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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4일 강원도 고성에서 산불이 났다.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주택 565채가 불에 탔고, 1132명이 졸지에 이재민이 됐다. 7월 13일은 산불이 일어나고 꼭 100일째 되는 날. 숫자에 드러나지 않는 천진초등학교 대피소 사람들 이야기를 담아봤다.[편집자말]
 
천진초 대피소 안에서 이재민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천진초 대피소 안에서 이재민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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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30일 오후 천진초 대피소 안.

"언니, 언니, 언니, 이거 좀 봐봐 이거. 전국재해구호협회하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방금 국민 성금으로 3천 만원이 통장으로 들어 왔어. 언니도 얼른 확인해 봐."
"뭐? 돈이 들어왔다고? 아이고 세상에... 응응, 그래 그래, 지금 가 보자."
"뭐라고? 뭐가 들어와?"

국민 성금이 나왔다는 말에 대피소가 순식간에 술렁였다. 대부분의 천진초 이재민들은 황급히 지갑을 챙겨 가까운 농협 ATM 기계로 가 줄줄이 통장을 확인했다. 4월 30일은 국민 성금이 이재민들에게 1차 지급된 날이었다. 집이 모두 불에 탄 '전파자'가 대부분인 천진초 사람들은 이날 계좌이체로 3천만 원씩을 받았다. 연이어 대피소로 돌아오는 이재민들의 표정이 모처럼 밝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정부 지원금이 아직 지급되지 않은 상태였다. 대피소 곳곳에서 당장 굶어 죽진 않겠다며 한 시름 놓겠다는 말들이 들려왔다.

이번 화재로 걷힌 국민 성금은 약 560억 원 정도다. 성금과 별도로 정부가 당초 약속했던 주거 복구비 등의 보상은 6월초에 비로소 집행됐다. 전파자의 경우 국민 성금 3천만 원을 포함해 총 6300만 원 정도가 지급됐다.

그러나 같은 시각, 대피소 한 쪽 구석엔 주변 사람들과 함께 웃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다.

세입자
  
고성 산불 이재민 임(72, 여)씨가 불에 탄 집이 철거되는 장면을 쳐다보고 있다.
 고성 산불 이재민 임(72, 여)씨가 불에 탄 집이 철거되는 장면을 쳐다보고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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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진 똑같은 이재민인 줄 알았어. 근데 그게 아니야. 집 없는 사람은 이재민도 아닌 거야."
 

대피소 오른쪽 뒤쪽 가장자리에 나란히 붙은 텐트의 이씨(62, 남)와 임씨(72, 여)였다. 세입자 이재민들이다.

늘상 주변 이재민들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곤 하던 둘은 그날따라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서로에게만 들리는 작은 목소리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린 오늘 돈 안 나왔어. 나와도 천 만원만 나올 거래. 이게 말이 돼? 똑같이 불 나고 똑같이 집이 다 탔는데 집 주인들은 3천만 원씩 받고 세입자는 천만 원만 받는다는 게? 해도 해도 너무해. 우리더러 나가 죽으라는 거야."

임씨가 말했다. 평소 활발한 성격에 "같은 처지가 된 사람들이 24시간 대피소에 붙어 있으니 만난 지 얼마 안 됐어도 한 식구 같다"던 임씨였다.

과묵한 이씨도 화를 내며 맞장구를 쳤다.

"더러워서 내가 정말... 솔직한 얘기로 국민 성금은 말 그대로 국민들이 보내온 돈이야. 그걸 왜 차별해서 주느냐고. 도대체 말이 안 되잖아."

이씨는 그와 잘 지내던 다른 이재민을 언급하기도 했다.

"무허가 집에 살던 저쪽 사람도 똑같이 전파자로 분류돼서 돈을 받더만. 그렇게 따지면 그 사람이나 우리 세입자들이랑 뭐가 다르냐고. 우리도 집이 전파됐는데, 전파자가 아니라 세입자래. 참나 이게 무슨 개소리야."

