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열두 번째 용의자> 포스터.

영화 <열두 번째 용의자> 포스터. ⓒ 인디스토리

 
극장에선 때아닌 색깔론이 나왔고, 감독과 배우는 의연했다. 26일 서울 용산 CGV에서 열린 <열두 번째 용의자> 언론 시사에 참석한 고명성 감독과 배우 김상경, 허성태, 김동영은 영화가 품은 사회적 의미를 설명했다. 

해당 작품은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 살인사건의 전말을 다루고 있다. 영화에는 '친일 청산'과 '빨갱이 척결'이라는 화두에서 고통받은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사요나라 안녕 짜이쩬>(2009)으로 재일 조선인과 일본 사회를 그린 고명성 감독은 "사회적 시선을 담고 싶었다"며 연출의 변을 전했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예술가들과 군인을 등장시킨 것에 대해 그는 "해방 후 일제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쟁이 터졌다"라며 "이 시대부터 역사적 단추가 잘못 끼워지지 않았나 생각했다. 그 소견이 있어서 배경을 이렇게 잡았다"라고 말했다.

감독의 말대로 영화엔 애국을 강조하며 빨갱이 척결을 주장하는 육군 특무부대 김기채 상사와 그의 수사에 맞서는 여러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김기채 상사 역의 김상경은 "<화양연화>를 좋아한다. 1940년에서 1960년대 감성과 시대상을 좋아한다"라며 "시나리오가 흥미로웠고 고명성 감독이 '올드한 게 새로운 것'이라 말했는데 거기에 공감했다"라고 출연이유를 밝혔다.

극 중 인민군에게 협조한 민간인을 빨갱이라 부르며 척결하려는 캐릭터에 대해 김상경은 "대본이 어떤 얘기를 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며 "우리는 인간이 선하거나 악하다는 이분법을 배우는데, 전 믿지 않는다. 배우라는 직업을 하면서 인간을 탐구하고 있다. 김기채가 악역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전 그저 당시에 그런 선택을 한 사람이라 생각한다"고 말을 이었다.

"요즘 사회가 양분화돼 있는 것 같고, 저마다 자기 생각이 맞다고 믿는 것 같다. 김기채 입장에선 정의로운 일이라 착각할 수 있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배우로서 화두 던질 수 있는 역할이라 재밌었다. (중략)

배우가 이름을 얻으면 정치적인 곳에서 연락이 많이 오는데 저는 한 번도 참석해본 적이 없다. 안성기 선배께 여쭤보니 '배우가 한쪽에 서게 되면 반을 잃게 된다'고 하셨다. 그 말에 공감한다. 전 스스로 정치성향이 뭔지 모른다. 다만 연기할 때 정치적 성향을 이유로 관객을 무시할 순 없다. 제가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화려한 휴가> 같은 작품에 출연했는데 특정 정치적 성향 때문은 아니고 인물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김상경)


이어 김상경은 영화 속 김기채 대사를 인용하며 "전 빨갱이가 아니다. <화려한 휴가>에 나왔다고 일베라는 사이트에서 (저를) 빨갱이라고 한다더라. 대단한 역사적 소명이 있는 사람이 아닌 가족을 열심히 부양하는 배우일 뿐"이라 재치 있게 덧붙였다.

현장에선 그의 출연작인 <살인의 추억> 관련 질문도 나왔다. 이 영화의 소재이자 3대 미제 사건 중 하나였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를 경찰이 최근 특정했기 때문. 

이에 김상경은 "영화가 나왔던 당시엔 혼란이 있었다. 우린 피해자분을 위해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여러 시사 프로에서 유가족분들이 너무 싫어하시는 모습을 봤다"며 "(범인을) 잡지도 못하는데 지나간 일을 들쑤신다고 여기시더라. 내가 열심히 연기한 게 안 좋은 건가 생각했다"고 운을 뗐다.

"용의자가 특정됐다는 뉴스가 나온 이후 봉준호 감독님께 카톡을 했다. 감독님이 '태윤아'라고 극 중 이름을 부르시더라. '이제 끝났다'고 하셨다. 처음 그 영화가 나왔을 때 비판적 반응도 있었다. 어떤 기자님은 이 영화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더라. 제가 '기억하는 것 자체가 응징의 시작'이라고 답했다. 순간적으로 나온 말이었다. (중략)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아서 다 잊히고, 공소시효도 끝난 사건들이 많다. 만약 <살인의 추억>이 없었으면 (사람들이) 정말 화성연쇄사건을 잊었을 거다. 그 영화가 있었던 이유가 (용의자 특정 후) 평행이론처럼 맞춰지는 것 같았다. 결국 영화가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했다."


한편 <열두 번째 용의자>는 오는 10월 11일 개봉한다. 올해 부천판타스틱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김상경 허성태 김동영 열두 번째 용의자 살인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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