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 캐슬'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상위 1%를 뜻하는 고유명사가 된 듯하다. 지난 2월 종영한 JTBC 드라마 < SKY 캐슬 >은 대한민국 상위 1%에 들기 위해, 혹은 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부모와 자식세대가 벌이는 풍자극이었다. 이 드라마는 TV 시청률이 저조한 시대에 23.8%(닐슨코리아 유료가구 플랫폼)를 기록하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는 '교육 드라마'가 보여준 우리 사회의 욕망에 그만큼 공감하고 호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의미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입시 관련 이슈를 쫓다보면, 드라마에서 아이들에게 공부를 닥달했던 차민혁 교수(김병철 분)는 사실 순진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비극적 죽음으로 시작했던 시작과 달리, 작품은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상황으로 마무리돼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사람들이 드라마에 기대했던 문제의식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했기 때문.
 
 OCN 드라마 <미스터 기간제> 스틸 컷

OCN 드라마 <미스터 기간제> 스틸 컷 ⓒ OCN


7월 중순 첫 방을 시작해 지난 5일 종영한, 상위 0.1% 명문고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 사건을 그린 OCN 드라마 <미스터 기간제>에 사람들이 기대를 걸었던 이유도 그래서다. 극사실주의 교육 드라마 <미스터 기간제>는 < SKY 캐슬 >이 남긴 아쉬움을 해소시켜 주었을까.

< SKY 캐슬 >은 '3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타이틀을 위해 아들 영재를 의대에 입학시키고도 결국 스스로 목숨을 거둔 이명주(김정난 분) 이야기로 시작된다. <미스터 기간제> 역시 한 사람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명문 사학' 천명고등학교 학생 정수아(정다은 분)가 칼에 찔려 사경을 헤매다 죽음에 이르고, 같은 학교 학생 김한수(김동주 분)는 가장 유력한 살인 용의자로 체포된다.

그리고 이 사건을 맡은 변호사는 대한민국 최고 로펌인 '송하'의 에이스 기무혁(윤균상 분)이다. 송하 로펌 대표 이도진(유성주 분)은 기무혁에게 검찰과 형량을 적당히 협의해, 빨리 마무리할 것을 종용한다. 하지만 법정에 선 기무혁은 대표의 지시와 달리 김한수의 무죄를 주장하며 사건의 승기를 잡으려고 한다. 그런 변호사의 '호의'에도 불구하고 정작 김한수는 자신의 변호사 기무혁을 공격하고, 자살 시도를 한다. 결국 이 사건으로 기무혁은 변호사 자격을 정지 당하게 된다.
 
 OCN 드라마 <미스터 기간제> 스틸 컷

OCN 드라마 <미스터 기간제> 스틸 컷 ⓒ OCN


기간제 선생님이 된 변호사

<미스터 기간제>의 설정은 독특하다. 이미 교육 문제를 다룬 드라마들이 적지 않게 나온 터라, 드라마와 교육의 만남은 익숙하기도 하고 뻔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미스터 기간제>는 기간제 선생님이 된 변호사라는 신선한 캐릭터를 통해 이를 돌파한다.

직접 명문 사학 천명고등학교로 향한 기무혁이 마주한 건 우리 사회 비열한 현실의 축소판이었다. 송하 로펌 변호사나 국회의원의 자제들이 학교를 장악하고 있고, 재단은 이 학생들의 스펙을 관리해 준다. 그 아래에는 신분제처럼 아이들의 층위가 촘촘하게 나뉘어 있다.

기무혁 변호사는 김한수와 정수아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천명 재단의 비리에 한 발씩 다가선다. 그 과정에서 '< SKY 캐슬 >은 차라리 아이들이 직접 노력이라도 했네' 싶을 만큼 황당한 교육문제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명문 사학에는 국회의원 유양기(김민상 분) 등 쟁쟁한 사회 지도층의 부모들이 모여 있었다. 재단은 이들에게 각종 명목으로 후원을 받았으며 그 실질적 관리자 이태석 행정실장(전석호 분)은 후원한 금액만큼 학생들의 스펙을 관리해준다. 여기서 '관리'는, 각종 경시 대회에서 상위 1% 학생들의 성적을 조작하고 스펙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후원을 하지 않은 대다수의 학생들은 이들의 들러리가 된다.

