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징 학살을 다룬 영화 <난징 난징>의 포스터

난징 학살을 다룬 영화 <난징 난징>의 포스터 ⓒ CFGC

  
부산국제영화제 참여 작품인 루 추안 감독의 <난징 난징(City of Life and Death)>을 지난 24일 주한중국문화원에서 봤다. 영화를 보며 머리가 빠개질 듯 아프고 가슴이 답답해져 찬물 한 병을 들이켰지만 두통을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일본이 만주와 조선에서 저지른 수많은 독립투사와 민간인 학살, 위안부로 강제 징용으로 끌어가 죽음을 당하게 만들었던  전쟁 범죄의 역사가 겹쳐졌기 때문이다. 현재도 일본은 여전히 전쟁 범죄에 대해 사과도 배상도 하지 않고 있어 더욱 불편한 영화였다. 
 
2009년 4월 중국에서 개봉되어 반일감정을 자극하며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는 <난징 난징(City of Life and Death)>은 철저한 고증을 통한 극사실주의에 바탕을 둔 흑백 작품이다.

영화는 일본군이 1937년 12월 13일 난징을 정복한 이후 1938년 2월까지 6주간에 걸쳐 난징에서 15만 명을 학살한 반인륜적 전쟁범죄를 담았다.
 
한나 아렌트가 수백만의 유대인 학살을 주도한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범죄를 두고 정의한 것처럼, <난징 난징(City of Life and Death)>은 '악의 평범성'을 자행하는 일본군의 모습을 담았다. 또한 그와 함께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의 길을 잃지 않는 일군의 사람들을 대비해 보여준다.
 
영화는 전쟁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고 인간성을 상실하게 하는지를 무차별 살인, 강간, 거짓과 부역, 저항을 통해 처절하게 보여준다. 전쟁은 평범한 보통 사람을 살인마와 부역자로 만들기도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저버리지 않고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도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인간이 거대한 조직의 톱니바퀴에 불과하기에 명령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은 변명이 될 수도 범죄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도 없다.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의 도리와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깊게 숙고하며 사는 사람이라면 쉽게 무고한 생명을 해치거나 이성이 아닌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본능에 이끌려 살지는 않을 것이다.
 
전쟁 중이라는 이유로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하고 여성을 강간하고 시신을 태우고 물건을 훔치는 행위는 끔찍한 전쟁 범죄다. 어떤 핑계로도 전쟁 중 살인과 강간이 정당화 될 수 없는 이유다.
 
전쟁의 참상과 끔찍한 학살의 역사를 담은 영화

영화는 전쟁 가해자인 일본군 장교 카도카와와, 전쟁 피해자인 일본인 '위안부' 유리코, 전쟁 고아와 여성 난민들을 보호하던 독일인 욘 리베의 비서 중국인 탕 선생, 안전요원인 지앙이라는 여성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일본군은 중화민국 수도 난징을 침공해 1937년 12월 불과 3일 만에 군의 마지막 방어선을 뚫고 수도인 난징을 점령하는 데 성공한다. 난징 함락 이후 일본군은 무차별 학살, 강간, 도둑질 등 온갖 범죄를 저지른다.
 
치열한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난징 거리에는 나무 기둥에 매달린 채 죽은 시체, 벌거벗겨진 채 죽은 여인들의 시체, 여기저기 매달린 시체 머리와 쓰레기더미로 가득하다.
 
영화 속에서 일본군은 민간인 속에 숨은 잔여 군인들을 색출해낸다는 핑계로 난징의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잡아들인다. 거리에서 잡히거나 집단으로 피신했다가 잡힌 난징 사람들을 일본군은 무차별적으로 나무 기둥에 매달아 죽인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군들은 난징 사람들을 바닷물에 수장시키고, 건물에 가둔 뒤 못질을 하고 석유를 붓고 수류탄을 터트려 집단 학살을 자행한다.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일본군은 안전지대에서 독일인 욘 리베와 미국인 중국인 안전요원에 의해 보호받던 여성들을 매일 성범죄를 저지르는 걸 서슴지 않는다.
  
