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지옥이다

타인은 지옥이다 ⓒ ocn

 
2018년 3월 연재를 시작한 웹툰 <타인은 지옥이다>는 누적 조회수 8억뷰를 기록할 정도로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타인은 지옥이다>(아래 '타인은 지옥')는 지방에서 서울로 와 이제 겨우 인턴을 시작한 젊은이 윤종우가 쪼들리는 형편으로 인해 허름하다 못해 음산한 고시원에 머물게 되면서 겪는 일들을 그린다.

웹툰은 고시원의 외형보다 더 음산한 고시원 사람들, 또 종우의 서울살이를 팍팍하게 만드는 직장 내 인간관계 이야기를 통해 단절된 관계 속에서 도시의 삶을 홀로 이어가는,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은 바 있다.

그렇게 화제를 모았던 웹툰이 'OCN 시네마틱' 10부작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지난해 개봉해 130만 관객을 모으며 김희애와 김상경, 김강우의 열연으로 주목을 받았던 <사라진 밤> 이창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드라마로 구현된 에덴고시원은 그 자체로 '스릴러'라고 해도 될 정도 폐소 공포증을 일으킬 만한 공간이었다. 주인공 윤종우(임시완 분)가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 다리조차 뻗지 못하는 자신의 방 303호로 들어갈 때나 오래된 더께가 덕지덕지 눌어붙은 화장실과 오래돼 피가 줄줄 흐르는 달걀이 구비된 부엌을 보고 있다면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또 종우에게 '네가 머무는 방이 싼 이유는 사실 그 방에서 한 사람이 자살을 해서'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주인아줌마와 그 아줌마가 '좋은 청년들'이라고 말하지만 도무지 좋은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불편하고 기괴한 동거인들의 모습까지... 음산한 공기 속에 둥둥 떠다니는 극대화된 불편함은 처음부터 시청자들로 하여금 드라마 완주를 고민하게 할 정도였다. 물론 장르물 마니아들의 열렬한 환호 또한 함께 터져 나왔지만.

변주로 타개하며 새로운 돌파구 모색
 
 타인은 지옥이다

타인은 지옥이다 ⓒ ocn


원작이 인기 있었던 만큼, 드라마 시작 전부터 '과연 웹툰 속 기괴했던 인물들이 얼마나 잘 구현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컸다.

너스레를 떠는 평소 말투와 달리 음산한 고시원을 방치하며 '좋은 청년들만 남았다' 이야기를 하는 이상한 고시원 주인 엄복순, 말을 더듬으며 기괴한 웃음소리의 306호, 일명 '키위'라 불리는 변득종, 열린 방 문 틈 사이로 늘 어딘가를 지켜보는, 안경 속 눈빛만으로 소름끼치게 만들던 313호 홍남복, 그리고 멀끔하게 생겼지만 한 손으로 조폭 아저씨를 제압하고 306호과 313호를 벌벌 떨게 만드는 유기혁 등 캐스팅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특히 원작을 충실히 고증해 만드는 게 오히려 작품의 발목을 잡을 때도 있다. 그럴 경우 원작 캐릭터와 싱크로율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는 이런 원작의 함정을 '변주'로 타개하며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했다.

우선 서울에 올라온 첫 날, 종우의 대학 선배이자 그에게 직장을 제공한 신재호는 술자리를 한다. 농담인지 조롱인지 모를 신재호의 말을 듣다가 지친 채로 술자리를 끝낸 종우가 술집 앞에 기대어 있을 때 그의 눈앞에서 취객 두 명의 싸움이 벌어진다. 격렬해지는 싸움에 종우가 끼어들려하자 신재호는 말리고, 원작에서는 신재호의 만류로 인해 그 중 한 명이 죽음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드라마 속 종우는 결국 그 싸움에 뛰어든다. 원작이 타인의 무관심과 방관에 대한 경고를 주제 의식으로 부각했다면, 드라마는 원작의 주제의식과 더불어 군대 시절 트라우마가 떠올라 부지불식간에 싸움에 뛰어드는 종우를 그리며 겉보기엔 조용해 보이는 주인공 캐릭터가 반전 요소를 가지고 있음을 알린다.

다른 궤도의 대미를 장식한 서문조
 
 타인은 지옥이다

타인은 지옥이다 ⓒ ocn


이제 막 시작한 서울 생활에서 가급적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고 평탄하게 보내고 싶은 종우를 직접적으로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은 이제 곧 고시원을 나갈 거라는 안희중(현봉식 분)이다. 사사건건 종우와 부딪치는 그는 고시원 내 '폭력'적 요소다. 그러나 안희중은 종우와 라면을 끓여 먹던 날, '가급적 이 고시원에서 빨리 벗어나라'라는 진심어린 충고를 한다. 이 모습은 그가 보기에만 폭력적인 인물인지도 모른다는 여지를 남긴다.

이후 안희중은 자신의 방에 남겨진 모조 총알을 본 뒤 흥분하고, 306호 변득종을 마구잡이로 다그친다. 하지만 맞은편에서 또 한 명의 306호가 등장하면서(원작에선 변득종이 한 명이다) 원작과는 다른 궤도에 진입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다른 궤도의 대미는 바로 치과 의사로 등장한 304호 서문조(이동욱 분)이다.

원작에는 없던 이 인물로 인해 이야기가 어떻게 바뀔지 궁금증이 커져가는 가운데, 고시원 306호, 그의 쌍둥이 형 307호, 그리고 313호가 무서워했던 인물이자 원작의 최종 보스로 예정된 유기혁을 2회 만에 죽이면서 원작 '스포일러'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2회 마지막 장면에서, 고시원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혹은 방해받지 않기 위해 건물 옥상에서 연인에게 전화를 걸던 종우에게 다가온 서문조는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가 불쾌했던 종우는 "왜 날 보며 웃느냐"고 묻고, 이에 서문조는 종우가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 반가워서 그랬다며 다시 미소를 보낸다. 드라마를 열었던 종우에 대한 린치, 과연 그 진실은 무엇일까? 그리고 서문조의 미소처럼 서문조와 같은 사람인, 가슴 안에 또 다른 불길을 잠재하고 있는 종우는 그냥 당하고만 있을까?

장 폴 샤르트르는 일찍이 자신의 저서 <닫힌 방>에서 자유로운 존재로 정의 내려진 인간, 그러나 끊임없이 그 실존은 '타인'과 관계되어져야 하고, 규정되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타인은 지옥이다'란 명제로 표현했다.

서로에게 '사형집행인'이 되어가는 사람들,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는 오늘날 이 명제에 가장 공감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정서 속 '지옥도'를 구현한다. 과연 웹툰과 다른 드라마 속 지옥도는 어떨지, 그 본격적인 이야기가 궁금하다.
타인은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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