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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돈문 전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2일 오후 서울 양천구 자택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조돈문 교수는?문재인 정부가 이명박-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는 보수 정권 10년보다는 좋아졌지만 아직도 노동 정책 면에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조돈문 전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2일 오후 서울 양천구 자택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조돈문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이명박-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는 보수 정권 10년보다는 좋아졌지만 아직도 노동 정책 면에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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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돈문(65). 그는 삼성 반올림 투쟁 현장에서 일명 '금요일의 남자'로 불렸다. 강남역 8번 출구 앞에서 1023일 동안 치러진 삼성 반올림 농성에 금요일이면 불현듯 나타나 밤을 지새우고 집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 농성장이 철거될지 몰라 두려워하는 활동가들에게도 든든한 존재였다. 반올림 투쟁의 당사자인 삼성LCD 뇌종양 피해자 한혜경씨는 그를 "아버지 같은 분"으로 호명했다.

조돈문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27년의 오랜 교수 생활을 마치고 지난 8월 30일 퇴임했다. 조 교수는 대학 차원에서 퇴임식을 열어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하고 영등포 하자센터에서 활동가들이 열어준 퇴임식에 참석했다. "퇴임식을 준비할 테니 시간만 비워 달라"는 단체들의 요청을 차마 거절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30일 조돈문 교수 퇴임식에는 비정규직 운동 단체 및 삼성운동 활동가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퇴임식 축하 영상 속에서 활동가들은 "퇴임을 축하드린다"면서도 "조금만 쉬고 다시 운동(투쟁)하자"고 말했다. 그는 애정 섞인 활동가들의 한 마디에 껄껄대면서 웃었다.

이날 퇴임식 자리에서 조돈문 교수는 김추자의 노래에 맞춰 '막춤'도 췄다. 나이로 보나 활동 경력으로 보나 그의 까마득한 후배인 활동가들은 퇴임식 자리에서도 그에게 '망가지기'를 요구했다. 얼마 전 만 65세 이상이 돼야 받을 수 있는 '경로우대 카드'를 발급받았다고 자랑하던 그다. 그는 "지금은 안 되는데"라며 난감해하면서도 활동가들의 요구를 계속 들어주었다. 그가 망가진 덕분에 퇴임식 자리는 경직되지 않고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실천하지 않는 연구자는 포주 같은 존재"
 
 27년의 오랜 교수 생활을 마치고 퇴임한 조돈문 전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조돈문 교수는 정년이 보장된 "정규직 교수"였지만 동시에 "비정규직 운동 활동가"로도 살았다. 노동계급을 연구하면서 노동계급을 위한 실천을 하지 않는다면 "포주"와 다를 바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고 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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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돈문 교수는 정년이 보장된 '정규직 교수'였지만 동시에 '비정규직 운동 활동가'로도 살았다. 노동계급을 연구하면서 노동계급을 위한 실천을 하지 않는다면 '포주'와 다를 바 없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노동자들 팔아서 먹고 사는 순수 연구자나 성매매 여성 팔아서 먹고 사는 포주나 다를 바 없다. 기본적으로는 포주와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살고자 했다."

그의 사회적 실천 방식이 궁금해 지난 2일 오후 서울 양천구에 있는 자택을 찾았다. 그는 퇴임식 때 입었던 셔츠를 입고 기자를 맞았다. 퇴임식 당일 활동가들이 '왜 그 옷만 입느냐'면서 면박을 주었던 그 셔츠다. 그날 공개된 옛날 사진 속 조돈문 교수 역시 그 옷을 입고 있었다.

베이지색 셔츠는 학자로서의 삶과 활동가로서의 삶 두 가지 모두를 포기할 수 없었던 그의 고집을 보여주는 듯했다. 퇴임 이후에도 조돈문 교수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 삼성노동인권지킴이 대표, 노회찬재단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정년퇴임을 하면 강의를 안 해도 되니 수입은 없어도 시간이 많이 남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앞으로도 바쁘겠더라."

그는 퇴임을 1년여 남겨둔 시점부터 그동안 바쁜 탓에 거절해온 원고들을 모두 받아들었다고 했다. 공식적인 정년 퇴임일인 8월 30일 전까지 그는 밤을 새면서 원고 작업을 했다. 원고 작업이 끝나면 취미인 사진을 찍으러 세계 각국을 돌아다닐 계획이다.

"어느 곳이든 여행의 적기가 있다. 그런데 수업에 매여 있으면 내가 원할 때 원하는 곳으로 여행을 가지 못한다.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은 3월 초가 최적이라 내년 비행기 표까지 끊어놓았다.(웃음) 케냐의 플라밍고는 6월, 스웨덴의 검은목두루미는 3월 말에 볼 수 있고, 네덜란드의 풍차는 9월 첫 주가 가장 아름답다."