 영화 <난징 난징> 스틸컷

영화 <난징 난징> 스틸컷 ⓒ CFGC

 
20대 학도병 장교인 카도카와는 일본인 '위안부' 유리코와 처음으로 성관계를 맺는다. 콘돔 사용법조차 모르던 카도카와는 처음으로 관계를 맺은 유리코에게 설 명절 선물을 들고 찾아가고, 그녀가 병으로 죽자 자기의 아내라며 무덤을 만들어 줄 것을 부탁하기도 한다.
 
영화 안에서는 성욕을 주체하지 못해 밤마다 안전지대에 들어와 여성들을 무차별 집단 성폭행을 자행하는 일본군들이 있는가 하면, '위안부' 여성에게도 진심으로 대하는 카도카와 같은 군인도 있다.
 
<난징 난징> 속 난징 사람들은 '중국 만세'를 외치며 총살을 당하고, 손을 들면 '위안부'로 끌려갈 것을 알면서도 아이들이 겨울나기를 보장한다는 말에 끌려가려고 자발적으로 손을 들기도 한다.
 
적군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안전지대에서 리베의 비서로 일하며 난민촌에 머물던 탕 선생은 일본군에게 자신은 '토모다찌(친구)'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목숨을 부지한다. 탕 선생은 안전지대를 압박하는 일본군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부상당한 군인들을 희생자로 내어주며 부역자가 된다. 하지만 일본군은 안전지대를 지켜준다는 약속을 어기고 탕 선생의 처제를 납치하고, 그의 어린 딸을 창 밖으로 내던져 죽게 만든다. 
 
일본군은 잔여 군인 정보를 받아 부상당한 군인들을 모두 총살한 뒤 약속을 어기고 안전지대 여성들을 강간하고 안전지대와 아이들의 안전을 위협한다. 안전요원들은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일본군이 제안한 100명의 여성들을 '위안부'로 내어주는 일에 동의하고 여성들은 끌려간다.
 
영화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의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시선도 그대로 드러난다. 긴 파마 머리에 매니큐어를 발랐다는 이유로 몸을 파는 여자로 몰아가고, 안전을 지키려 머리카락을 자르고 손톱의 매니큐어를 지우게 하지만 여성으로서 자기 정체성이나 화장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여성도 있다. '일본에서는 여자들이 파마를 하고 손톱을 칠하고 립스틱을 바르면 모두 창녀 취급을 하느냐'는 질문에 일본군은 답하지 못하면서도 강간을 멈추지 않는다.
 
안전요원 지앙은 트럭에 실려 끌려가던 사람을 더 많이 구하다가 발각되어 위안부로 끌려가게 된다. 그러던 중 지앙은 전에 만난 적이 있는 카도카와에게 자신을 총살시켜 달라고 부탁한다. 군인들에게 양팔을 잡힌 채 끌려가는 지앙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카도카와는 그녀의 등에 총을 쏜다.

리베의 활동으로 일본과 관계가 불편해진 독일은 리베의 귀국을 강요하고 리베는 군의관과 비서였던 탕 선생과 부인을 함께 데려가려 하지만 일본군은 '한 명만 갈 수 있다'고 말한다. 임신 중인 자신의 부인을 살리기 위해 탕 선생은 난징에 남기로 한다. 난징에 남는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일본군은 '그래도 살아 있는 게 좋잖아'라고 말하는데, 탕 선생은 눈가리개를 거절하고 안경을 쓴 채 총살을 당한다. 
총살을 하려는 일본군에게 '아내가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전하면서.
 
영화의 막바지는 총살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던 한 남자와 아이가 둔 손이 묶인 채 총살을 당하기 위해 들판으로 끌려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자신이 마음을 주었던 유리코의 죽음에 절망하고, 자신에게 묵주 목걸이를 주었던 지앙을 총살했던 카도카와는 두 사람을 풀어주며 '살아가는 것이 죽는 것보다 힘들다'고 중얼거린다. 그리고 민들레 홀씨가 가득한 들판에서 카도카와는 권총을 머리에 쏘아 자살한다. 총살형을 면한 두 사람은 민들레 홀씨를 불어 날리며 손잡고 들판을 걸어 살아남은 자의 길을 간다.
 
감독은 난징 학살을 다룬 영화를 통해 전쟁의 참상과 끔찍한 학살의 역사를 넘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어쩌면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잃지 않고 인간으로 살아가려는 의지를 지닌 사람들에 의해 '악의 평범성', 혹은 전쟁의 망령과 잔혹성이 극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난징학살 전범국일본 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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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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