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 투더 아이돌> 포스터

<빽 투더 아이돌> 포스터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주의! 이 글은 영화 <빽 투더 아이돌>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과거와 비교해 최근 아이돌에 대한 문화적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과거의 아이돌은 10대 청소년들의 문화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요즘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좋아하는 아이돌 하나쯤은 있다. 전 세계에 한국을 대표하는 존재로 우뚝 서기도 했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아이돌 개념이 정착된 일본에는 '아이돌의 왕국'이라고 할 만큼 수많은 아이돌이 존재한다. 가네코 슈스케 감독의 영화 <빽 투더 아이돌>은 일본 아이돌의 현재와 과거를 조명한 작품이다. 
 
여대생 미유는 일본 최고의 아이돌 그룹 AKB48에 들어가는 게 소원이었지만 실패하고 언더그라운드 래퍼로 활동 중이다. 하지만 랩 배틀 결승에서 모욕적인 패배를 당하고, 원하는 꿈을 이루지 못한 자신의 처지에 낙담한다.

그런 그녀를 더 낙담시킨 건 집을 떠난 어머니다. 어머니는 마유와 아버지만 집에 남겨둔 채 떠나버린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버린 이유는 확고하다. 아버지가 2D 미소녀 캐릭터에 빠진 오타쿠이기 때문이다.
  
 <빽 투더 아이돌> 스틸컷

<빽 투더 아이돌>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2D 미소녀 캐릭터에만 흥미를 느끼고 이를 통해 사업을 번창시키려던 아버지는 실패한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질린 어머니는 집을 나가버린다. 낙담한 미유는 랩을 하며 방으로 들어가고, 랩 가사를 주문으로 잘못 알아들은 램프의 요정이 튀어나와 미유의 소원 세 가지를 이뤄주겠다 말한다. 미유가 소원을 말하지도 않았는데, 램프의 요정은 미유 마음속 소원을 듣고 그녀를 28년 전 과거로 보내버린다.
 
본인이 다니는 대학교에서 눈을 뜬 미유는 학교 미인대회에 출전한 아름다운 어머니 유미코와 지금과는 너무 다른 모습의 조각 미남 아버지 켄이치로를 만나게 된다. 유미코는 아이돌과 애니메이션 캐릭터만 좋아하는 켄이치로의 마음을 자신에게 향하게 하기 위해 미인대회에 출전하지만, 켄이치로는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된 유미코를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만약 두 사람의 사랑이 이뤄지지 않으면 미유는 미래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미유는 켄이치로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작전을 구상해낸다. 유미코를 학교 축제 때 아이돌로 만들어 켄이치로의 마음을 훔치는 것이다. 작전은 성공하고 미유는 다시 현재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그 현재는 이전과는 너무나도 다른, 최악이 되어버렸다. 미유의 실수로 과거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미유는 다시 유미코와 켄이치로 사이를 연결시키기 위해 교내 아이돌 프로젝트를 준비한다.
  
 <빽 투더 아이돌> 스틸컷

<빽 투더 아이돌>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영화 <빽 투더 아이돌>은 타임슬립을 주제로 한 로맨틱 코미디물에 아이돌이라는 소재를 결합한 작품이다. 여느 일본 코미디물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주는 여운과 깊이가 상당하다. 이 영화가 얼마나 아이돌이라는 소재를 조심스럽게 다루었는지 알 수 있는 지점이다.

이 영화는 세 가지 점에서 아이돌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준다. 첫 번째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아이돌의 조명이다. 1990년대는 일본 아이돌의 침체기로 1980년대 오냥코클럽의 성공 이후 마땅한 그룹이 나오지 못했다. 영화 속 과거는 1997년 모닝구 무스메가 등장하기 전까지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오냥코클럽은 음악 쪽 경험이 없는 여중고생들의 친근한 매력과 성장을 통해 발돋움했고, 모닝구 무스메 역시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힘과 친근함으로 인기를 얻었다. 이는 현재의 AKB48과도 연관되어 있다. 대규모 아이돌 그룹인 AKB48은 그룹 내에서의 성장 서사를 통해 인기를 끌었다.

이는 작품 속 미유가 유미코를 중심으로 기획하는, 원조 대규모 걸그룹으로 등장하는 ASG16 역시 마찬가지다. 여대생, 모델, 축구부 학생, 밴드 키보드 등 아이돌과 관련 없는 인물들이 뭉쳐 아이돌이 되어가는 과정은 과거와 현재 아이돌의 모습을 연결시키며 묘한 감정을 준다.
  
 <빽 투더 아이돌> 스틸컷

<빽 투더 아이돌>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두 번째는 아이돌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미유는 AKB48의 춤과 노래를 통해 유미코를 돋보이게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1990년대 단순했던 일본 아이돌 안무에 비해 현재의 AKB48의 안무와 노래는 동선도 복잡하고 노래도 어렵다. 이에 아이돌을 꿈꾸지도 않았고 힘든 훈련에 점점 지쳐가는 멤버들은 축제에서의 무대를 포기하려 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을 잊지 않는 건 아이돌이 지닌 의미 때문이다.
 
아이돌은 행복과 웃음을 주는 존재이다. 항상 웃는 얼굴로 무대에 서는 아이돌의 모습은 보는 이들마저 미소 짓게 만든다. 멤버들은 자신들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여태까지 한 노력과 춤과 노래의 즐거움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저 대학교 단위의 공연일 뿐이지만 이 한 번의 공연을 통해 행복해질 사람들을 위해 말이다. 이는 1990년대 버블경제 붕괴로 희망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행복을 전해줬다. 그리고 유미코는 사랑을, 미유는 꿈을 이룬다는 점에서 깊은 감동을 준다.
  
 <빽 투더 아이돌> 스틸컷

<빽 투더 아이돌>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세 번째는 아이돌과 팬의 자세에 대한 깊은 고찰이다. 과거로 온 미유는 미인대회 참가자들을 상품이라 말하는 사회자 우시오의 말에 기겁한다. 실제로 아이돌은 상품성으로 평가를 받으며 상품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신격화, 우상화되기도 한다. 감독은 그런 시각에 대해 주의를 기울인다. 아이돌에게도 삶이 있고 사랑이 있음을, 그리고 무대 위가 아닌 무대 아래에서 이루고 싶은 꿈도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현재 아이돌 시장에 대한 반성의 의미이기도 하다. AKB48의 지나친 내부경쟁과 실력보다는 쇼프로그램이나 악수회를 통해 팬층을 확보하려는 자세는 그룹 자체의 경쟁력을 갈수록 퇴보시켰다. 작품 속 ASG16은 좋은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 춤과 노래를 열심히 연습하고 시기와 질투가 아닌 서로 함께 해내자는 우정과 사랑의 자세를 보여준다. 가네코 슈스케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아이돌은 꿈과 행복을 파는 직업이 아닌, 함께 만들어 나가는 특별한 순간을 선물하는 존재임을 부각시킨다.
 
영화는 현재 일본 아이돌이 지닌 지나친 상업주의와 아이돌 개인의 상품화, 아이돌에게 지나친 순수함을 강요하는 분위기에 대해 비판한다. 여기에 유쾌한 코미디와 귀여운 사랑 이야기를 더해 아이돌과 사랑, 그리고 꿈을 적절하게 배합했다. 다소 오글거리게 느껴질 수 있는 코미디의 느낌을 아이돌이라는 주제에 대한 깊은 이해와 배려로 풀어낸 이 작품. <빽 투더 아이돌>은 세상의 모든 아이돌과 그 팬들에게 바치는 헌사라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빽 투더 아이돌 제23회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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