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스페셜-간헐적 가족

sbs스페셜-간헐적 가족 ⓒ sbs

 
오늘날 '가족'은 해체 중에 있다. 한국 사회에서 가족은 개인이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최후의 보루'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최후의 보루'가 흔들리고 있다. 사회면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직계존비속 관련 각종 사건 사고는 우리 사회 기본 안전망이었던 '가족'이 더 이상은 보호막이 되고 있지 못함을 증명하고 있다. 더불어 가족들 사이에 생기는 크고 작은 문제는 과연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인가, 가족은 무엇인가를 의심하게 만든다. 이런 분위기는 자연히 결혼을, 가족을 형성하는 것 자체를 주저하게 만든다.

하지만 홀로 사는 삶도 녹록지 않다. 해결책이 있을까? 이러한 현대 사회 고민의 대안을 모색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14일 < SBS 스페셜 >이 찾아간 도봉구 안골 마을의 간헐적 가족 공동체 '은혜'가 그 주인공이다.

다큐를 여는 건 여느 가정에서 볼 수 있는 아침 시간 모습이다. 엄마가 아이들을 깨우기 시작하는데, 하나 둘 셋 넷... 아이들이 너무 많다. 한 층을 더 올라갔는데, 거기서도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이들은 '가족'이 아니란다. '가족' 대신 이들이 쓰는 명칭은 '부족'이다. 이 부족에만 아이가 9명이나 있단다.

가족도 사라지는 시대 부족이라니, 그들의 발상이 신선했다. 이 '부족'의 아이들은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스스로 오늘 있을 '무수골 탐방' 준비를 시작했는데, 신기하게도 그동안 '엄마'를 찾지 않았다. 심지어 어른도 지치기 쉬운 산길을 오르는 내내 투정 한번 부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이 이번에도 엄마가 아니다. '이모'란다.

젖은 옷을 갈아입히고, 땀에 젖은 머리를 묶어주는 등 이날 유치반 아이들 4명을 보살핀 사람은 '이모' 정영경씨다. 정씨는 한 달에 한 번 이모가 돼, 아이들을 돌봐주는 자원봉사를 한다. 이렇게 이모가 아이들을 돌봐주는 사이 엄마는 공동체의 또래들과 여유롭게 산행을 즐긴다.

14가구 50명이 함께 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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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스페셜-간헐적 가족 ⓒ sbs


총 4부족으로 구성돼 있는 간헐적 가족 공동체 은혜에는 14가구, 총 50명의 어른과 아이, 청소년이 모여 살고 있다. 이들은 평소 개인의 삶을 살지만 가끔씩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준다. 물론 그들이 처음부터 함께 모여서 살았던 건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함께 모여 공부도 하고 밥도 먹고 하던 모임이었다. 그런 모임을 유지하던 중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함께 모여서 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혼자 오래 살다 보니 외로움이 깊이 쌓였고, 공부하고 경쟁하며 살아가느라 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친구조차 만들지 못한 현실. 그런 현실에서 그들은 '결혼'이라는 과정 대신 '공동체'라는 대안을 선택했다.

그렇게 함께 살아보자는 결의를 한 뒤 집을 짓기 시작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함께 모여 살았던 사람들 중 땅을 사고 집을 짓는 '자본주의적' 과정에 경제적인 이유로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경제적 난관에 대해 공동체 '은혜'는 융통성 있는 방침을 마련했다. 집을 지을 수 있는 돈을 마련할 수 있는 사람들은 돈을 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매달 '월세'를 내는 것 뜻이 있는 곳에 길을 마련했다.

2016년 5월 지상 3층, 지하 1층짜리 공동주택의 건축이 시작됐다. 싱글들의 삶을 존중하는 공간, 하루 종일 일한 엄마가 집에 돌아와 '독박 육아'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공동 육아' 시스템, 더불어 공동체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지하의 강당까지. 그들은 그렇게 가족이 아닌 이들이 함께 어울려 살 수 있게 했다.

물론 집을 짓는 것 말고 난관은 또 있었다. 싱글들의 모임에서 이 공동체 만들기가 시작된 터라, 애초 '아이'는 없었다. 하지만 공동체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함께 하게 되었다. 과연 싱글들은 아이들과 함께 사는 삶에서 오는 생소함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앞서 언급했듯, 싱글들은 한 달에 한 번 아이들의 이모가 된다. 방과 후에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운동을 한다. 그런 시스템이 잘 정착되었기 때문일까? 이젠 아이들도 유치원,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를 찾는 대신, 오늘은 누가 날 돌보는지 묻는다. 한꺼번에 여러 명의 아이를 돌보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이지만, 의외로 어렵진 않았다. 아이들에겐 공동체가 살고 있는 건물 자체가 무한한 놀이 공간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나무로 된 계단을 맘껏 뛰어다닌다. 여느 집 아이들처럼 뛰면 아래층 사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니 조심히 걸으라는 잔소리를 들을 필요도 없다. 그렇게 아이들끼리 어울리다보면, 어느 사이 잘 시간이 된다. 꼭 '이모'가 아니라도 아이들끼리 놀다보면 지나가는 어른들이 끼어들어 함께 어울린다. '이모'의 역할은 그저 아이들끼리 다툼이 생겼을 때 중재하고 지켜봐 주는 정도다.

부모가 이혼해도 '가족'은 남아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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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뒤 내내 홀로 지내던 크리에이터 최미정씨. 처음 그는 홀로 지낸 시간이 길어 과연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공동체 사람들은 스스럼없이 그녀를 맞았다. 아이들에게는 그저 또 한 명의 이모다. 일주일을 공동체에서 보낸 공동체의 사람들이 바리바리 싸준 먹을거리를 들고 떠나던 최미정씨는 "제가 생각했던 사람들과 많이 달랐어요, 여기 사람들은"이라며 결국 눈시울을 붉힌다.

물론 처음부터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기가 쉬운 건 아니었다. 습관의 차이는 원칙을 만들어 쉽게 고쳐졌지만, 각자 성격의 차이를 극복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번 보던 사이가 함께 집을 짓고 사는 관계가 되었고, 이제 그런 공동체 실험도 어느덧 3년이 되어간다.

없던 아이가 생기기도 했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들어온 부부가 이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공동체가 깨지거나 상처를 입지는 않는다. 부모의 이혼으로 혼란을 겪던 아이는 공동체의 삼촌, 이모들의 위로를 통해 자신이 버림받은 게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기도 한다. '이모' 노릇은 쉽지 않지만, 대신 '가족'이 생겨나는 곳, '가족'조차 없어져 가는 시대에, '부족'을 만들어 사는 마을, 공동체 '은혜'. 그 실험은 아직 진행 중이지만 '고독 사회'가 가진 고민의 한 대안임은 분명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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