야한다. 각기다른 배경과 야구철학을 가진 지도자들간 선의의 경쟁을 통하여 한국 야구의 수준도 높아질 수 있다. 새로운 감독들이 가져올 다양한 변화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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