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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일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로 6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그날 이후 많은 노동자들이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다. 이번 글은 당시 사고로 형을 잃은 조선 노동자 김형태의 이야기다. [편집자말]
구술 : 김형태 (가명, 47세, 배관작업 )
기록과 글 : 박희정, 이은주


이게 어느 순간에 나도 모르게 찾아와요.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더라고요. 운전을 하다가, 아니면 아침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다가도 갑자기 그때 상황이…… 한 번은 쉬는 시간에 담배를 피우려고 휴게실을 갔는데 그때 상황이 떠오르니깐, 와……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눈물이 나는데, 동료들한테는 '화장실 좀 갔다 올게' 하고 세수하는 척하면서 막 눈물 닦고 그랬어요.

다른 사람들한테 약한 모습 보이기 싫으니까 혼자서 감당을 하는 거죠. 부모형제들에게는 특히 보이기 싫어요. 정신적인 트라우마? 저도 그렇게 생각했지요. 심적으로 약한 사람이라고…… 시간이 많이 지나면 없어지지 않나 했죠.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제가 겪어보니 아니에요. 시간이 갈수록 불면증은 더 심해지고. 정신적으로 지배 당하는 거 같고.

형이 안 보이더라고요, 아무리 찾아도 없었어요
 
 세계노동절인 1일 오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타워크레인 사고로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진은 2일 오후 사고현장의 휜 크레인.
 세계노동절인 2017년 5월 1일 오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타워크레인 사고로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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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했던 곳은 '마틴링게'라는 해양플랜트 건조현장이었어요. 바다에서 원유를 생산하는 해양플랜트는 수많은 블록으로 나눠서 만든 다음에 조립하는 방식으로 건조가 이루어져요. 최고층까지 일반 아파트 15층 높이쯤 될 거예요. 아주 크죠. 사고가 난 그날도 평소처럼 일 마무리하고 반장하고 같이 휴게실로 가서 담배 한 대 물고 형한테 전화를 하려고 했어요. 저희 형도 마틴링게에서 일하고 있었거든요. 갑자기 위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붐대가 벼락같이 떨어졌어요. 크레인이 떨어진 거죠.

사람들은 혼비백산했죠. 같이 있던 반장도 살짝 다쳤고…… 혹시나 해서 우리 반 사람들한테 연락을 다 했어요. 제일 먼저 형한테 했죠. 전화를 안 받더라고요. 형이 근처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했어요. 크레인이 떨어진 시각이 정확히 2시 53분이었고, 휴식시간은 3시부터였거든요. 저희 형은 쉬는 시간이 돼서 누가 쉬러 가자고 말해야만 휴게실에 가던 사람이었어요. 평소처럼 늦게 오겠거니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날따라 좀 일찍 갔는가 보더라고요……

형을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고, 전화는 안 받고, 자꾸 마음은 불안하고. 블록 밑으로 내려왔다가 혹시 형이 사고 난 거 아닌가 하고 다시 올라가 보려고 하니까 관리자들이 못 올라가게 막더라고요. 119 소방대가 달려오는데 형은 계속 전화를 안 받으니까, 안 되겠다 싶어서 사고 난 블록 옆 다른 호선(배)으로 올라갔어요.

꼭대기 올라가서 사고 현장을 살펴봤어요. 형이 안 보이더라고요.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서 확대를 해 봐도 형 비슷한 사람이 안 보여요. 계속 전화하면서 그 블록을 내려오는데, 누가 뒤에서 어깨를 툭툭 치더라구요. 물량팀 대표였던 친구가 저를 딱 잡더니 대우병원 가자고 그러더라고요. 형 보러 가자고……

병원 가서 형 모습을 봤죠…… 안치실에 가서 형 모습을 제가 직접 봤거든요. 음……
비명 한 번 못 질러보고 갔겠다…… 너무 고통스러웠겠다.

조선소라는 게 쇳덩이를 다루는 곳이라 고개만 돌리다 부딪쳐도 엄청난 고통인데, 그 떨어지는 순간 얼마나 아팠을까, 우리 형이…… 통영에서 화장해서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그때가 5월 26일쯤이었던 같아요. 아니면 27일. 화장터에서 화장하고 유골을 쓸어 담는데 어머니하고 큰이모하고 우시더라고요. 뼈가 왜 저거밖에 안 나오냐고. 온몸에 뼈가 다…… 그렇게 되도록 사고를 당한 거죠.

노동절의 비극

형하고 저는 한 살 차이예요. 연년생이다 보니까 어릴 때부터 많이 치고받고 싸웠거든요. 제가 사춘기 때는 형이라고 안 불렀어요. 그냥 호칭 없이 딱 할 이야기만 했어요. '야!' 그러면 맞으니깐 '야'라고 할 수는 없고, 형이라고 부르기도 싫으니까 호칭 안 하고 대화하는 거죠. 그러다가 어느 정도 나이도 들고 애 낳고 아빠가 되고 나니까 서로가 세상에서 제일 친한 친구가 됐더라고요. 거제 왔을 때도 같은 일을 하다 보니 더 의지하며 지냈죠.

