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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의를 밝힌 조국 법무부 장관이 14일 오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를 나서고 있다.
 사의를 밝힌 조국 법무부 장관이 14일 오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를 나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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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장관이 임명 35일 만에 사퇴했다. 끝까지 완주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그가 아무런 수확도 거두지 못한 것은 아니다. 사퇴를 표명하는 글에서 밝힌 것처럼, 적어도 개혁의 불쏘시개 역할은 했다고 볼 수 있다. 장관 재직 중에 검찰개혁을 궤도에 올려놨으니, 그렇게 자평할 만도 하다.

물론 그가 혼자 해낸 일은 아니다. '촛불'의 재등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그럴지라도 그의 기여도를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만약 그가 장관이 되기 전에 일찌감치 포기했다면, 검찰개혁이 훨씬 힘든 상황에 빠졌을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음으로 미뤄야 했을 수도 있다. 그는 자신과 가족에게 집중 포화가 쏟아지는데도 꿋꿋하게 달려갔다. 그런 그의 모습은 국민들이 촛불을 들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도 그의 기여도를 평가해야 한다.

10월 들어 가동되기 시작한 일련의 검찰개혁은, 이 땅에서 현대적 검찰제도가 작동한 지난 100년 동안 단 한 번도 벌어지지 않았던 일들이라고 생각한다. 기득권 편인 검찰을 국민 편으로 끌어당기는 일대 사건이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조국 전 장관은 대한민국 역사가 기억할 만한 개혁가라고 평가한다. 

또, 검찰개혁은 검찰을 개혁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치검찰 배후의 수구 기득권 세력에 타격을 주는 것이 검찰개혁의 본질이라고 본다. 정치검찰을 방패 삼아 기득권을 누려온 수구세력과의 싸움이 이 개혁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싸움으로 소수 정치검사들이 불이익을 입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더 큰 불이익은 정치검찰을 더 이상 활용할 수 없게 되는 수구세력한테 돌아간다고 볼 수 있다. 정치검찰을 방패 삼아 자신들의 불법을 감추고 국민 대중을 억눌러온 수구세력이 법적 방어수단 하나를 잃게 되는 것이다.

이런 류의 싸움은 지금뿐 아니라 과거에도 많았다. 그리고 항상 격렬했다. 수구세력이 목숨을 걸고 달려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개혁의 선봉에 서는 사람들은 조국 전 장관처럼 거의 다 불행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 급제하자마자 권력기관 혁신한 조광조

조선 중종 임금 때의 조광조(1482~1520)도 그랬다. 개혁적 사림파(유림파·선비세력)인 김광필한테서 수학한 그는 25세 때인 1507년, 서얼철폐 등을 추구하는 혁명적 역모에 가담했다. 개국공신의 후예라는 점과 집안이 명문가라는 점이 감안돼 훈방 조치를 받지 않았다면, 그는 참수형이나 교수형을 받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운동권 선비'의 길을 포기하고 과거시험 준비에 매진한 그는 1510년 제1단계 과거시험인 소과에서 장원급제해 진사 자격을 획득한 뒤, 국립대학 성균관에 입학해 제2단계인 대과를 준비했다. 대과에 급제한 것은 34세 때인 1515년이다.

대과 급제 뒤 사간원(직언 담당 기관)에 배치된 그는 예전의 정치적 성향이 되살아나 개혁운동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그는 권력기관 개혁을 요구하는 상소문을 올렸고, 이는 중종의 마음을 움직였다. 중종은 사헌부(검찰청)와 사간원(직언 담당)의 정9품 이상을 전원 교체하는 일대 인사혁신을 단행했다. 단, 사간원 신참 조광조만은 제외했다.

과거에 급제하자마자 권력기관 둘을 혁신한 조광조는 중종의 전폭적 신임 하에 사상 최초로 사림파 정권을 꾸리고, 백성들의 전폭적 지지 하에 급진개혁을 단행했다. 조광조 정권에서는 성리학을 연구하는 선비 철학자 집단이 중앙과 재야에서 주도권을 장악했다. 과거에 급제했든 안 했든 선비 그룹이 국정 주도권을 장악했다는 점에서 사림파 정권, 유림파 정권, 선비들의 세상이라 할 만했다. 한국 역사에서 철학자 집단이 국정 주도권을 장악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이 정권이 지향한 방향 중 하나는 수구세력인 훈구파가 차지했던 관직과 명예와 재산을 사림파 쪽으로 넘기는 것이었다. 훈구파의 목줄을 죄는 쪽으로 개혁에 속도를 붙였던 것이다. 이는 훈구파의 증오와 저항을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계에서만 밀려났을 뿐 여전히 막강한 경제력을 갖고 있던 훈구파는 조광조를 비방하는 한편, 그와 중종 사이를 갈라놓으려 애썼다. 조광조가 임금 자리를 탐한다는 소문도 퍼트렸다.

