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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북한으로 탈출하려 했다는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군인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박상은. 20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출소한 박씨는 아직도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3월에 내보낸 기사 4편은 재심을 신청하기까지의 영화 같은 극적인 과정을 담았습니다. 2019년 3월 22일 재심 신청이 1심에서 기각된 이후부터의 이야기를 이어서 싣습니다.[편집자말]
최정규 변호사를 만났는데 박상은씨에게 전화가 왔다.
 최정규 변호사를 만났는데 박상은씨에게 전화가 왔다.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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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안산에서 최정규 변호사와 점심을 먹었다. 이미 진행되거나 앞으로 진행되어야 할 억울한 사건들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하는 자리였다. 원곡동의 다문화 거리에 있는 한 음식점에 들어가 약간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식사하던 중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박상은씨였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요?"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고 계시죠?"

"변호사한테 연락받았어요? 나 결정되었다는데?
"어, 지금 최 변호사하고 같이 있어요."

"아, 그래요? 그럼 이야기 잘하고, 정리되면 다음 주에 한번 봐요."
"네, 선생님."

 
그렇게 전화가 끊겼다. 법원에서 박상은씨의 항고심이 결정된 모양이다. 난 밥을 먹다 말고 법원 사이트로 들어갔다. 박상은씨 사건번호를 검색하니 "2019년 5월 26일 인용 결정"이라고 뜬다.

박상은씨의 재심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1심에서 기각되어 실낱같은 희망으로 항고해 증인을 불러냈던 극적인 순간이 한두 번 아니었다. 지난 9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재심을 준비했던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지나갔다. 우리는 곧바로 재판부의 결정이 어떤 내용인지 확인하고 재판에 대비한 이야기를 나눴다.
 
며칠 뒤 은평에 있는 박상은씨 한의원에 방문했다. 인용 결정이 내려지고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재심이 열릴 것에 대한 기대가 그의 얼굴에 가득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재판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불안감도 가지고 있었다.
 
"재심이 열리게 돼서 좋기는 한데 기록이 없어서 어떻게 하죠?"
"기록이 없는 것이야 파기한 기관의 책임이니 저희가 그것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어요. 기소를 유지하려는 검찰에서 이제 선생님의 범죄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그건 저희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에요."

"또 증인을 불러야 하나?"
"지난번에 이미 불러 낼 수 있는 증인들은 다 불러냈으니 증인 심문을 더 할 필요는 없어요."

"아, 진짜 재심이 열리긴 열리나 보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그동안 고생 많으셨잖아요. 억울한 시간이 다시 제자리로 잡히는 것인데 당연히 진실이 밝혀져야죠."

"그나저나 난 재판이 열려서 좋은데 아직도 이헌우 같은 억울한 사람들은 재판도 해보지도 못해서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하네."

 
사법부에 의해 불법 확인된 경우 무리한 항소 남발하지 않아야
 
국가의 진정한 사과는 억울한 시민의 진실을 밝히는 데 대한 공정한 역할, 공평한 기회, 정의로운 재심과정에 적극 협조할 때만이 신뢰받을 수 있을 것이다.
 국가의 진정한 사과는 억울한 시민의 진실을 밝히는 데 대한 공정한 역할, 공평한 기회, 정의로운 재심과정에 적극 협조할 때만이 신뢰받을 수 있을 것이다.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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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재심이 열리는 순간에도 크게 기뻐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과 같은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동료의 일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헌우씨는 박상은씨와 함께 옥살이한 무기수다. 1968년 군 복무시 소대원들을 데리고 월북하려던 소대장을 저지하다 복부에 총상을 맞고 쓰려져 대수술 끝에 15일 만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자신이 소대원들을 데리고 월북하려 했다는 누명이었다.
 
"이헌우 같은 사람도 너무 억울해. 그런 사람들도 '지금 여기에' 같은 단체에서 꼭 도와줘요. 그 사람 죽기 전에 억울한 것이라도 죽어야지. 한평생 결혼도 못 하고 그렇게 죄인으로 살았는데."

"예, 선생님 진실이 밝혀지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제가 이헌우 선생님 살고 계신 김해에 한 번 내려가서 찾아뵐게요.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세상이 미쳐 날뛰던 시대에 여기저기서 미친 칼날에 다치고 죽었던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그 광란의 시대에 겨우 목숨부지하고 살았던 사람들은 그저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그 광란의 칼끝이 나를 향했다면... 어쩌면 나에게 올 수도 있었던 광란의 칼이 나를 대신한 다른 사람에게 향했다면 나는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나는 그런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희생을 딛고 서 있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 여기서 과거 사건을 들춰내는 나의 일이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이자 그들에게 진 빚의 청산 절차인지 모른다.
 
이제 검찰의 항고가 없다면 이른 시간 내에 재심을 위한 재판이 열릴 것이다. 그리고 공소 유지를 위한 증거 역시 검찰에서 제시해야 한다. 개인, 민간인, 시민이 국가를 상대로 한 싸움은 늘 지형적으로 불리한 싸움이다. 핵심적 증거인 기록은 소위 고문, 가혹행위 등의 범죄를 저지른 국가에 있고, 개인은 그 기록을 공개하라는 청구를 해야만 볼 수 있다. 그나마 모든 기록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일부의 기록이다. 대부분의 기록은 국가안보, 국가기밀이라는 이유로 비공개 처리해 개인이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을 범죄자로 만들 때는 온 세상이 떠들썩하도록 언론 등을 동원하던 자들이 이제는 과거 사건이 국가기밀이나 안보에 해당한다며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이런 모순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국가의 진정한 사과는 억울한 시민의 진실을 밝히는 데 대한 공정한 역할, 공평한 기회, 정의로운 재심 과정에 적극 협조할 때만이 신뢰받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검찰개혁의 핵심은 과거사 재심 사건을 올바른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다루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처럼 재심에서 무죄 등의 선고가 난 사건에 대해서 별다른 항소 이유 없이 '불복'이라는 이유로 무리하게 항소했던 사례들이 부지기수이다. 무리한 기소와 항소 남발이 검찰의 전횡처럼 이뤄지고 있었다.

이제 검찰은 합리적 판단과 이성적 법리로 적어도 과거사 사건의 재심에서 명백한 재심 결정 사유가 밝혀진 경우, 그리고 그것이 사법부에 의해 불법이 확인되었다고 결정된 경우 무리한 항소를 남발하지 않아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검찰은 국민의 눈높이와 일반 국민의 법 감정 내에서의 수사권, 기소권 행사이다. 부디 박상은씨 재심 과정에서 이성적으로 재판에 임하는 검찰의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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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재심, #간첩조작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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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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