그는 여행 이야기를 하면서 활짝 웃었다. 여행 계획을 듣다 보면 인터뷰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무슨 문제든 답변하겠다"
  
▲ 조돈문 교수 “문재인 정부에 실망했다” 27년의 오랜 교수 생활을 마치고 퇴임한 조돈문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2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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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그가 공저로 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의 길>을 바탕으로 현 정부의 노동 정책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에게 미리 전달한 질의서에는 다소 민감한 질문들도 포함돼 있었다. 질의서에 답변이 어려운 부분은 없느냐는 말에 조돈문 교수는 단호하게 "무슨 문제든 답변 드리겠다"고 말했다.

"운동 단체 활동을 하면서 나이를 먹다 보니 선배 격이 된다. 내가 애매모호한 입장을 가지면 운동에 혼선이 오고 불필요하게 활동가들이 내 눈치를 보는 일이 생긴다. 그래서 되도록 내 생각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이야기하려 한다. 물론 그 생각이 오류일 위험도 있지만 주어진 조건 하에서 최선의 대안을 늘 찾는 것이다."

조돈문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3년 전 취임한 뒤 가장 먼저 방문했던 인천공항 사례를 먼저 꺼냈다. 그날 문 대통령은 인천공항에 가서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비정규직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문재인 후보의 대선 공약은 파격적이었다. 특히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두 가지 핵심적인 원칙이 그랬다. 상시적 업무 및 생명안전 관련 업무의 직접 고용 정규직 채용 원칙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원칙만 관철되면 비정규직 문제는 대부분 해결된다. 대통령에 당선되고 '일자리위원회'를 만들고 이틀 뒤에 인천공항에 가서 비정규직 제로 선언을 했다. 내가 10년 이상 비정규직 운동을 해왔는데, 그 순간은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로부터 두 달 뒤에 나온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보고 나서 문 정부를 "수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가이드라인에서 자회사 방식을 정규직 전환을 정규직 전환의 한 유형으로 제시해놨더라. 이건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 인천공항도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한 건 30%에 불과하고 70%는 자회사 방식으로 전환됐다. 인천공항의 직무들은 상시적 업무이고 생명과 관련된 업무이기 때문에 200% 정규직 전환 조건을 만족시킨다."

최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반대 논리에는 '공정성'이 자리 잡고 있다. 비정규직은 정당하게 '시험'을 치러 경쟁을 하지 않았으니, 정규직이 될 수 없다는 논리다. 조돈문 교수는 이를 두고 '부분적 공정성'이라고 지적했다.

"시험이란 제도를 도입한 건 애초에 일을 하는데 적합한 사람이 누군지 찾기 위함이다. 뭘 아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그러나 시험은 실제로 그 사람이 그 일을 했을 때 잘 할 수 있을지를 증명해주지 못한다. 일을 시켜볼 수 없으니 시험을 보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간접고용 비정규직들은 '그 일'을 하고 있다. 서로 다른 테스트를 거쳤을 뿐이다. 물론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채용 과정에서 공정하게 그 기회를 얻었는지 문제제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면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한 번 정도 더 절차를 거치면 된다.

최근 젊은 친구들은 공정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강하다. 무슨 제도를 만들든 상위 10%가 자기들의 편익을 위해 악용하는 것을 많이 봐왔기에 제도 자체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다. 기성세대가 잘못해서 불신을 갖게 됐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들이 제기하는 공정성은 제한된, 부분적 공정성이다. 우리 사회는 10대 90의 사회이지 않나. 10%가 엄청나게 많은 걸 먹어서 90%가 먹을 것이 조금 밖에 남지 않는다. 90%가 서로 먹으려고 덤비니까 얼마나 박 터지겠나. 그 90%에 공정성 규칙을 요구하는 건데, 10대 90의 불공정성에 대한 문제의식도 가지면 좋겠다."


