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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보수와 진보가 갈려 광장에 집결하고, 삼삼오오 무리 지은 곳에서는 어김없이 조국과 검찰개혁에 대한 생각이 오고 간다. 집안이라고 다를 것 없다. 정치 문제는 식구들의 들숨과 날숨에 섞여 어느새 머리 위, 지구로 보면 대기권 즈음 되는 곳에 얇은 구름을 형성하고 있다.

다른 집에서는 살아보지 않아 모르겠다. 우리 집에서는 저녁 식탁에 앉고부터 익숙한 상황이 전개된다. 뉴스 채널을 놓고 수십 년간 벌어지는 기 싸움이다.

보수 성향의 대구 출신 아버지와 진보 성향의 광주 출신 어머니 사이에는 한 치의 양보가 없다. 독립해서 집을 떠날 때까지 TV 리모컨은 항상 아버지 수저 옆에 놓였는데, 어쩌다 '캥거루족(부모님과 동거하는 청년들)'이 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갱년기 호르몬 전쟁을 거친 어머니의 전투력도 만만치 않게 높아져 있었다. 
 
밥상정치 식탁은 우리 집 밥상정치가 일어나는 곳이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결합은 미각의 영역을 벗어난 지 오래다.
▲ 밥상정치 식탁은 우리 집 밥상정치가 일어나는 곳이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결합은 미각의 영역을 벗어난 지 오래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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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중에도 두 분의 대화는 끊이지 않는다. 조국과 검찰 수사, 언론 보도를 주제로 탁구 치듯 가볍게 대화가 오가는가 싶더니, 어머니의 언변을 따라가지 못하는 아버지가 숟가락을 탁 내려놓으며 마침표를 찍으신다.

"이게 다 문재인 때문이다!"

말에 꼬리가 붙기 전에 아버지는 서둘러 소파로 자리를 옮기신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고 어머니 쪽을 힐긋 본다. 어머니의 굳게 다문 입 주위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 같다.

부모님은 서울에서 연애한 뒤 1982년 아버지 고향 대구에 정착하셨다. 전두환이 대통령인 시대였고, 광주항쟁이 벌어진 지 고작 2년이 지난 때였다. 대구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빨갱이 선동'이라고 믿어온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광주 외할머니댁에 날아든 계엄군의 총알을 잊을 수 없었다.

지역 감정이 고조되던 시기였다. 광주에서 온 어머니는 대구에서 차고 거센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사셨다. 주인은 전라도 새댁에게 전셋집을 내어주지 않았고, 동네 아주머니로부터 "전라도 사람은 거짓말쟁이인 줄 알았더니 아닌 사람도 있다"는 고백 아닌 고백을 들은 뒤 허탈감에 잠 못 이루셨다. 어머니 입에서 "거시기"나 "오메" 같은 말이 나오면 나부터 주위 눈치를 볼 때도 있었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 나는 다른 집 저녁 식사 풍경도 우리 집과 비슷한지 궁금했다. 대구 사람들이 지지하는 당 말고 다른 당을 지지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어머니가 낯설었다. 다른 집 어머니들도 고등어 살을 바르고 전을 부치며 정치를 논하는지 알고 싶었다.

"아무도 내 마음 모른다."

동네 친구들과 한바탕 수다를 떨고 온 어머니는 가끔 분통을 터뜨릴 때가 있었다. 정치 지향이 달라 야속한 대상이 남편에 국한된 건 아닌 듯했다.  
 
 4일 오후 대구 2.28기념중앙공원에 모인 1000여 명의 대구시민들이 휴대전화 불빛을 흔들며 '검찰개혁'을 외치고 있다.
 4일 오후 대구 2.28기념중앙공원에 모인 1000여 명의 대구시민들이 휴대전화 불빛을 흔들며 "검찰개혁"을 외치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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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대구 도심에서 열린 촛불 문화제에 다녀왔던 나는 "머리가 희끗희끗하게 센 할머니 할아버지도 간간이 눈에 띄더라"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밥상 정치에 갇힌 어머니가 한 번이라도 광장에서 시원하게 당신의 생각을 외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어머니 얼굴에 고무된 표정이 떠오르는가 싶더니 갑자기 그늘이 드리웠다.

"마스크를 끼고 나가야 하나?"
"홍콩도 아닌데 마스크는 왜?"
"사람들이 알면..."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사고의 흐름이었다. 어쩌면 대구 토박이인 나는 평생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래도 어머니는 용기를 내셨고, 국정농단 때도 들지 않았던 촛불을 검찰개혁을 위해 들기로 하셨다. 바로 내일(11일) 열리는 대구 촛불문화제에는 어머니와 함께 가기로 했다.

광장 정치가 난무하는 세상이라며 누군가는 혀를 찬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광화문과 서초역, 금남로와 동성로에 나와 자기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다. 어머니처럼 밥상에 갇힌 시민들이 자유롭게 생각을 외치는 정치야말로 살아 있는 민주주의가 아닐까. 광장의 외침을 정치로 수렴하는 건 정치인의 몫이다. 시민은 시민의 목소리를 내고,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역할을 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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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구호 일을 하다가 지금은 소설을 쓰고, 책방 운영을 준비 중입니다.

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