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죽음, 정신질환, 정서적 폭력 문제 그리고 허무적인 세계관에 대해 유독 관심을 가진 감독이 있다. 최근 개봉한 아리 애스터 감독 작 영화 <미드소마>에서  대니가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것도 그녀의 여동생의 정신질환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며,  전작 2018년 개봉한 영화 <유전>이 중반까지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 내 균열, 정신병이 대대로 내려온다는 점, 그리고 비극적인 사건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애초에 없다는 허무함의 세계관을 그려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화 <유전>은 일주일 전 돌아가신 엄마의 유령이 집에 나타나면서 딸인 애니가 시종일관 불안해 하고 이후 자신에게 닥친 비극들에 대항하지 못하고 무너져버리는 이야기를 기본 골격으로 하고 있다. 
 
 영화 <유전> 포스터

영화 <유전> 포스터 ⓒ (주)팝엔터테인먼트 배급

 
장르가 공포 영화인 만큼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감을 놓칠 수 없다. 영화 <유전>은 가족 간의 균열이라는 묵직한 주제의식을 가져가면서도 시종일관 긴장감을 잃지 않도록 몇 가지 장치를 했다.

애니에게는 딸 찰리와 아들 피터가 있다. 수업 중 찰리는 학교 창문에 머리를 박고 죽었던 새를 찾으러 밖으로 나가고 이후 새의 머리를 가위로 싹뚝 잘라버리는 장면은 이후 찰리가 겪게 될 비극적인 죽음을 암시한다. 이후 관객은 비극적인 사건이 아들 피터에게도 일어날 것을 직감하고 그 전에 나타날 징조에 대해 집중하게 된다.
 
 영화 <유전> 스틸컷

영화 <유전> 스틸컷 ⓒ (주)팝엔터테인먼트 배급

 
애니는 과거 아들 피터의 침대에 불을 지를 뻔한 일이 있었다. 그녀에게는 몽유병이 있었는데 잠결에 한 손에 시너를 들고 있었다. 이후 피터는 애니에 대한 신뢰감을 갖지 못하고 그들의 관계는 악화된다. 이렇듯 몽유병이라는 설정은 애니가 이후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준다.

이웃집 여자라고 접근한 조안의 느닷없는 등장도 한몫 한다. 이미 애니는 딸을 사고로 잃어버린 터라 그녀에 대한 그리움으로 심적으로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이다. 이런 그녀에게 죽은 딸과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제안은 솔깃했다. 하지만 애니의 엄마 유품 사진첩에서도 조안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그녀에 대한 의문점이 생긴다.
 
 영화 <유전> 스틸컷

영화 <유전> 스틸컷 ⓒ (주)팝엔터테인먼트 배급

 
결말에 가서야 그들의 집안에 드리워진 저주의 실체가 드러나는데 이 부분은 잘 공감이 가지 않았다. 가족간 균열에 대한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있는데 느닷없이 나타난 반전 때문에 흠집이 난 느낌이다.

딸 찰리가 죽은 이후 애니는 그녀의 사고에 일조했던 아들이 태연한 것이 못마땅하다. 피터 역시 엄마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에 대한 해명을 듣지 못해 엄마와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가 없다. 그들이 서운한 감정을 한껏 터트리는 장면에 긴 시간을 할애했기에 앞으로 그들의 관계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 해주리라 기대했다. 잘못을 인지한다면 얼마든지 가족간의 관계를 복구시킬 수 있다는 희망이 나도 모르게 마음 깊숙이 있었나보다.

하지만 중반 이후부터 감독은 장르를 오컬트로 전환하면서 사람은 그저 운명이 끄는대로 꼭두각시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메시지에 집중한다.   

2019년작 영화 <미드소마>는 이보다는 좀더 희망적이다. 그녀는 여동생의 정신질환으로 엄마 아빠까지 화재로 잃고 방황 중이다. 그래서 애인 크리스티안에게 기대려 하는 데 정작 그는 그녀와 헤어질 생각을 하고 있다.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녀는 무기력해졌다. 이런 그녀가 우연히 가게 된 하지축제에서 공동체 사회인 '호르가 마을' 사람들에게서 위안을 받는다는 설정은 작은 희망을 갖게 한다. 적어도 내가 기댈 사람과 정을 붙일 공동체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으니깐 말이다.

현실에서 있을 법한 남자친구의 변심과 기만에 대한 복수극에 통쾌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호르가 마을의 전통 의식들은 남의 눈에는 괴기하게 보일지언정 마음에 위안을 주는 사람들과의 교류에 대한 이야기는 일부분 공감이 갔다.

다른 감독의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방식으로 인물들의 이야기를 전개하고자 했던 아리 애스터 감독의 시도는 통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전개가 어떻게 될지 예상되지 않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결말 부분에서 반전을 보여주려 했다면, 가족의 서사만큼 초자연적인 요소에 대한 단서들도 조금 더 성실하게 그려냈으면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랬다면 애니의 직업을 미니어처 조형사로 설정한 것과의 연결고리를 유추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지현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유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