하지만 천명 재단의 만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법정에서 기무혁이 다가가려 했던 진실은 알고 보니 더욱 끔찍했다. 개인적으로 연예 매니지먼트를 운영했던 이태석 실장은 불우한 환경의 학생들을 고용해 국회의원, 검찰 등 각계 주요 인사에게 보냈다. 어린 학생에게 성접대를 비롯한 향응을 제공하도록 한 것이다. 정수아가 바로 그 이태석의 범죄에 동원된 학생이었다. 
 
 OCN 드라마 <미스터 기간제> 스틸 컷

OCN 드라마 <미스터 기간제> 스틸 컷 ⓒ OCN


괴물이 만든 괴물 

드라마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정말이지 상상을 초월한다. 문제아 손준재(신재휘 분)는 학생들에게 강제로 격투를 벌이게 만들고 이를 온라인으로 중계한다. 이는 모두 송하 로펌 이도진 대표의 아들 이지훈(최규진 분)의 허락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회배려자 전형으로 입학한 안병호는 그들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정수아의 살인 사건으로 시작된 드라마는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사건의 진실을 조금씩 드러낸다. 그러던 중 사건의 핵심 인물인 이태석이 살해 당하면서 다시 한 번 진실은 오리무중이 된다. 하지만 기무혁과 천명고 하소연 선생(금새록 분), 차현정 검사(최유화 분)가 힘을 합치고, 반면 천명고 4인방이 서로를 의심하면서 사건의 진짜 범인이 드러난다. 

정수아 사건의 진짜 범인은 국회의원 유양기의 아들 유범진이었다. 그러나 유범진은 법정에 서지 않는다. 천명고 옥상에서 만난 유범진은 자신을 법으로 옭아매지 못하는 기무혁 변호사를 조롱한다. 하지만 그런 유범진에게 기무혁은 말한다. "진짜 승리는 법정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고.

유범진은 지금까지 학교의 진정한 '실세'로 학교와 아이들을 조종해왔다. 하지만 아버지 유양기 의원이 정수아와 부적절한 관계였다는 사실이 폭로됐고, 그것으로 자신을 협박했던 이태석의 살인을 교사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 이제 더는 학교에서도 예전의 '권력'을 누릴 수 없게 된다. 그가 살인도 감수하며 설계했던 미래가 날아가 버린 것이다. 

특권 의식으로 누군가를 맘대로 조종하고, 심지어 아버지와 자신의 미래에 흠집이 될 누군가의 목숨마저도 거침 없이 거뒀던 유범진의 설계는 무의미해졌다. 기무혁의 복수는 오래도록 사람들이 유범진과 그의 아버지의 추악한 모습을 잊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정치인 아버지는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살인 교사도 서슴지 않았다. 또한 그 아버지는 법정에서조차 자신의 양심을 운운하며 아들을 핑계 삼았다. 그러면서 뒤에서는 이태석의 성접대에 응하는 부도덕한 행위를 저질렀다. 이렇게 한 손에 권력, 그리고 다른 한 손에 탐욕을 쥔 괴물 유양기의 아들로서 자란 유범진은 아버지 못지않은 괴물이 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이보다 더 섬뜩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OCN 드라마 <미스터 기간제> 스틸 컷

OCN 드라마 <미스터 기간제> 스틸 컷 ⓒ OCN


<미스터 기간제> 속 유양기, 유범진 부자는 여느 '장르물'의 범죄자와 달리, 우리 사회 내 교육을 통해 재생산되고 이제는 신분제로 고착된 대한민국 권력과 탐욕의 현실이 만든 괴물이라는 점에서 극사실주의적인 인물들이다. <미스터 기간제>는 질문한다. 부도덕한 권력을 쥔 아버지 세대가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탐욕스럽게 키워낸 아이는 자라서 무엇이 될까? 바로 < SKY 캐슬>이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우리 교육'의 진짜 현실이다.

드라마에서 부도덕한 부자는 법적이든 사회적이든 통렬한 처벌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만난 현실 속 괴물들은 어떨까. 그런 점에서 <미스터 기간제>는 또 하나의 '판타지'일 지도 모르겠다. 그 어느때보다 뜨겁게 논쟁 중인 대한민국 교육 현실에 대한 답이 아득해 보이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미스터 기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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