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이크 도리머스 감독은 국내에서 유명한 감독은 아니지만 멜로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그의 영화를 봤을 만큼 멜로 장르에 특화된 감독이다. <우리가 사랑한 시간>과 <이퀄스>로 국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의 능력은 2011년 작 <라이크 크레이지>의 뒤늦은 개봉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그가 <뉴니스>에 이어 선보인 신작 <조>는 드레이크 도리머스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기존 영화와는 다른 사랑, 그리고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조>는 <그녀>가 멜로영화계에 내던진 질문에 대한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인공지능과의 사랑을 통해 현대사회가 겪고 있는 관계와 진정한 사랑에 대해 질문을 던진 <그녀> 이후 인간과 같은 사고를 할 수 있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 다른 이에게 사랑을 줄 수 없지만 사랑은 받고 싶어 하는 인간 소외와 이에 대한 대안에 대한 질문이 영화계에도 들어오게 되었다. 드레이크 도리머스 감독은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던진다.
커플들의 연애 성공률 예측하는 연구소
커플들의 연애 성공률을 예측해주는 연구소를 차린 콜은 이 연구소에서 두 가지 실험에 몰두한다. 첫 번째는 연애 성공률이다. 각자의 성향과 취향, 살아온 인생 등을 조사해 두 사람의 연애 성공률을 매칭해 준다. 이 작업을 하는 이유는 현대인의 특성에 있다. 깊은 만남보다는 가벼운 만남을, 결혼이라는 서로에게 양보와 인내를 보여야 하는 과정보다는 연애나 동거, 극단적인 경우는 연애 자체를 포기한다.
이는 만남이 주는 불확실성과 시간과 금전에 대한 부담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이에 연구소는 두 사람이 이뤄질 확률을 매칭해서 서로에게 맞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시킨다. 두 번째는 로봇 연구이다. 사람 사이의 감정에는 불확실성이 있다. 한껏 좋아하는 감정이 타오르다가도 그 감정이 한 번에 꺼질 수 있다는 점이 감정이 지닌 약점이다. 이에 연구소에서는 AI를 탑재한 로봇을 연구한다. 이 로봇은 불타오르는 사랑보다는 반려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다.
사랑의 종착역은 결혼이고 결혼은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약속이다. 높은 이혼율과 졸혼은 이 약속이 유효하지 않다는 증명이고, 이는 개인의 외로움과 소외를 가져오는 이유 중 하나다. 연구소의 로봇은 이런 인간이 죽을 때까지 함께해주는 존재이자 그의 취향에 맞춰 행동하고 대화를 나눠줄 대상이 된다. 이 연구소에서 일하는 조(레아 세이두)는 사랑의 감정이 생긴 상대 콜(이완 맥그리거)과 자신을 매칭해 보지만 연애 성공률 0%라는 절망적인 수치를 받아들이게 된다.
이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조는 콜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충격적인 답을 듣게 된다. 사실 조는 연구소가 만든 로봇으로 인간 사회에서의 적응력을 보기 위해 그녀에게는 그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이 로봇이라는 것을 알게 된 조는 혼란에 빠진다. 그녀가 콜을 사랑하는 건 그녀의 기억처럼 설계된 사랑인지, 아니면 마음이 진정으로 바라는 사랑인지 말이다.
이런 고민은 콜 역시 지니고 있다. 그는 사랑의 감정이 마음에 한 톨도 남아있지 않은 사람이다. 사랑의 뜨거움이 사라진 그는 연구소에서 만든 연애 감정을 일으키는 약이 아니면 감정을 끌어올릴 수 없다. 그는 조가 자신에게 느끼는 사랑뿐만 아니라 본인이 품는 감정에도 의문을 지니게 된다. 두 사람의 로맨스는 전작 <뉴니스>가 조명했던 현대사회의 사랑과 관계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다.
현대인들이 지닌 감정과 관계에 대한 두려움 담아낸 영화
<뉴니스>는 SNS를 통한 가벼운 만남을 선호하던 두 남녀가 서로에게 깊게 빠지지만 그 사랑에 두려움을 느끼고 서로를 멀리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또한 <뉴니스>는 관계가 지닌 두려움과 염증, 그리고 피로가 사랑에도 이어짐을 보여준다. 이는 <조>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에 대한 두려움은 노력과 인내보다는 확신을 원하고 확신 없는 관계에는 두려움을 느낀 채 도망치거나 숨어버린다. 이는 사랑을 받고 싶지만 줄 수 없는 현대인의 사랑의 갈증과 인간소외 현상을 보여준다.
<그녀>가 인공지능을 통해 이런 사랑의 모습에 질문을 던진 것처럼 <조> 역시 이 질문과 함께 감독 나름의 답을 제시한다. 이와 함께 드레이크 도리머스 감독은 본인의 스타일을 유지하며 안정적인 연출을 선보인다. 매 작품마다 서로의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설정한 편인데, 이번 작품 역시 인간과 로봇의 사랑, 서로가 이뤄질 확률이 0%라는 흥미로운 설정을 통해 사랑의 장애물을 보여준다.
여기에 특유의 몽환적이면서 서정적인 화면 구성, 그리고 감정의 깊이를 더해주는 음악은 멜로영화가 지닌 질적인 감성을 강화시킨다. 드레이크 도리머스 감독은 사랑이 범죄가 되는 <이퀄스>에 이어 다시 한 번 흥미로운 설정으로 미래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 영화를 완성시켰다. 그는 작품 안에 현대인들이 지닌 감정과 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담아내며 다시 한 번 깊은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