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예능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의 한장면

KBS 예능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의 한장면 ⓒ KBS

 
KBS 2TV의 인기 예능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현주엽(창원 LG 세이커스 감독)이다. 원희룡 제주지사, 심영순 요리연구가 등 다른 출연자들도 있지만 현주엽의 '먹방'이야말로 이 프로그램이 배출한 최고의 히트 상품이자 유일한 시청률 견인차라고 봐도 무방하다.

야채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올 패티' 대형 햄버거부터 필리핀식 통돼지 바비큐 '레촌'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양과 질 모두 차원이 다른 현주엽의 먹방을 보는 재미 하나로 매주 이 프로그램을 본다는 시청자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현주엽의 본업은 프로농구 감독이다. 사실 이 프로그램의 본래 콘셉트는 각 분야에서 성공한 '셀럽'들이 리더(사장)로서 구성원(직원)들과의 갑을 관계에서 벌이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보여주는 데 있었다.

현주엽이 출연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프로농구 창원 LG 선수들도 함께 나오게 되었다. 스포츠에 관심이 있는 팬들에겐 평소 보기 힘든 프로농구단의 운영과 선수들의 일상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소소한 재미를 주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장님 귀>에서 출연자들간의 '케미'는 희미해지고 양념같던 현주엽의 먹방이 사실상 볼거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객전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현주엽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기묘한 온도차
 
 KBS 예능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의 한장면

KBS 예능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의 한장면 ⓒ KBS


현주엽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기묘한 온도차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스포츠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일반 시청자들에게 현주엽은 그저 '먹방요정' '먹보스'로 불리며 잘먹고 덩치큰 중년 아저씨로 통할 뿐이다. 반면 먹방보다 '농구 감독' 현주엽으로서 바라보는 농구팬 시청자들 사이에선 오히려 부정적인 반응이 적지 않다는 게 흥미롭다. 농구팬들은 주로 선수들과의 관계에서 현주엽의 권위적이고 무례한 태도를 지적하며 불편하다는 반응을 내놓는다. 

현주엽의 태도 문제는 이미 방송 초반부터 지적되어왔다. 아마추어나 학생도 아닌 성인의 프로 선수들에게 자신의 취향과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심지어 두발이나 패션같은 사적인 영역까지 간섭하는 모습은 어느 정도 연출이 들어가는 방송의 특성을 감안해도 보기 불편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사장님 귀>가 한창 방송될 무렵 농구인 하승진이 유튜브를 통해 한국농구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며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지도자들'을 폐해로 지목했는데, 하필 현주엽이 방송에서 보여준 언행들이 하승진이 언급한 내용을 그대로 재현한 꼴이 되며 농구팬들로부터 '꼰대'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사실 현주엽의 언행들은 방송, 특히 웃고 즐기는 예능이라는 특성 때문에 오히려 미화되고 있는 측면이 적지 않다. 부상 때문에 훈련을 정상적으로 소화하기 어렵다고 호소하는 선수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묵살하고, 선수의 슛폼을 지적하다가 선수가 이의를 제기하자 정색하며 전체 선수들에게 '징벌성 슈팅훈련'을 지시하는가 하면, 부상으로 경기에 뛰지 못한 선수를 앞에 두고 '오늘 한 일도 없는데 밥을 먹느냐'라는 모욕적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모욕적 언행 예능 소재로 삼는 제작진도 문제
 
 KBS 예능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의 한장면

KBS 예능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의 한장면 ⓒ KBS


물론 방송에 비쳐진 모습이 100%퍼센트 진실이라고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다. 본인은 선수를 위해서 한 쓴 소리였거나 혹은 농담이었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듣는 사람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거나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도 일종의 폭력이다. 

그 와중에 '김종규 녹취파동'까지 터졌다. LG 소속이었던 김종규(현 원주 DB)가 FA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현주엽 감독과의 통화 내용이 LG 프런트에 의하여 무단으로 녹취된 것. 김종규는 LG와 불편한 결별을 하게 됐고, 현주엽도 선수와의 신뢰를 무너뜨렸다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며 도덕성에 흠집을 남겼다.

농구팬들 사이에선 현주엽과 LG 구단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나빠졌지만 정작 현주엽은 이후로도 이렇다할 해명을 하지 않았고 방송출연도 계속했다. 대중적 관심이 떨어진 농구가 아니라 야구나 축구에서였다면 팬들의 성난 여론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쩌면 더 큰 문제는 현주엽 본인보다 제작진에 있을 수도 있다. 방송은 편집이라는 막강한 힘을 통하여 개인의 이미지를 마음대로 포장할 수도 있고, 발가벗겨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다. 최근 이 방송이 위험 수위를 넘었다고 본 이유는 현주엽의 명백한 '갑질성 언행'마저도 예능의 웃음포인트 정도로 가볍게 소비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현주엽이 코트에서 선수들에게 수시로 욕설을 하는 장면이 등장할 때도 '해바라기'(욕설을 할 때 묵음처리하며 해바라기로 입을 가리는 특수효과)로 처리하며 출연자들끼리는 적당히 웃고 넘어가기도 한다. 

현주엽의 신선한 선택, 아름답게 마무리되려면

방송에서 비쳐지는 모습들이 단지 현주엽 개인에 대한 호불호로 끝난다면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역 감독'인 현주엽의 모습은 곧 작게는 LG 구단에서부터 크게는 KBL과 국내 지도자들의 이미지와도 직결될 수도 있다. 

사실 현주엽이 <사장님 귀>에 처음 출연하게 된 것도 본인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소속구단과 프로농구를 홍보하겠다는 목적으로 봐야한다. 스트레스와 업무에 쫓기는 현역 프로 감독이 예능 방송에 고정 출연한다는 것은 현주엽 이전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었고, 본인으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결정이었다는 점에서 그 자체는 용기있고 신선한 선택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방송이 현주엽 개인의 인지도는 물론이고 구단과 프로농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인 데 기여를 했다는 점은 일정 부분 인정한다. 하지만 현주엽 개인의 먹방쇼로 프로그램이 변질되면서 정작 본래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농구에 대한 관심도 높이기는 무색해졌다. 무엇보다 방송 속 현주엽의 꼰대스러운 언행들이 프로농구나 구단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될까, 하는 질문에 이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한편 방송 밖 '감독' 현주엽의 상황 또한 좋지 않다. 김종규가 떠난 이후 전력이 약화된 LG는 올시즌 하위권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초반 개막 2연패를 당하며 어려운 출발을 보이고 있다. 현주엽은 올시즌을 끝으로 LG와의 계약이 만료된다. 올시즌이 끝난 후 현주엽이 있게될 자리는 과연 농구 코트일까, 아니면 또다른 예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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