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커> 스틸컷

영화 <조커>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지난 2일 개봉한 영화 <조커>는 충분한 상상력으로 시대에 맞는 조커를 만들어 냈다. DC코믹스의 세계관을 따르지 않는 오리지널리티로 중무장한 안티 히어로물이다. 하지만 전혀 연결 고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고담 시, 아캄병원, 브루스 웨인 등 DC코믹스 원작 속 작은 단서들은 배치해 두었다.

역대 조커 역할을 했던 쟁쟁한 배우들의 아성에 도전하는 '호아킨 피닉스'는 그 자체로 조커였다. 다른 배우들은 생각나지 않을 만큼 압도적인 123분을 홀로 채워가고 있었다. 성마른 뱃가죽, 굽은 등, 주름골 깊은 얼굴은 우리가 익히 알던 조커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악당도 사연이 있을 것 같다. 악당에게 느끼는 연민,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희대의 악인이 탄생하다
 
 영화 <조커> 스틸컷

영화 <조커>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혼란의 고담시, 코미디언을 꿈꾸며 광대 분장으로 먹고 사는 한 남자가 있다. 홀어머니를 모시며 힘겨운 나날들을 보내는 이 남자의 이름은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사랑하는 엄마는 웃음을 주기 위해 태어난 아이라며 '해피'라고 부른다. 하지만 아서의 일상은 '언해피'다. 엄마는 늘 웃으라고 했지만 웃기는 쉽지 않다. 의지와 상관없이 웃는 병을 앓고 있는 아서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웃음이 터진다.

아서는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다. 아이러니하게도 억지웃음으로나마 세상과의 조우를 시도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웃어야 할 때 웃지 못하고 울어야 할 때 웃어버린다. 이런 아서의 기이한 행동은 오히려 언짢거나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만든다.

아서는 아서였을 때는 지긋지긋한 계단을 오르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지만, 조커 분장을 마치고 머레이 쇼에 출연하기 위해 나설 때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간다. 마침내 춤까지 추며 흥에 취한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이 스스로 사회의 악당으로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는 의미심장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이 날 버렸다는 열등감에서 빠져나와 모두가 가면 뒤의 자신을 원한다고 착각하기 시작한다.

조커, 규정할 수 없는 복합적인 캐릭터
 
 영화 <조커> 스틸컷

영화 <조커>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조커>는 다양한 영화에서 영향을 받았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이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 말했다. 극중 아서가 "내 인생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코미디였어"라고 말하는 대목은 채플린을 떠올리게 만든다. 또한 진한 분장 속에 진짜 얼굴을 감추고 살아가는 점은 현대인의 초상이다. 아서의 광대 복장은 찰리 채플린의 캐릭터 '리틀 트램프'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극중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보는 장면으로 차용하기도 했다.

약골에 무시당하기 일쑤인 아서가 첫 살인을 저지르고 각성하는 모습은 쓰레기 가득한 도시에 자신은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부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이는 베트남 전쟁 참전 후 자신이 영웅이라고 생각하는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와 닮았다.

아서는 미쳐가고 있는 세상, 웃을 일 없는 세상에 코미디언이 되고 싶어 한다. 비루한 아서의 삶 속 유일한 낙은 매일 밤 동경하는 머레이 쇼를 보며 출연할 날을 고대하는 것이다. 머레이 (로버트 드 니로)쇼에 나와 멋진 조크를 세상에 선보이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도 생각해 놨다. 문제는 전혀 웃기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웃음거리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코미디의 왕>에서 거물 코미디언 '제리 랭포드'에게 접근해 스스로 코미디의 왕이 되는 '루퍼트 펍킨'이 떠오른다.

조커는 어두우면서도 복잡한 존재다. 정신질환과 사회에 대한 불신이 낳은 현대적인 악인이다.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측은해질 수밖에 없다. 흔히 코믹스의 조커는 트럼프의 카드와 연결하지만 <조커> 속 아서는 스스로 '조커'로 불러 달라 말한다. 코미디언을 꿈꾸던 아서가 조크 하는 사람으로 불리고 싶은 욕망을 반영했다 할 수 있다. 첫 장면에서 광대로 분장하며 손가락으로 입을 움직여 웃어 보이는 대목은 '파울 레니'의 <웃는 남자>를 연상시킨다.

스스로 조커의 삶을 선택하다
 
 영화 <조커> 스틸컷

영화 <조커>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고담 시는 시장을 꿈꾸는 '토마스 웨인(브래트 컬렌)'의 출마로 뜨겁다. 승냥이가 들끓는 무법천지 도시를 안정화시키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민들은 관심 없어 보인다. 기득권은 늘 자신들의 배를 불리려 하지 자신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 때문에 고담 시는 어느 때보다 지친 그들을 위로해줄 지도자가 필요하다.

부름에 화답하듯 아서는 웅크리고 있던 등을 펴고 거리로 나선다. 조커의 등장에 '로이 릭텐스타인'의 팝아트 <행복한 눈물>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1960년대 미국 팝아트는 폭발적으로 떠오른 대중문화의 관심과 대량생산으로 커진 물질만능주의와 자본주의의 폐해를 차용한 미술 사조다.

코믹스 역사상 최초로 '2019 베니스 국제 영화제'의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토드 필립스의 <조커>는 사회의 루저로 대표되던 한 남자가 사회의 무대로 데뷔하는 이야기다. '로이 릭텐스타인'이 고급 미술 사조에 대중문화로 위계질서를 엎은 것처럼 조커의 등장은 어쩌면 예견된 수순이라 봐도 무방하다. 특권층에 분노하는 고담 시민이 조커에 환호하듯 지금 대한민국의 성난 민심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말해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장혜령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조커 토드 필립스 호아킨 피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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