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미 준의 건축은 한 사람의 일생을 닮았다. 그의 건축은 사람처럼 태어나서 자라고 늙으면서 소멸한다. 인위적이거나 인공적인 재료로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려 하지 않는다. 건축의 모든 재료는 유한한 시간 앞에 겸손히 고개를 숙인다. 나무, 돌, 흙과 같은 자연의 재료가 생명의 기한이 정해져 있음을, 그는 아쉬워하거나 부정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의 건축은 소멸을 도리어 긍정한다. 그는 그것을 '시간의 맛'이라고 표현한다. 태어나서 사람을 품고, 품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시간을 견디며 함께 늙어가는 건축. 그러니 그에게 건축이란 사람이 만들어낸 무언가가 아니라, 시간이 만들어낸 무언가와 같다.

그렇다. 이타미 준에게 '시간'은 건축의 한 재료인 것 같다. 목재, 돌, 콘크리트를 이용해서 하는 것처럼 그는 시간을 건축의 재료로 사용한다. 이 점은, 동시대 일본에서 활동했던 또 다른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와 구별되는 지점이기도하다. 안도 타다오는 '공간감(공간 체험)'을 중요시했다. 재료의 실체보다, 무언가의 '공간'이 내부를 감싸는 듯한 감각을 건축에 담고자 했다. 그래서 서로 다른 재료를 사용하면 발생되는 '시선 분산'이나, 혹은 특정 재료의 '부분적 표현'을 막기 위해서 노출 콘크리트를 주재료로 사용했다. 노출 콘크리트는 내부와 외부가 하나의 일체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노출 콘크리트의 실체는 추상화되면서 옅어지지만, 형태는 도리어 명료하게 드러남으로써 건물 내부의 공간감이 극대화된다.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 스틸컷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이타미 준은 그런 공간감을 '시간감(시간체험)'으로 바꾼다. 이타미 준이 건축한 건물 안에서 우리는 시간의 결을 감각할 수 있다. 안도 타다오가 공간감을 극대화하려고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했다면, 이타미 준은 시간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는 자연 재료를 주로 사용했다. 그의 재료는 '실체적'이고, 군데군데 '부분적 표현'이 두드러지지만, 시간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모든 재료는 공평하게 부유하면서 실존한다. 도쿄의 <먹의 공간>(1998)의 외벽엔 대나무 띠가 길게 이어져 있는데, 처음 초록이었던 색이 시간이 흐르며 갈색으로 변한다. 그 변색이 흉하지 않고, 건물과 기묘하게 어우러져 기품 있어 보인다. 그의 딸인 유이화 소장(ITM 건축사무소)은 아버지가 생전에 이것이 시간의 힘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회고한다. 제주의 <석 박물관>의 외벽은 철판으로 되어있는데, 처음 이 색은 황색이었다가 시간이 흘러가며 부식되고 점점 붉은색이 되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시간의 흐름 역시 건축의 중요한 재료임을 굳게 믿었다.

이타미 준은 건축의 지역성을 안도 타다오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말했다. "주위의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을 만들고 싶습니다. 건축물이 들어설 장소와 공간에 대해 깊고 냉철하게 생각했으면 합니다. 또 자연의 힘을 거스르지 않으며 건축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형태를 찾아야 합니다. 특히 조형은 바람을 절대로 거스르지 않아야 하며, 자연의 힘인 바람에 관한 것은 바람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건축은 결코 혼자 우뚝 올라서려고 하지 않는다. 먼저 자신의 건축물이 들어설 지역의 역사, 지형, 풍토가 무엇인지 공부한 다음, 그 지역에 '있을 만한' 건축물을 지어 올렸다. 충남 아산의 온양 미술관 벽돌은 그 지역의 향토 흙으로 빚었고, 제주의 포도 호텔 지붕은 제주 지역 전통 민가의 오랜 풍습인 '오름' 형태를 빗대어 표현했다. 물과 바람과 돌이 유명하다는 제주도에 건물 한가운데 물을 받아놓은 수 박물관, 목재 사이의 틈으로 바람이 들어오도록 여백을 내준 풍 박물관, 돌의 은은하고도 항구적인 물성을 담아놓은 석 박물관까지. 그의 건축은 하나같이 그 지역과 불화하지 않는다. 갈등하거나 긴장하지 않고, 어울리면서 화목하다. 건축은 지역에 기대고, 지역은 건축에게 마음을 열어준다.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 스틸컷. <포토 호텔>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 스틸컷. <포토 호텔> ⓒ 영화사 진진

 

이처럼 이타미 준의 건축이란 자신이 기꺼이 그 지역의 일부가 되려는 겸허한 삶의 태도와 맞닿아있다. 그래서 그는 건축에 있어서 중요한 점을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온기, 생명을 작품 밑바탕에 두는 일. 그 지역의 전통과 문맥, 에센스를 어떻게 감지하고 (...)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땅의 지형과 '바람의 노래'가 들려주는 언어를 듣는 것이다."

그 땅의 지형과 '바람의 노래'가 들려주는 언어를 듣는 일. 자연의 소리를 먼저 경청하는 것이 올바른 건축의 출발이라고 건축의 거장은 겸손히 말한다. 자신의 건축은 모두 자연의 언어를 번역하거나 대필했을 뿐이라는 듯이.

어쩌면 그는 자연과 가장 친밀한 건축을 만들고 싶었는지 모른다. 거대한 자연의 순리의 흐름을 거스르거나 막으려 하지 않고, 기꺼이 자연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겸손함. 건물을 짓겠다고 자연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훼손하려들지 않고, 그 지역의 고유한 자연을 존중하는 공손함. 그런 태도로 자연의 언어, 바람의 소리를 잘 들어야 우리는 겨우 건축할 수 있다고 이타미 준은 말한다. 어른의 깊은 말씀이다.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 스틸컷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자연의 언어가 문득 따뜻한 목소리로 들리는 것 같다.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은, 언젠가 우리가 사라진다는 것은 슬퍼할 것이 아니라고. 그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그럴 거 없다고. 깜깜한 어둠 속에 들어앉아 있어도(<먹의 집>, <먹의 공간>) 그곳에서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빛을 바라볼 수 있지 않냐고(<풍 박물관>). 그렇게 나직이 말하는 것 같다. 그저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그렇게.

* 부기.  문득 영화 <안도 타다오>와 <이타미 준의 바다>의 또 다른 차이점이 떠올랐다. 극에서 안도 타다오는 노령이지만 여전히 건강한 모습으로 살고 있다. 반면 이타미 준은 지난 2011년 타계했으므로 극 중에서 관객은 사라진 그의 흔적만을 목격할 뿐이다. 한 사람은 시간이 지나도 매끈한 노출 콘크리트를, 다른 사람은 시간이 지나며 늙어가는 자연 재료를 즐겨 사용했던, 둘의 건축만큼이나 상징적인 차이처럼 느껴졌다. 둘 모두에게 깊은 평화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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