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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좀 밝은 편이다. 끝자리에 앉아 있지만, 반대편 끝자리 이야기도 대충 들릴 때가 있다. 다른 일에 집중해서 못 듣는 경우를 빼고는 우연히 다른 사람의 대화를 듣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이날도 그랬다. 후배 에디터가 비채택한 시민기자 기사를 놓고, 선배(나에겐 후배지만) 에디터가 내용을 조금 보강하면 채택하지 못할 기사는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을 주고 있었다.

후배 : "이분 글의 구성이... 제 선에서 고칠 수 있는 기사는 아닌 것 같아요."
선배 : "구성은 이렇게 가도 크게 상관은 없을 것 같은데... 이런 이런 부분만 보강하면..." 
후배 : "그럼, 선배는 이 기사를 어느 정도까지 배치할 수 있다고 보는 거예요?"
선배 : "으뜸까지도 가능할 것 같아."
후배 : "......"


에디터들은 보통 메신저로 기사에 대해 이런저런 의견을 나눈다. 기사 가치 판단을 두고 육성으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오랜만이었다. 그런 두 후배의 모습이 반갑고 좋아보였다. '그래, 이래야 뉴스룸답지' 이러면서 혼자 속으로 웃었다.
 
기사로 채택할 만한 매력을 못 느낀 기사를 다시 수정하고 나면 채택하지 못할 기사가 아닌 게 됐다. 그렇게 만드는 게 바로 '에디터의 일'이었다. 손그림 금경희, 채색 이다은.
 기사로 채택할 만한 매력을 못 느낀 기사를 다시 수정하고 나면 채택하지 못할 기사가 아닌 게 됐다. 그렇게 만드는 게 바로 "에디터의 일"이었다. 손그림 금경희, 채색 이다은.
ⓒ 금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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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훈한 내 마음과 달리 둘의 대화는 냉랭하게 느껴졌다. 어떤 기분인지 말 안 해도 알 것 같았다. 이 일을 시작한 이후로 그 둘 모두의 입장을 나 역시도 무수히 많이 겪어 왔으니까. 그들처럼 나 역시 선배랑 의견이 달랐지만 수정/보강해서 채택한 기사도 있었고, 의견이 다른 후배에게 내 생각을 어필한 적도 있었다.

선배의 말을 듣고 기사로 채택할 만한 매력을 못 느낀 기사를 다시 수정하고 나면 채택하지 못할 기사가 아닌 게 됐다. 그렇게 만드는 게 바로 '에디터의 일'이었다(물론 에디터 선에서 수정이 불가능한 기사들도 있다). 괜히 선배가 고치라고 한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는 말이다(100%는 아니다, 고백하건대 기계적으로 고친 때도 있었으니까).

기사에 대한 판단이 다를 때는 이렇게 에디터 둘 혹은 셋의 의견을 구한 뒤 처리한다. 이 과정을 통해 서로 의견이 다를 때 '내 생각만을 고집할 일이 아니구나'라는 걸 배웠다. 내가 후배이든 선배이든 위치에 상관없이 그랬다. 내 생각이 100%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견지하려 노력했다(그건 시민기자와 소통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선배든 후배든 기사를 '채택하지 않으려고' 일하는 사람들은 아니니까. 시민기자 기사를 검토하는 에디터들은 어떻게든 기사를 하나라도 살리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다. 하나의 기사를 채택하기 위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만큼의 눈물 겨운 노력을 기울이는 경우도 지난 16년간 숱하게 지켜봐 왔다.

한두 시간쯤 지났을까? 두 후배들이 이번에는 웃으면서 그 기사의 제목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의견을 나누는 게 아닌가.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절로 눈길이 갔다.

후배 : "이 기사... 으썸 정도 걸 수 있지 않을까요?"
선배 : "(의외였다는 듯) 응?"
후배 : "처음 봤을 때는 이런이런 문장이 좀 걸려서 어려울 것 같았는데... 고치면서 읽어보니 괜찮은 것 같아요."


'그렇지... 내가 배운 걸 너희들도 이렇게 배워가는구나' 싶어서 또 한번 웃음이 났다. 그 둘이 내 눈엔 귀엽게 보였다. 어렵게 말을 꺼내준 선배도, 그 말을 마음 언짢게 듣지 않고 다시 한번 꼼꼼하게 편집한 후배의 마음은 하나였을 거다. 좋은 기사를 만들고 싶은 마음. 하나의 시민기자 기사라도 채택하고자 하는 마음. 그게 다른 언론사에는 없는 '오마이뉴스 에디터'의 일이니까.

편집기자 의견이 다를 때, 그 논의가 이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을 때도 있다. 서로 마음이 상한 채, 의견 일치는커녕 생각이 다르다는 걸 다시 확인한 채 대화를 끝내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그래도 당장은 몰라도 나중에는 알게 되더라. 그때의 내가 왜 그랬는지, 혹은 그때의 선배가 왜 그랬는지, 혹은 그때의 후배가 왜 그랬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고 하고, 이해할 것 같기도 한 그런 때가 오긴 오더라. 오래 일하면서 알게 된 것들, 내일은 또 어떤 걸 깨치면서 일하게 되려나. 

태그:#편집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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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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