뒤늦게 3천만 원 입금된 걸 확인하고 온 한 집주인 이재민이 가까이 다가오자 이씨와 임씨의 대화가 갑자기 중단됐다. 이씨, 임씨 모두와 친했던 그 이재민도 뭔가 눈치를 챈 듯했다. 셋 사이엔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견디기 어려운 균열의 순간. 4월 30일을 계기로 천진초 이재민 중 누가 세입자인지 뚜렷하게 구별됐다.

천진초엔 모두 3명의 세입자가 있었다. 그날부터 대피소에서 성금 얘기가 나오면 세입자가 포함된 자리의 대화는 툭툭 끊기기 일쑤였다. 국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성금이 본의 아니게 천진초 이재민들을 갈라놓고 있었다. 세입자들은 집주인 전파자들이 성금을 받은 것보다 10일 정도 뒤인 5월 10일께가 돼서야 국민 성금 천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이재민이 뚜렷이 구별된 날, 4월 30일  
 
천진초 이재민 이(62, 남)씨. 그는 세입자였다.
 천진초 이재민 이(62, 남)씨. 그는 세입자였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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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 이재민인 임씨와 이씨는 모두 서울 출신이었다. 임씨는 서울 동대문에서 잡화점을 하다가 8년 전 고성으로 귀농했다. 임씨는 치매 환자였던 남편과 작년 여름 사별했다고 했다. 지난 5월 9일 오전, 봉포리의 불에 탄 집이 포크레인 한 대에 힘없이 철거되는 모습을 지켜보던 임씨가 표정도 없이 말했다.

"얼마 전에 이재민 비상대책위원회가 천진초에 들렀는데 세입자 얘긴 쏙 빼놓고 전파된 사람들한테만 대책 설명을 하고 가는 거야. 내가 참다 참다 화가 나서 세입자는 사람도 아니냐고 마구 소리를 질렀지. 대피소에서 지내면서 다 같은 이재민들인 줄 알았더만 그게 아니었던 거야. 집 없는 사람은 여기 안에서 또 차별 당하는 거라고. 세입자가 숫자라도 많으면 모르겠는데... 대피소 사람들도 죄다 전파자니까 전파자들 위주로만 돌아가는 거야."

이번 화재로 발생한 주택 피해자는 총 550가구가 넘었고, 이중 세입자는 150가구가 채 안 됐다. 지금껏 누구보다 대피소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던 임씨의 얼굴이 복잡해 보였다.

임씨 바로 옆 텐트에 사는 이씨는 고성에 온 지 아직 1년도 안 된 '신입'이었다. 서울 을지로에서 인쇄소 사업을 했었다는 이씨는 외상으로 인쇄를 해주던 업체가 부도가 나면서 자기가 운영하던 인쇄소도 함께 망했다고 했다. 그 이후 원주에서 농사일을 배우다 고성으로 온 이씨는 혼자였고 무직 상태였다. 그는 나이 육십이 넘으니 경비 일이나 노가다 일 구하기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부리부리한 눈매가 날카로운 이씨는 세입자 수가 전파자 수보다 많았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며 임씨 말을 이어받았다. 그는 임씨보다 더 깊이 체념한 듯 보였다.

"세입자 아닌 사람들이 뭘 알겠어. 정치인? 공무원? 그런 놈들이 뭘 알아? 대가리 뚜껑 열어보면 먹물만 가득 들어찼겠지. 세입자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뭐가 필요할 지 생각이나 해 봤겠어? 약하니까 무시하고 사람 수 적으니까 무시하는 거지. 우리나라가 다 그렇지 뭐. 기대도 안 해 나는."
 
고성 산불 이재민 임(72, 여)씨가 불에 탄 집이 철거되는 장면을 쳐다보고 있다.
 고성 산불 이재민 임(72, 여)씨가 불에 탄 집이 철거되는 장면을 쳐다보고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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