저희 형제애가 조금 남달랐거든요. 어려서는 친구같이 별명도 부르고 했어요. 형은 장난도 많고 사람 사귀기도 좋아하고 바보 같았어요. 너무 좋은 형이고, 그래서 모두가 편하게 대하는 사람이었죠. 저희 어머니는 형 보내고 많이 힘들어하시죠. 저희 형이 큰애인데 형을 다른 형제들보다 유별나게 많이 아끼셨던 거 같아요. 지금도 형 얘기하면 많이 우세요.

사고가 났을 때는 공정 막바지였어요. 삼성에서 마무리 공정을 빨리해야 선주로부터 다른 공사를 받겠죠. 공기를 단축하면 원래 받을 금액에서 추가로 나오는 돈이 또 있거든요. 그러니 삼성에서는 어떻게든 빨리 끝내려고 했겠지요. 사고 난 날이 휴일이었는데 (5월 1일, 노동자의 날) 이런 날은 삼성중공업이나 대우조선해양이나 정직원들은 출근을 안 해요. 쉬죠. 정말 급한 일 아니면 안 나와요. 관리자만 나오죠. 그런 날은 안전관리자도 대충 분위기 보고 내려가고 그렇죠. 빨간 날 특근은 일이 좀 느슨하다 보니까 평소보다는 관리감독이 소홀한 편이에요. 공휴일이나 토요일은 퇴근 시간만 1시간 빨라지고 하는 일은 똑같습니다.

물량팀이 많이 나왔죠. 본공에서는 일부가 나왔을 테고. 원청 관리자도 일부만. 저도 관리자를 해봐서 알아요. 그날 배관 쪽은 우리 팀 이외에 다른 팀 한 반 정도가 출근했던 거 같아요. 사고로 돌아가신 여섯 분 다 하청업체 소속이에요. 하청 일을 하다 보면 보통 3개월 정도로 계약을 해요. 업체에서 이 팀은 일을 잘하는구나, 그러면 연장을 하고, 또 연장을 하고 그런 식으로 계약을 해요. 그러니까 QC(품질관리)가 들어온다고 하면 시간을 단축해서 어느 정도 선까지는 해줄 수밖에 없는 게 저희 같은 조선소 하청노동자 입장이거든요. 이 사람들 일 못 하네 하면 바로 그만둬야 하는 상황인 거니까요.

조선소에 가는 사람들은 돈을 벌려고 가는 거예요. 숙소에서 하루 있어 봐야 뭐하겠나. 돈이라도 벌자. 대개는 그런 마음이죠. 저도 그랬어요. 하루하루 일해서 한 푼이라도 더 벌자. 웬만해서는 쉬지 않고 일했죠. 회사에서도 납기일에 쫓기다 보니까 우리가 출근을 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고요.

노동자의 날은 노동자를 위해서 제정된 날인데 저에게는 가장 슬픈 날이에요. 원래 사고 난 그날이 형이 쉬고 집에 가려고 했던 날이었어요. 그냥 일하고 다음 주에 가겠다고 바꾼 거죠. 형수가 이야기 하더라고요. 온다고 했었는데…… 형수한테 형의 사망 소식을 전한 것도…… 저예요. 회사에서 하는 게 맞는데 저한테 하라고 연락이 왔더라고요. 물량팀장이 그래도 친구라서 믿었거든요. 근데 아니었어요. 물량팀들은 보상금을 지급해줄 능력이 안 되니 산재처리도 1차 하청업체로 다 처리를 했어요.

책임 대신 회피와 회유만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이 2일 저녁 거제백병원 장례식장에 있는, 크레인 붕괴 참사 희생자 빈소를 찾았다가 조문 도중 항의를 받고 돌아갔다.
 2017년 5월 2일 저녁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이 거제백병원 장례식장에 있는, 크레인 붕괴 참사 희생자 빈소를 찾았다가 조문 도중 항의를 받고 돌아갔다.
ⓒ 김경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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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에 있는 한 달 동안, 삼성에서 진짜 책임질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오지 않았어요. 협력사 대표들이 모이는 협력사 협의회라고 있거든요. 그쪽 사람들이 건물 장례식장 옥상에 천막을 치고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어떻게든 빨리 합의를 보려고 했죠. 합의 본 날이 되어서야 삼성에서 상무가 문상을 오더라고요. 삼성중공업은 항상 그런 식이라고 그래요. 사고가 나면 협력사 협의회에서 협력사 책임으로 돌리고 그렇죠.

삼성에서는 그냥 언론에 보도될 때만 사과하는 척만 했었고요. 평상시에는 얼굴도 비치지 않았어요. 삼성중공업 사장이 한 번 찾아왔다가 유가족들이 워낙에 거세게 항의하니까 바로 옥상을 통해서 빠져나갔던 것으로 기억해요. 일단은 책임을 하청업체로 미루고 산재 처리도 하청업체에서 다 했으니까요.

