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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강: 5일 오후 4시 13분]

참으로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한국의 물 관련 정보들에는 터무니없는 오류들이 많다. 예를 들어 '한국은 UN이 정한 물부족 국가다'라거나, '한국인들은 물을 물 쓰듯 한다'거나, '한국의 물 값이 지나치게 싸다'거나 하는 따위다(관련기사: 실체 없는 '가뭄 타령', 정부는 왜 거짓말을 하나 http://omn.kr/i3l6).

조금만 자료를 찾거나 비교해도 쉽게 드러날 거짓말을 일부 국민은 상식이라고 알고 있다. 정부와 언론, 전문가들이 끊임없이 주입해온 결과다. 국민 탓만 하는 이들 논리가 횡행하니 정부는 가뭄이 들어도, 수질이 나빠도, 홍수가 나도 기승전 '시설투자'로 일관해 왔다. 

그동안 정부는 물 정책에 많은 예산을 써 왔다. 환경부가 생긴 이후 25년간 환경부 예산의 2/3가 물 분야였을 정도다. 하지만 그 기간 강의 수질은 개선되지 않았고 수돗물을 마시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댐, 제방, 정수장, 상하수 관로의 규모는 세계적인 성취를 이뤘는데 수돗물은 별로 개선되지 못했으며 물 환경은 더욱 나빠졌다.

그런데 이번 '붉은 수돗물 사태'에서 또다시 잘못된 방향이 등장하려고 한다. '노후관로 탓'이다. '녹물 수돗물의 원인이 노후 관로 탓이고 대책은 노후 관로 교체다'라는 주장이다. 국가가 노후 관로 교체를 외면해 왔던 것이 문제고, 노후 관로만 아니었으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는 기사들이다.

가뭄이 들어도, 수질이 나빠도, 기승전 '시설투자'
 
6월 27일 인천시 서구 청라동 한 아파트 유출부에서 채수 한 수돗물에 대한 탁도 및 잔류염소 검사가 진행되고 있다.
 6월 27일 인천시 서구 청라동 한 아파트 유출부에서 채수 한 수돗물에 대한 탁도 및 잔류염소 검사가 진행되고 있다.
ⓒ 인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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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살펴보자. 인천 서구의 녹물이, 서울 문래동의 녹물이, 노후 관로 탓인가? 사고가 난 인천 서구는 겨우 20년 된 신도시다. 서울의 문래동도 공급받는 수도 관로는 2005년에 설치된 것이다. 문래동 관로에 유입되기 전 단계 관로가 오래됐으나, 그 노후 관로를 통해 수돗물을 공급받은 지역 중 일부에서만 문제가 발생했다. 그런데도 노후 관로 탓일까? 

인천의 녹물 발생에 대해서는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6월 18일 기자회견에서 정확히 밝힌 바 있다.
 
"수계 전환 전  10시간 정도 (준비 시간이) 걸리는데, 10분 만에 밸브를 열어 압력을 2배까지 올리고 2~3시간 만에 물을 다른 방향으로 보냈다. 탁도 역시 충분히 예측 가능하고, 부유 물질을 빼내는 것도 대응 가능한데, 그 모든 것을 다 놓쳤다. 100% 인재라고 본다." 

대단한 원인이 있었던 게 아니라, 수계(수돗물 공급체계) 전환 과정에서 업무를 엉망으로 했다는 뜻이다. 특히 열흘 동안 아무런 수습도 못한 채, 시민들에게 수돗물이 기준을 충족한다고 거짓말을 한 게 본질이다. 게다가 시민들의 민원 전화를 받지 않거나 이리저리 돌리며 책임을 떠넘긴 것이 시민들의 분노를 폭발시킨 것이다.

인천 사고 후 20일 만에 발생한 서울 문래동 녹물 사태 대응이 전혀 진화하지 못한 것은 정말 안타깝다. 성급하게 수돗물의 수질이 안정화 됐다고 주장하고, 노후 관로 개선을 위해 727억 원을 추경으로 편성하고 올 해 내에 시작하겠다고 한 것도 스텝을 꼬이게 했다. 사실이 아니거나 대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서울시 문래동의 녹물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며 수질 측정치는 들쭉날쭉한다. 그런데 노후 관로가 문제라고 발표했으니 다른 이유를 찾는 것도 이상하고 다른 대책을 앞세울 수도 없게 됐다.

서울시는 아직도 문래동 일대의 수질을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원인과 대책을 논의하는 조사단 회의에는 주민들을 참여시키지 않고 있다. 이는 정보를 공개할 만큼 자신이 없는 상태고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기에는 미흡한 것이 많은 탓일 테다. 하지만 이렇게 감추고 숨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서울시도 그렇고 인천시도 그렇고 사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시민들은 아직도 생수로 음식을 하고 수돗물의 탁도를 시시각각 확인해야 하는 불편 속에서 살고 있다. 그제도 인천 서구 곳곳에서 녹물이 나온다는 방송이 나왔다. 사고 때 발생한 노폐물들이 수도 관로 속에 가득한 상태에서 이를 제거하지 못한 탓이다.

평소 수도관 관리 할 인력이 없는 게 문제

소화전이나 가정의 수도꼭지를 열어 물을 빼내고 있지만, 이들은 관로 속의 녹물 배제를 위해 만들어 놓은 장치가 아니다. 의당 수도 관로라면 있어야 할 이토(泥土, 관로 안에 쌓인 진흙) 밸브가 없는 탓이다. 이들을 설치하지도 않았고, 이를 운영해본 경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아예 관로의 세척이나 청소를 위한 계획이 없었으며, 설혹 이토 밸브를 설치하더라도 이를 개방했을 경우 나오는 물과 배제된 용수를 받아 낼 하수 관로를 어떻게 운영할지 모르고 있다.

