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유나이티드FC(이하 인천)은 K리그 내에서 '잔류왕', '생존왕'으로 통한다. 매 시즌 중반까지 강등권에서 허덕이다 막바지 극적인 반등으로 1부 리그에 잔류하기 때문이다.

물론 인천 입장에서도 '잔류왕'이란 별명이 달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시즌 초반만 해도 인천은 '잔류, 그 이상'을 바라볼 각오로 똘똘 뭉쳤다. 하지만 그 각오는 일찌감치 무너졌다. 올해는 이런 결과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예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엄습해오는 강등의 그림자

매년 그랬듯 인천의 올 시즌 시작도 좋지 못했다. 겨울 이적 시장부터 불안감은 점점 커져갔다. 작년 인천 공격의 한 축을 담당했던 문선민과 아길라르가 각각 전북과 제주로 이적하며 공격력 약화가 불가피했다. 여기에 한석종과 김대중이 군 입대를 위해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고슬기와 김용환, 최종환 등 준척급 선수들의 공백도 눈에 띄었다.

특히 수비형 미드필더의 보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이 컸다. 작년 인천은 총 69실점으로 2부 리그로 강등된 전남과 더불어 가장 많은 팀 실점을 기록했던 팀이다. 앞선 공격수들이 아무리 발군의 공격력을 보여줘도 수비가 흔들리니 팀이 흔들렸다. 수비 라인 자체의 문제도 있었지만 3선에서의 1차 저지가 원활하지 못했다. 동계 훈련 기간 동안 임은수, 양준아 등 여러 선수들을 연습 경기에 기용했으나 수비수들을 보호하고 2선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하기엔 무게감이 다소 떨어졌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인천은 7라운드 만에 4득점, 15실점을 기록하며 리그 최저 득점 공동 1위, 최다 실점 1위 팀이라는 불명예를 남겼다. 시즌 시작 전부터 문제점을 노출했던 수비 라인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앞서 말한 미드필더 라인의 허술한 보강은 치명타로 다가왔다. 임은수, 박세직, 양준아 등 많은 선수들을 기용해보며 허리 라인의 중심을 잡으려 노력했지만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가 전무했다.

인천 공격의 첨병인 무고사가 5라운드에 부상을 당해 약 한 달간 결장한 점도 뼈아팠다. 공·수 가릴 것 없이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니 순위 하락은 당연한 결과였다. 인천은 6라운드부터 리그 최하위 자리를 지키기 시작했다. 간혹 순위 상승이 있었으나 경쟁 팀들의 경기 결과에 따른 짧은 반등에 불과했다.

인천의 부진은 깊어져갔다. 아무리 찾아도 반등의 계기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인천은 4월 15일 안데르센 감독의 경질을 발표했다. 앞서 5연패를 당하는 동안 발전의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안데르센 감독도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감독 교체라는 강수로 분위기 반전을 노린 인천은 임중용 감독 대행을 거친 후, 유상철 감독을 선임했다. 하지만 유상철 감독은 이전 전남에서의 중도 경질과 이후 전남 강등으로 여러 팬들 사이에서도 부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인 감독이었다. 예상대로 출발 역시 좋지 못했다. 대구와의 경기에서 1대2 패배로 쓰라린 데뷔전을 치른 유상철 호는 14라운드 제주전 승리 이후로 21라운드까지 또 다시 7경기 무승이라는 긴 부진에 빠지게 됐다. 

이와 같은 흐름이 이어진다면 2부 리그로 강등은 당연지사였다. 21라운드를 치르는 동안 인천의 성적은 2승 5무 14패. 매년 익숙한 강등권 싸움을 펼쳤음에도 올해만큼 좋지 않은 시즌이 없었다. 결과는 차치하더라도 경기력과 발전 방향 면에 있어서 답보상태가 길어졌다. 감독과 선수, 팬들 모두 속만 타들어갈 뿐이었다. 