"문재인 정부에 실망했다"

조돈문 교수는 문재인 정부에도 쓴 소리를 내놨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는 보수 정권 10년보다는 좋아졌지만 아직도 노동 정책 면에서 부족하다는 게 조돈문 교수의 생각이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을 보면, 문재인 정부 들어서고 2년 동안 이명박-박근혜 정부 전체 임기 정도의 일을 한 셈이다. 그렇지만 문재인 정부는 취임 첫 해 '비정규직 제로 선언' 등으로 마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천국으로 보내줄 것 같은 기대감을 심어주었지 않나. 기대에 부풀었던 노동자들에게 지금은 지옥보다 조금 나은 상태로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대선 공약으로 약속했던 것과 비교하면 배신감을 느낄 수 있다. 만약 이런 현실에 대해서도 노동자들이 분노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에 민주노동운동이라는 게 있다고 이야기할 수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다른 대통령 후보가 했다면 정치적 꼼수가 숨어있다고 의심했을 거다. 하지만 '문재인'이지 않나. 누구도 '문재인'을 거짓말 할 정치인으로 보지 않았다. 우리(비정규직 활동가들)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비판했지만 실망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대를 걸었던) 문재인 정부에는 실망했다. 왜 파라다이스를 만들어줄 것처럼 약속했느냐는 것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의 길> 말미에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 모두를 한 번에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한 서울산업진흥원의 사례가 나온다. 조 교수는 서울시가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잘 인지했고 해법을 찾으려 노력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박원순 시장도 초기에는 간접고용 비정규직들을 자회사 방식으로 정규직 전환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노동자가 사망한 구의역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구의역 김군의 경우도 간접 고용된 비정규직이었다. 만일 그가 직접 고용된 정규직이었다면 죽지 않을 수 있었다.

작년에는 서울교통공사 노사가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일괄 전환했지 않나. 일부 정규직 노조원들이 '역차별'이라면서 텐트를 치고 농성했지만 서울지하철노조는 박원순 시장과 함께 그대로 밀고 나갔다. 지금은 노동자들도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성공 사례를 잘 알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같은 사례들이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초지일관의 삶
 
 27년의 오랜 교수 생활을 마치고 퇴임한 조돈문 전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27년의 오랜 교수 생활을 마치고 퇴임한 조돈문 전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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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들의 상황이 조금 더 나아지는 게 결국 사회의 진보다. 나는 사회의 진보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어떻게 비정규직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일까? 그 시작을 조돈문 교수는 어린 시절에서 찾는다. 

강릉에서 자란 그는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반 친구 3명의 예비고사 원서를 써주지 않은 학교측에 항의하면서 반 학생들을 조직해 집단 수업거부에 들어갔다. 그와 친구들은 수업거부를 하고도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뒷산으로 향했다. 결국 학교는 희망자 전원 예비고사 원서 접수를 해주겠다면서 손을 들었다. 하지만 그는 데모 주동자로 찍혀 무기정학을 당했다. 고등학생 조돈문은 재수를 해 서울대에 들어갔다.

판검사가 되는 게 목표였지만 재수를 하던 해 10월 유신이 터졌다. 유신헌법을 만든 헌법학자들에게 실망해 그는 법대를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청년 조돈문은 이후 중이 되려고 했지만 모친의 말기암 선고 소식에 출가 계획을 유보한다. 부친은 다시 한 번 데모하면 호적에서 파겠다면서 그에게 자중하기를 요구했지만 그는 중이 되면 자연스럽게 호적에서 파이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런 그를 매료시킨 건 바로 계급론과 변증법적 유물론이었다. 그는 그 이론들이 세상을 너무도 잘 설명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 길로 사회학과 대학원으로 직행한다.

그는 "늘 무서운 선생들과도 많이 싸웠다"고 했다.

"계란이 귀하던 시절에 계란프라이를 하나씩 넣은 도시락 2개를 들고 선생님과 맞상을 하고 밥을 먹는 친구를 보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꼭 권위주의적이고 무서운 선생들이 그렇게 학생들을 편애하더라. 그걸 못 견뎠다. 우등상도 꼭 선생님 도시락 싸오는 놈이나 장학사 아들이 탔다. 그때 편애를 받았던 놈들에게는 한 번도 내색한 적 없지만 그놈들을 마주칠 때마다 그걸 기억하려 한다." (웃음)

조돈문 교수는 교사로부터 편애를 받은 학생은 결국 인생 전체에서 혜택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나는 그놈들에게 격려를 해주느라 배제된 학생들이 결국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때 선생들로부터 관심을 못 받은 친구들을 보면 실제로 가진 능력이나 노력했던 것에 비해 결과가 더 좋지 않았다. 나는 여기에 초등학교 때 특정 애들을 편애했던 선생들의 책임도 있다고 본다."

가톨릭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부터 퇴임할 때까지 조돈문 교수는 학생들과 소통하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신입생들에게 사회학개론을 가르치면서 학생들로부터 자기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세상을 배웠다고도 했다. 그의 진심에 응답한 것일까. 졸업생들이 모여 그의 또 다른 퇴임식을 열기도 했단다. 27년 간의 수업이라는 대장정을 끝낸 지금, 그는 흐뭇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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