이 시도는 결국 성공했다. 안 그래도 조광조의 인기 급상승을 불편해 하던 중종은 뚜렷한 혐의도 없이 조광조와 그 일파를 제거한 뒤 훈구파와 다시 제휴했다. 1520년, 조광조 나이 38세 때 일이다. 중종의 갑작스러운 배신으로 조광조는 순식간에 저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다.

훈구파는 갑자기 출현한 조광조와 그의 정권 때문에 몇 년간 멍한 상태로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그러다가 조광조가 갑자기 처형되자 그들은 제2의 조광조를 막고자 사림파를 가혹하게 탄압했다. 조광조를 두고두고 깎아내렸음은 물론이다.

만약 조광조 사후 47년 뒤인 1567년에 사림파가 선조 임금 즉위와 더불어 영구 집권에 성공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조광조는 훨씬 더 오랜 세월 두고두고 욕을 먹었을 것이다. 기득권층의 이해관계를 건드린 대가를 좀 더 오랫동안 치러야 했을 것이다.

왕들이 개혁 위해 '뉴페이스' 찾아 나서는 이유 
 
장관 없는 법무부 국감 조국 법무부 장관이 전격 사임한 가운데 15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김오수 법무부 차관이 자리로 향하고 있다. 단상 아래 놓여진 법무부 장관의 명패가 보인다.
▲ 장관 없는 법무부 국감 조국 법무부 장관이 전격 사임한 가운데 15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김오수 법무부 차관이 자리로 향하고 있다. 단상 아래 놓여진 법무부 장관의 명패가 보인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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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례는 동종 사례의 예시에 불과하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건 개혁가 상당수는 조광조와 비슷한 운명을 걸었다. 여타 분야 개혁과 달리, 기득권층의 이해관계를 직접 건드리는 개혁을 시도한 사람들은 거의 다 불행한 최후를 맞이했다. 억울하게 죽든가, 아니면 과도한 불명예를 입었다.

그런 개혁에 성공한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급진개혁을 담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고용된 CEO'들이었다. 이들은 급진개혁 성공 뒤 과도한 견제에 시달리다가 군주의 버림을 받든가 아니면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 기득권층과 싸우느라 자기 손에 피를 묻힌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옛날 군주들은 기득권층의 이해관계를 건드리는 급진개혁만큼은 자기 손으로 직접 수행하려 하지 않았다. 조광조는 물론이고 고려 신돈과 송나라(북송) 왕안석 등의 사례에서도 나타나는 것처럼, 군주들은 가급적이면 무명이나 신진을 전격 기용해 급진개혁을 맡겼다. 기득권층과 직접 부딪히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사실, 기성 정치권에서는 급진개혁의 적임자를 찾기 어려웠다. 기성 정치인들 중에서는 그렇게 용감한 인물을 찾아내기 힘들었다. 또 개혁을 가차 없이 진행하려면, 정치권과 인연이 별로 없는 인물이 여러모로 유리했다. 거기다가 과단성 있게 개혁을 밀어붙이려면, 덜 알려진 인물이 나을 수밖에 없었다. 잘 알려진 인물에게 개혁을 맡겼다가는 구세력의 신상 공격을 막아내기 힘들 수도 있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무명이나 신진을 찾아내 급진개혁을 맡겼던 것이다. 기득권층과 맞서는 개혁은 그 정도로 험난한 일이다.

이번에 조국 장관이 어느 정도 이룩한 검찰개혁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다. 기득권층에 맞서 싸운 수많은 개혁가들이 거의 다 겪었던 경험을 조국이라고 피할 수는 없는 법이다. 조국의 등을 더 떠민다면, 개혁은 좀 더 잘 수행되겠지만 그와 그의 가족은 힘들어질 게 분명하다.

그렇게 힘든 일이 될 줄을 어느 정도 예상했을 텐데도, 조국은 용감하게 검찰개혁에 뛰어들어 촛불집회의 단초를 제공하고 그 촛불의 지원에 힘입어 검찰개혁을 궤도 위에 올려놨다. 그래서 그는 적어도 실패한 개혁가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아쉬움이 강하게 남기는 하지만, 절반의 성공을 거둔 개혁가라고 평가할만하다. 그런 그의 퇴장에 박수를 쳐줘도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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