20년 된 인천 서구 관로나 14년 된 문래동 관로나 단 한 번 세척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번 사고를 낸 근본 원인이다. 따라서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녹물은 또 나오게 되어 있다. 평소 관로 관리를 해서 노폐물을 제거하고, 이 업무를 무리없이 할 수 있도록 관리 인력을 준비하지 못한다면 문제는 재발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서울시가 사고 후 일부 구간에 이토 밸브를 부랴부랴 설치하고, 퇴수 작업을 시작한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할 정도다.  
 
박남춘 인천시장이 6월 23일 서구 공촌정수장을 방문해 수돗물 정상화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박남춘 인천시장이 6월 23일 서구 공촌정수장을 방문해 수돗물 정상화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 인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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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는 인천 사고 10일이 지날 때까지 현장에 접근하지도 못했다. 보름이 지난 서울시에 대해서는 아직도 사태 파악에 나서지도 않았다. 수십 만의 시민이 불안에 떨고 있는 상황에서 개입하지 못하거나 개입하지 않고 있는 환경부가 과연 인천시를 질책할 자격이 있는 걸까?

환경부의 이런 무기력과 무능은 지난 10년 이상 수돗물 정책을 포기하다시피한 관행의 결과다. 올 초까지 있었던 수도정책과의 주요 업무는 대구의 물산업클러스터(물산업공단) 조성이 주축이었고, 생수와 정수기 산업 육성 등이 또 주요 업무였다. 이렇게 수돗물 정책이 변방이다 보니, 지금 물이용계획과에는 수도 업무에 능통한, 아니 2년 이상 근무 경력이 있는 관료들을 찾아볼 수 없는 정도가 됐다.

필자가 노후 관로 교체 주장을 거칠게 비판한 것은 사태의 본질을 왜곡하고 대책 마련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전국의 수도 관로는 무려 20만 9000km이고, 20년이 넘은 관로는 6만 8000km에 달한다. 이를 교체하려면 수십 조의 예산이 들 뿐더러 공사하면서 겪는 불편 등을 감안할 경우 이걸 실제로 진행한다면 대규모 재앙에 해당될 것이다. 단순히 재정 뿐만아니라 시민 생활에 혼란을 일으키기에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수도관로의 대규모 교체 주장은 전혀 현실성이 없으며 결국 수돗물 불신으로 이어지게 할 것이다. 또 지나치게 어려운 원인과 대책 때문이었다면서 사고 책임자들에 대한 책임을 덜어주게 될 것이다. 

노후 관로를 교체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이번 사태와 노후 관로가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니 논점을 이탈하지 말자는 것이다. 노후 관로라는 개념이 어디 법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일본은 40년, 미국은 75년, 영국·캐나다는 100년을 쓰는데, 한국에선 20년 이상 쓰고 있어서 문제라는 건 과잉이다. 특히 수돗물을 처음 만들어 쓴 로마의 관로는 2000년이 된 것도 있고, 로마시대에 만든 수도꼭지 중 960개는 아직도 사용 중이다.

서울시까지 엉뚱한 길로 들어서... 환경부라도 제 역할 찾기를
 
박원순 서울시장이 6월 21일 새벽 '붉은 수돗물'이 나온 영등포구 문래동을 긴급 방문해 관계자에게 철저한 조치를 당부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6월 21일 새벽 "붉은 수돗물"이 나온 영등포구 문래동을 긴급 방문해 관계자에게 철저한 조치를 당부하고 있다.
ⓒ 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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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돗물 정책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조금 어려운 영역이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첨단기술이거나 심각하게 복잡한 산업이 아니다. 전문가들이나 정부가 독점할 일이 아닌데도 자기들끼리 속닥여가면서 성급히 대책을 내놓는다. 이는 국민의 불안과 불만을 해소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를 차분히 진단하고, 국민의 도움을 얻어가며 풀어야지, 갑자기 무슨 비법이나 있는 것처럼 해서는 안 된다. 

거듭 말하지만 이번 사고는 관리 인력의 역량 부족이 발단이고, 사태 처리 능력의 부재가 일을 키운 것이다. 문제는 시설이 아니고 돈도 아니다. 사람을 키우지 못했고, 체계를 정비하지 못했으며, 시민과 동떨어진 정책을 펼쳐 온 것이 문제다.

논리적으로 진지하게 토론하고 대책을 세우자.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시민들이 참여하는 속에서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짚어보자. 관리 인력의 전문성을 높이고, 관리 매뉴얼을 정비하며, 시민과의 소통체계를 개량하자. 그리고 관로와 정수장 등의 문제까지 살펴보자.

서울시까지 엉뚱한 길로 들어선 지금 환경부라도 제 역할을 찾기를 바란다. 전국적인 조사를 통해 서울과 인천과 같은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조사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수십년간 비뚤어진 수도 정책을 다시 세우기 위해 너무 성급하게 진단하고 대책을 내놓는 일을 참자. 진지하게 논의하고 책임 있게 대책을 낼 정부 기구를 구성해 운영했으면 한다. 그리고 노후 관로 교체만 강조하고픈 이들은 빠져주셨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염형철 기자는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수돗물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입니다.


태그:#수돗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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