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포스터.

영화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포스터. ⓒ (주)디스테이션

  
20세기 미국 소설가 잭슨은 오래된 저택이라는 한정된 장소에서의 사건을 다루는 '고딕 미스터리' 장르의 대표주자다. 그의 대표작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제비뽑기> <힐 하우스의 유령>이 한국에서 번역 출간됐으며, 그의 이름을 딴 셜리 잭슨상은 2007년에 제정돼 2017년 편혜영 작가가 한국인 최초로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1965년에 사망한 셜리 잭슨의 마지막 소설 작품은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다. 2018년 영화로 개봉했고 7월 한국을 찾았다. 이 소설 작품 역시 고딕 미스터리의 대가다운 필치와 분위기로 유명한데, 영화에서 어떻게 살렸을지 궁금했다.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영화만이 할 수 있는 걸 극대화시켰을지, 더할 건 더하고 집중할 건 집중하고 뺄 건 빼면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했을지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는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고자 한 것처럼 보였다. 고딕 미스터리 특유의 음울하고 불안하고 처진 분위기를 시각적 미장센으로 표현해냈다. 화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의도를 어느 정도 간파할 수 있다. 대신, 스토리나 캐릭터나 사건 등이 상대적으로 묻히는 경향이 있다. 가장 큰 허점은 스토리를 이해하기 ㅇ렵다는 것. 본래는 극중에서 주인공들의 행동과 말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하는데, 초중반까지는 '극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대저택과 마을, 불쑥 찾아온 찰스
 
 영화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의 한 장면.

영화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의 한 장면. ⓒ (주)디스테이션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대저택, 블랙우드 가족이 대대로 살아온 그곳엔 이젠 어린 두 자매와 삼촌만 살고 있다. 6년 전 자매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명 '비소 살인 사건'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용의자로 큰 딸 콘스탄스가 지목되어 재판을 받았지만 무죄로 풀려난 바 있다. 그녀는 이후로 집 밖에 나가지 못하게 되었는데, 대신 동생 메리캣이 한 주에 한 번 날을 잡아 마을로 나가 먹을 걸 사고 볼 일을 본다. 한편 삼촌 줄리안은 그날 그 사건에 매몰되어 헤어나오지 못한 채, 그 사건을 소설로 옮기는 데만 몰두하며 살아가고 있다.

불안하고 불편하고 불쾌하지만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 그들 앞에 낯선 젊은 남자 한 명이 찾아온다. 찰스라는 이름의 그는 자신을 먼 친척이라고 밝히고는 대저택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런데 하는 말과 행동을 보니 아무래도 돈이 목적인 듯 싶다. 메리캣이 집과 가족을 지킨다는 일념으로 거금과 고가품을 가지고 벌이는 일련의 주술행위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금지시키려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콘스탄스를 상대로 음흉한 말과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한없이 착하고 무르기만 한 콘스탄스는 그를 멀리하기가 힘들다. 대신 줄리안은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찰스를 향해 소리치며 집을 나가줄 것을 요구하고, 메리캣도 마찬가지로 그의 추방을 위해 말과 행동을 병행한다. 마을 사람들은 블랙우드 가족의 악랄한 소문을 발판 삼아 찰스가 곧 죽을 거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기도 한다. 물론, 찰스는 꿈쩍도 하지 않고 블랙우드 대저택의 중심으로 다가가려 한다. 

마을 사람들
 
 영화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의 한 장면.

영화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의 한 장면. ⓒ (주)디스테이션

 
'딸이 부모님을 살해했는 이유로 재판을 받았지만 무죄로 풀려났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영화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의 기본 배경에서는 다소 기시감이 느껴진다. 올해 초 개봉했던 영화 <리지>의 모티브가 되는 '리지 보든 살인사건'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1892년 미국 메사추세츠에서 보든 일가 부부가 도끼로 무참히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용의자로는 둘째딸 리지 보든이 지목됐고 그는 재판에 넘겨졌지만 무죄로 풀려났다. 하지만 워낙 유명한 사건인 탓에 동요로까지 만들어졌고 10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불리고 있다고 한다. 

셜리 잭슨이 소설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를 지을 때 이 실화 사건을 참조하지는 않았을까. 사실 리지 보든 살인사건은 그동안 직간접적으로 수많은 콘텐츠에 영향을 미쳐 왔다. 이 영화를 '리지 보든 살인사건' 이후의 이야기로 생각하고 봐도 무방해 보인다.

극중에서 평범하고 일상적인 악이 마을을 잠식하고 있는 모습은 섬뜩하다. 메리캣에 따르면 블랙우드 가족은 마을과 멀리 떨어져 살고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마을 사람들은 대저택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을 빌미로 두 자매를 포함한 블랙우드 가족에게 폭언과 폭력을 퍼붓는다. 그들에게 자매는 두려운 적이자 악의 존재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마을 사람들이 훨씬 다수고 강자다. 그들로 하여금 자매는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대저택에만 갇혀 있다. 이는 원작자 셜리 잭슨이 의도한 것으로 읽힌다.

두 자매
 
 영화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의 한 장면.

영화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의 한 장면. ⓒ (주)디스테이션

 
두 자매, 그 중에서도 메리캣의 관점에서 영화를 들여다보면 다른 요소들도 보인다. 메리캣은 18세의 소녀로 항상 불안에 차 있는 눈빛과 행동을 보여준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그런 모습을 불쾌해 하고 블랙우드 가족의 참혹함을 떠올린다.

나아가 사람들은 고고하게 중세 시대 영주의 성처럼 있는 블랙우드 대저택을 불편하게 느낀다. 메리캣 자매가 마을 사람들을 두려워 하고 무서워하는 것보다 마을 사람들이 그들을 더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메리캣이 행하는 일련의 주술행위나 특유의 말과 행동은 굉장히 방어적이다. 저택과 가족을 지키려는 의도로 하는 보수적인 행동, 그 전형이다. 사실 마을 사람들이 그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는 궁극적 지점 역시 이러한 것으로 보인다. 그 가족의 참혹한 사건이 아니라 막대한 부 말이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자매이기에 이를 간파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다만 두 자매가 찰스에 대항하는 유일한 이들이라는 점, 그리고 그 행동이 마을 사람들을 대할 때와 다르게 당당하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물론 블랙우드 대저택을 수호하는 가장으로서 이를 찰스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마음에서 나온 행동일 것이다. 그러나 메리캣은 권력의 추악한 면모를 전혀 보여주지 않고도 충분히 찰스에 대항한다.

자신들을 억압하지도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는 줄리안 삼촌을 해칠 필요는 없다. 찰스는 젊고 잘생기고 삼촌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자신들을 억압하고 급기야 자신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그렇기에 두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두 자매는 그저 자신의 권리를 찾고 의무를 다했을 뿐이다. 이 영화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던 이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셜리 잭슨 대저택과 마을 살인사건 여성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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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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