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벌새> 관련 사진.

영화 <벌새> 포스터 ⓒ 콘텐츠판다

 
중학교 2학년이 바라본 성수대교 붕괴는 곧 우리 사회의 단면을 잘라낸 상징으로 가득했다. 

영화 <벌새>의 언론 시사가 열린 14일 서울 용산 CGV에서 첫 장편으로 관객과 만나는 김보라 감독과 출연 배우인 박지후, 김새벽이 참석해 그 상징에 대해 설명했다. 영화는 큰 사회적 비극을 겪기 직전과 직후, 14세 은희의 일상을 밀도 높게 담아내며 질문을 품게하는 작품. 

시작은 감독의 개인 경험이었다. 김보라 감독은 "처음엔 유학생 시절 꿨던 꿈에서부터였고, 당시 제 기억과 트라우마, 그리고 병원에서의 기억의 조각이었다"며 "2013년 시나리오 형태로 탄생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건으로 우리가 뭘 간과했고, 뭘 향해 가고 있었는지 은희라는 아이와 함께 얘기하고 싶었다"고 운을 뗐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우리나라는 선진국을 열망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끝나고 서구에 인정받고자 하는 공기 속에서 다리가 무너졌고, 그 물리적 붕괴가 은희의 관계 붕괴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이야기를 쓰게 됐다." (김보라 감독)

영화는 직접적으로 해당 사건을 소환해 해석하진 않는다. 감독의 말처럼 은희라는 아이가 겪는 친구 관계, 가족 관계의 상처와 작은 기쁨이 동력이 된다. 은희 역의 박지후는 "삐삐를 사용하는 것 빼고는 은희는 제 또래 학생과 똑같다고 생각했다"며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고, 또 쓸쓸한 마음 또한 있다고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몇 번이나 읽은 뒤 오디션을 봤다"고 전했다.
 
 영화 <벌새> 관련 사진.

영화 <벌새> 스틸 컷 ⓒ 콘텐츠판다

 
14세 소녀의 해석

은희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사건을 전개시키기에 그만큼 이 작품에서는 박지후의 해석이 중요했다. 김보라 감독은 "오디션을 보고 나갈 때 지후 배우가 갑자기 뒤돌아서며 '전 볼매(볼수록 매력 있다는 의미)예요. 다음 오디션 때 꼭 뵀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며 "누구나 욕망이 있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그걸 맑게 드러내는 모습에 사랑에 빠졌다"고 캐스팅 당시 느낌을 언급했다. 이후 촬영은 감독의 연출과 함께 박지후 각 장면에 대한 본인의 솔직한 감정을 담는 식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혼자 거실에서 방방 뛰는 장면이 있었는데 지문엔 오징어 춤이라고 돼 있었다. 어떻게 추는 건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그간 은희가 겪은 일, 그리고 (믿고 따랐던) 영지(김새벽) 선생님이 사라진 상황에서 은희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생각하다가 이때까지 쌓은 감정을 표출했는데 그게 다행히 오케이가 됐다. 감독님이 디렉션 하시고 마지막 테이크는 항상 제 마음대로 해보라 기회를 주셨다. 제 경험치가 적어서 감이 안 잡힐 때가 있었는데 감독님께서 그때마다 기다려 주셨다." (박지후) 

박지후가 언급한 대로 영화 속 은희가 심리적으로 믿고 의지한 보습학원 한문 선생 역의 김새벽은 "영지 선생님 역시 사람에 대해 서툴고 상처도 있지만 그걸 연결해보려는 마음 놓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했다"며 "은희를 대할 때도 소녀가 아닌 한 사람으로 대하려 했다. 또 한문 선생님이라 한자를 잘 쓰고 싶어 칠판을 사서 연습하기도 했다"고 캐릭터에 대해 말했다.

1994년이 바라본 2019년의 공기
 
 영화 <벌새> 관련 사진.

영화 <벌새> 스틸 컷 ⓒ 콘텐츠판다


무거운 사건을 조명하고 있지만 영화 속 은희는 방황하는 듯 하면서도 무너지지 않는다. 제목의 이유기도 하다. 김보라 감독은 "제목 의미를 묻는 분이 정말 많은데 벌새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로 1초에 날개짓을 평균 80회 이상 한다"며 "동물 사전을 보니 희망, 생명력, 포기하지 않음 등 좋은 상징이 많더라. 은희 역시 포기하지 않고 제대로 사랑받고, 사랑하고자 하는 아이인데 그에 맞는 제목이었다"고 말했다.

국내 개봉에 앞서 <벌새>는 그간 25개 국내외 영화제에서 주요 부문에 후보로 오르거나 수상의 영광을 안기도 했다. 이어지는 호평에 김보라 감독은 "수상 땐 오히려 얼떨떨한 기분이었고, 수상의 기쁨보단 이 영화가 사람의 마음에 닿는 걸 느낄 때 기뻤다"며 "최근 벌새단이라고 94명의 서포터즈를 모시고 시사회를 했는데 손편지를 써주셨다. 정말 눈물이 나더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영화제에서 많은 환대를 받았는데 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되게 아프기도 했다. 투자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울기도 했다. 원래는 3시간 반짜리 분량인데 주변에선 너무 길다. 또 시대를 현재로 바꾸라는 조언도 했다. 하지만 1994년이어야 했다. 그걸 놓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라 생각한다. 제작 지원 사업에도 계속 떨어지면서도 이 영화를 사랑했기에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겐 이 이야기가 닿을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김보라 감독)

김보라 감독이 담고자 했더 1994년 한국 사회의 공기,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그 이후에도 사회적 참사는 계속 발생했다. 해당 질문에 김보라 감독은 "2012년 시놉시스를 썼을 때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 굉장한 기시감을 느꼈다"며 답을 이었다.

"우리가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지만 해결되지 않은, 곪은 게 드러나는 것 같다. 지금 하신 질문과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1994년을 다루고 있지만 2019년을 바라보는 느낌이라는 분도 계셨다. 큰 질문이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답은 더디게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고자 노력하지만 여전히 1994년 은희를 억압했던 여러 분위기, 사회적 억압이 있기에 관객분들이 공감해주시는 것 같다. 여전히 과거 자장 속에 머물러 있는 느낌도 있다. 나부터 일상에서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하며, 변화를 소망하며 살아가야겠다고 느낀다." (김보라 감독)

영화 <벌새>는 오는 29일 개봉한다.
벌새 박지후 성수대교 김새벽 세월호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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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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