협력업체는 자기네들이 떠안아야 하는 불똥이 있으니 겉으로는 위로해주는 척하면서 빨리 합의를 하려고 시도를 많이 했죠. 하루는 저희 팀장이었던 친구가 협력사 협의회 회장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자고, 밖에서 따로 보자고 하더라구요. 나가서 만났더니 하는 이야기가 합의금 이야기. 이 정도 선에서 합의를 하고, 그 외 별도로 어머니한테는 위로금을 몇천만 원 정도 주겠다고 회유를 하는 거였어요. 다른 유가족들한테도 그런 식으로 접근을 했던 거 같아요. 우리 가족은 회사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고 기다렸죠. 합의는 형수가 하는 거니까요.

합의한 날 저녁에 상무하고 부장인가가 왔더라고요. 왜 진작 안 오고 지금 왔을까, 미안하다는 한마디가 힘들었을까, 진심으로 사과하고 정당하게 합의를 해줬으면 가족들이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 텐데…… 형이, 남편이, 아빠가, 아들이, 시체 안치실 그 추운 데서 한 달 가까이 장례도 못 치르고 있다고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너무 아픈 거예요. 상처도 많이 받았죠. 저는 사고 당일 형 모습을 봤잖아요……

이번 사고는 크레인끼리 충돌하면서 일어났어요. 골리앗 크레인이라고 하는 거대한 크레인이 있어요. 대형 블록을 실어 나르는 크레인인데, 밑에 레일이 있어서 그걸 따라 직선으로 이동해요. 높이가 50m보다 더 높을 거예요. 그리고 일반적인 공사 현장에서 많이 보는 지브크레인이 있어요. 그건 한자리에 고정이 되어 있어요. 지브크레인은 협력업체이고 골리앗 크레인은 직영이었어요. 두 크레인 사이에 신호가 맞지 않아서 충돌사고가 일어난 거예요. 아무리 휴일이라도 관리자들이 나왔을 테고 안전관리자들도 있었을 텐데 왜 그때 신호가 맞지 않았을까요? 해양플랜트 같은 큰 공사를 하는 곳에서 벌어지기에는 너무 어처구니없는 사고였잖아요.

사고 이후에 전 야드에 작업중지가 내려와서 거의 보름간을 일을 못 했을 거예요. 그런데 삼성은 이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삼성을 위해서 일해 준 사람들한테 아무것도 해준 게 없어요. 너무 괘씸하죠. 삼성반도체도 백혈병 걸린 사람들한테 그렇게 했잖아요. 사고가 날 때마다 항상 뒷짐 지고 협력사 협의회에 떠넘기고, 자기들은 뒤에 숨어서 책임을 회피하고. 책임을 져야 할 곳은 당연히 삼성이라고 생각해요. 원래 관리 감독을 할 사람들이 삼성이니까요. 삼성중공업 사업장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의 책임을 질 의무가 있어요.

사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에 처음에는 좀 부정적이었는데,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삼성이 어떻게 했는지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특별한 시기에 터진 사고였죠. 국민들이 대통령을 하야시키고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대선기간이었어요. 그때 지금의 대통령이 저희에게 찾아와 해결하겠다는 약속도 했었죠. 하지만 아직까지 하나도 지켜지지 않고 있어요. 국민들에게 약속하고 다짐했던 분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이어지는 글] 나, 조선소 노동자 열 번째 이야기②
 
삼성중공업 크레인사고 경과설명
2017년 5월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7안벽 조립장 마틴링게 프로젝트 프로세스 모듈 건조현장 800톤 골리앗 크레인과 32톤 지브형 크레인이 충돌했다. 크레인 사고로 6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고, 25명의 노동자가 다쳤다. 부상을 당하고도 은폐되고 치료받지 못한 노동자도 있다. 한 두 발걸음 거리로 죽음과 삶이 나뉘었다. 참담한 현장은 살아온 노동자들의 몸에 흩어진 파편처럼 새겨져 있다. 수 백명의 노동자가 크레인 사고의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지만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노동자는 단 14명뿐이다.

2019년 5월 7일 1심 선고에서 삼성중공업 안전조치의무 무죄와 300만원의 벌금이 선고되었다. 사고의 책임을 모두 현장의 노동자에게 전가하였다. 2017년 5월 1일 삼성중공업에 출근한 노동자는 총 1623명이다. 이중 1464명, 90%가 비정규직노동자였다. 다치고 죽어간 노동자 모두 하청의 하청 비정규노동자였다. 이윤을 위한 외주화는 노동자들을 죽고 다치고 병들게 만든다. 노동자 자신의 생명권에 대한 권리를 온전하게 갖고, 이윤보다 생명의 가치가 우선되지 않는 한, 노동자 죽음의 행렬을 결코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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