파격적인 여름 이적 시장 행보, 잔류를 향한 신호탄
 
 인천 유나이티드 김호남

인천 유나이티드 김호남 ⓒ 한국프로축구연맹/연합뉴스

 
하지만 인천이 어떤 팀인가. 바로 '잔류 DNA'가 내재되어 있는 '잔류왕'이다. 그들은 여름철로 접어들면서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작년 이맘때와 비슷한 시기였다. 인천은 지난 시즌 22라운드까지 3승 7무 12패로 전남과 치열한 강등 싸움을 펼쳤지만 이후 11경기에서 3승 5무 3패라는 준수한 승점 확보로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그리고 스플릿 라운드에서 4승 1패라는 기적적인 성적을 일궈내며 9위로 잔류를 확정 지었다.  

인천은 작년과 같은 반전을 위해 여름 이적 시장에서 대대적인 선수 보강에 나섰다. 시작은 남준재와 제주 김호남의 맞트레이드였다. 시즌 도중 주장을 타 팀으로 이적 시켰다는 비난이 거셌으나 공격 지역에서 파괴력을 낼 수 있는 김호남을 품었다는 사실은 분명 좋은 소득이었다. 이후 전북에서 출전 시간을 보장받지 못한 명준재와 장윤호를 임대 영입해 양질의 스쿼드를 구축했고, 울산과 경남에서 각각 이지훈과 여성해를 데려오며 수비 전력도 강화했다. 여기에 외국인 선수 교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시즌 중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한 콩푸엉과 하마드를 보내고 마하지와 케힌데를 영입해 방점을 찍었다. 

영입 선수들이 빠르게 주축 선수로 자리매김하며 인천은 상승궤도를 타기 시작했다. 김호남과 케힌데 등이 전방에서 분전해주니 스트라이커 무고사도 숨통이 트였다. 장윤호와 명준재는 이전 인천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번뜩이는 플레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여성해가 가담한 수비진은 '짠물 수비'의 위용을 되찾는 중이다. 22라운드 포항전 승리로 부활의 신호탄을 쏜 그들은 거칠 것이 없었다. 25라운드 수원 원정 경기 승리로 10년 만에 빅버드 무승 징크스까지 깼다.

인천의 시즌은 지금부터다

안정적인 승점 확보가 이어지니 순위 상승은 부차적으로 따라왔다. 인천은 지난 수원전 승리로 제주를 밀어내고 11위로 순위를 한 계단 상승시켰다. 17라운드 이후 8경기 만의 탈꼴찌였다. 

선수들의 위닝 멘탈리티가 올라온 점도 반갑다. 시즌 초반 인천 선수들은 쉽게 패배 의식에 젖어들면서 경기력 악화라는 악순환은 만들어냈다. 그러나 최근 승수를 쌓으면서 선수들의 자신감이 올라왔고, 이는 팀 성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기에 지언학과 정훈성 등 예상외의 선수들이 터져주기 시작했고, 김도혁이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중원에 힘을 싣는다. 이들이 기존 선수들과 시너지를 만들어낸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싸움이다.

물론 미래가 마냥 장밋빛인 건 아니다. 인천은 당장 18일 홈에서 제주와 '단두대 매치'를 벌여야 한다. 특히 이번 제주전은 스플릿 라운드 돌입 전 마지막 맞대결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경기다. 리그 상위권인 울산과 서울을 연달아 만나는 28·29라운드도 버거운 일정이다. 게다가 하위권 간의 승점 차가 촘촘해 언제든지 다시 꼴찌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크다. 하지만 거꾸로 말하면 팀들 간의 격차가 크지 않아 얼마든지 치고 올라갈 가능성도 높다. 시즌 말미 연승 분위기를 가장 잘 타는 인천이기에 그 가능성은 충분하다.  

인천을 보고 매년 위기라고 했다. 그리고 올 시즌은 실제로 강등이 목전에 있을 만큼 위태로웠다. 그러나 인천은 이제 암울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달린다. 아직 많은 경기가 남았으나 탄력을 받은 인천의 상승세로 미뤄보아 이번에도 '잔류왕' 타이틀을 거머쥘 것으로 보인다. 유상철 감독도 21라운드 경인 더비 이후 "절대 강등당할 일은 없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몇 년 간의 위기 속에서 그들은 분명 살아남는 법을 터득했다. 인천의 시즌은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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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1 인천유나이티드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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