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7일 문무일 검찰총장의 후임으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명했다. 당초 신임 검찰총장 하마평에 오르내리던 인사들은 윤 후보자를 포함해 7~8명 내외였다. 이들 대부분이 윤 후보자(사법연수원 23기)보다 기수가 높다. 수직적 서열 문화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검찰 조직의 생리를 감안하면 파격적 인사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문 대통령이 윤 후보자를 발탁한 이유는 무엇일까.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을 주목해 보자. 고 대변인은 이날 "윤석열 후보자는 검찰에 재직하는 동안 부정부패 척결과 권력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강직함을 보여줬다"라며 "특히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탁월한 지도력과 개혁 의지로 국정농단과 적폐청산 수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검찰 내부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두터운 신망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핵심은 그 다음이다. 고 대변인은 "윤 후보자가 아직 우리 사회에 남은 각종 부정부패를 뿌리뽑을 뿐만 아니라 검찰 개혁과 조직쇄신 과제도 훌륭히 완수할 것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문 대통령이 윤 후보자를 차기 검찰총장으로 낙점한 이유가 '적폐 청산'과 '검찰 개혁'에 있음을 시사해 준다.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에서 보여준 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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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총장 지명된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17일 오전 서초동 청사에서 나와 승용차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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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대변인의 설명처럼 윤 후보자는 시민들의 두터운 신망을 받고 있는 몇 안 되는 검찰 인사 중 하나다. 윤 후보자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진 건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지난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의 수사팀장을 맡으면서다.

당시 그는 국정원 직원 체포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공소장 변경 과정에서 검찰 지휘부와 마찰을 빚으며 화제가 됐다. 윤 후보자의 모습은 상명하복을 지고지순(至高至純)의 철칙으로 여겨오던 검찰의 행태와는 달라도 많이 달랐다.

그해 10월 21일 열린 국회 법사위원회의 서울 고검 국정감사 자리에서 윤 후보자(당시 여주지청장)는 시쳇말로 '대박'을 쳤다. 국정원 직원의 체포와 공소장 변경 신청 등에 대해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에 보고했다며 국정원 수사에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한 것이다. 

특히 윤 후보자는 수사 외압 대상에 황교안 법무부 장관도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본다"고 대답해 국감장을 술렁이게 만들기도 했다.

윤 후보자의 외압 폭로에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은 고성과 막말을 동반해 격렬하게 대응했다. 당시 정갑윤 새누리당 의원은 "검찰은 하다못해 세간의 조폭보다 못한 조직이다"라며 "사람에 충성하는 것 아니냐"라고 윤 후보자를 거칠게 몰아세웠다. 그런데 이에 대한 윤 후보자의 대답이 걸작이다.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습니다." 

'윤석열'이라는 이름이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시민들은 윤 후보자의 강단과 소신에 환호를 보냈고, 뜨겁게 호응했다. 권력의 입김에 고개 숙이지 않는 검사다운 패기와 열정, 소신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는 시련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소신있고 강단있는 검사로 시민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던 윤 후보자는 이후 한직으로 여겨지는 대구고검, 대전고검 등으로 밀려나게 된다.

윤 후보자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상규명을 위해 출범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팀장을 맡으면서 다시 주목을 받는다. 그는 국정 농단 사건에 연루된 인사들을 수사하며, 부정부패 척결을 요구하는 시민의 기대에 부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는 서울중앙지검장에 오르며 완벽하게 재기에 성공했다.

서울중앙지검장 재임 기간에도 윤 후보자는 다스(DAS) 의혹과 관련해 이명박 전 대통령을 구속기소했고, 사법농단 의혹의 최정점에 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구속기소하는 등 적폐 수사를 무리없이 지휘하며 리더십과 인지도를 높였다.

문 대통령이 당초 후보군에 이름이 올라있던 인사들보다 몇 기수나 아래인 윤 후보자를 검찰수장으로 내정한 것도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성품과 부정부패 수사 의지를 높이 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공언해온 검찰 개혁과 적폐 청산의 과제를 막힘없이 추진할 적임자라 판단한 것이다.

검찰에 대한 불신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동안 검찰이 정권과 결탁해 각종 권력형 비리를 묵인하고 방조해온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가 벅찰 정도다. 

조직 이기주의와 보호 논리도 여전하다. 최근만 해도 검찰은 김학의 사건을 재수사하면서 또다시 제식구 감싸기로 일관해 시민들의 공분을 샀다. 검찰은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검경수사권 조정과 관련해서도 정부 방침에 반기를 들고 있는 상황이다.

세대교체 통해 검찰 내부 인적쇄신 이뤄질까?

문 대통령이 윤 후보자를 선택한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윤 후보자가 검찰총장에 오르게 되면 그동안의 관행으로 미루어 그보다 기수가 높은 선배 및 동기들은 물러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런 세대교체를 통해 검찰 내부의 인적쇄신이 가능해진다. 

고위공직자 비리 및 부정부패 수사 역시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수구보수세력은 정부의 적폐청산 의지를 '전 정권 죽이기'로 규정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천부당만부당한 얘기다. 적폐청산은 수십 년간 쌓여온 이 사회의 썩은 환부를 도려내는 시대적 과제이자 사명이다. 1700만 개의 촛불이 켜졌던 기저에는 사회대개혁을 갈망하는 시민의 염원이 녹아있다.

많은 이들이 '윤석열'이라는 이름에 주목하는 이유일 터다. 윤 후보자의 원칙과 소신은 이미 국정원 사건을 비롯해 국정농단·사법농단 사건 수사에서 그 진면목이 드러난 바 있다. 검찰에 대한 극단적인 불신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이 윤 후보자를 향해 뜨거운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물론 윤 후보자가 시민의 기대와 바람에 부응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후보자 시절 적폐 수사와 검찰 개혁의 적임자라 평가받던 문 총장도 조직보호의 논리를 비켜가지는 못했다. 그는 검경수사권 조정 문제로 정부와 이견을 빚으며 검찰 내부의 반발 기류를 스스로 보여준 바 있다.

윤 후보자 역시 조직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국감 당시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명언과 함께 "조직을 사랑한다"는 말도 남겼다. 조직보호 논리의 시발점이기도 한 이 말은 검찰 개혁과 혁신의 대척점에 놓여 있다. 이 논리가 발동된다면 많은 이들이 기대하는 검찰 개혁은 한낱 미몽(迷夢)으로 끝나게 된다. 

윤 후보자가 아직까지 검찰 개혁과 관련해 뚜렷한 입장을 표명한 적이 없다는 점도 걸리는 부분이다.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에도 윤 후보자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라면서도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에 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는 "앞으로 차차 여러분께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윤 후보자를 향한 시민들의 지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높다. 문 대통령이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로 윤 후보자를 지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SNS를 중심으로 지지와 성원이 잇따르고 있다. 시민들은 검찰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나타내면서도 윤 후보자가 조직을 근본적으로 개혁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뜨겁게 표출되는 시민들의 열망은 검찰개혁의 당위를 드러내 주는 방증이다.

윤 후보자가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부분일 터다. 보수야권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는 가운데에서도 자신을 선택한 문 대통령과 시민의 기대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실추된 검찰의 위상과 신뢰를 바로 세우기 위해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어쩌면 이번이 검찰 개혁을 위한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검찰 불신의 시대, '윤석열'이라는 이름 석자가 갖는 의미와 상징성을 떠올린다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