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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제64회 현충일 추념사를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제64회 현충일 추념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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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 논란이 거세다. 추념사에서 무장 항일독립투쟁가였던 약산 김원봉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은 월북해 북한의 고위직을 지낸 김원봉을 현충일 추념사에서 언급했다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비판했고, 청와대는 이념과 정파를 뛰어넘어 통합을 강조한 취지라고 대응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념사에서 가장 강조한 것도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가 없다'며 진영 논리를 걷어내고 좌우통합을 이루자는 메시지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통합의 사례로 해방 직전 임시정부의 좌우합작과 거기에서 이어진 광복군 창설을 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광복군이 한국군의 뿌리라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견지해왔다.

2017년 8월 국방부에 광복군을 한국군 역사로 편입시키는 노력을 권했고, 같은 해 12월 방중 당시 중국 충칭의 광복군 총사령부 건물 복원을 합의했다. 올해 3월 복원은 마무리됐다. 한국전쟁 시 38선 돌파를 기념해 10월 1일이 국군의 날이 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설일인 9월 17일로 바꾸자는 논의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3.1운동의 정신이 대한민국의 뿌리임을 강조해 왔듯 광복군 강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독립정신을 뿌리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대한민국 수립 과정에서 제대로 청산되지 못했던 친일 잔재 때문이다.

지난 3.1운동 100주년 연설문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일제가 모든 독립운동가에게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었음을 예로 들면서, '색깔론'이야말로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라고 말한 바 있다. '색깔론'이 변형되어 이어지면서 민간인 학살과 간첩조작, 민주화운동의 탄압 등으로 이어졌다는 취지였다.

한국군의 역사 역시 '색깔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30여 년간의 군사 독재 시기는 '빨갱이 때려잡자'는 구호가 통용되는 시기였다. '빨갱이'는 극렬 공산주의자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제주4.3과 5.18민주항쟁이 대표적 사례다. 국가의 부당함에 저항하는 어떤 사람이라도 '빨갱이'로 낙인찍혔다. 한국군은 '빨갱이'를 때려잡는 대표적인 집단이었다. 민주화 이후 최근의 사례인 군에 의한 세월호 유가족 사찰이라든가 촛불 당시 계엄을 검토했다는 모습을 봐도 그 '색깔론'의 뿌리는 쉬이 사라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광복군을 국군의 뿌리로 삼겠다는 것은, 한국군이 더 이상 위와 같은 역사를 되풀이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군 창설은 대한민국 단독정부 수립이 그랬듯이 그 시작부터 이미 '색깔론'에 물들어 있었다. 

해방 직후 입국한 광복군을 비롯해 일본군, 만주군 출신 군인들은 자생적으로 군사 단체를 만들어 건군 운동을 주도하고자 했다. 하지만 남한을 점령한 미군정은 38선 이남에서 미군정이 인정한 단체 외의 군사 행동을 엄격히 금지했고, 미군정 주도 하에 한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가 창설되었다. 거기에는 광복군 출신도 있었지만, 일본군과 만주군 출신의 장교들이 대거 고위직을 꿰찼다. 이후 단독정부 수립 후에도 이러한 인선의 성격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국방경비대 초기의 모병 과정에서는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했기에 좌우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정치적 성향의 인원이 입대했지만, 1947년 남한만의 단독선거가 확실해질 즈음에는 단정과 단선을 반대하는 인원에 대해 사상검증을 통해 숙청하는, '숙군' 작업이 이뤄지기 시작했다(노영기 <1945-50년 한국군의 형성과 성격>, 2008, 134-140쪽). 

익히 알다시피 '숙군'은 군대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제주4.3은 단독정부와 단독선거 반대를 주창한 국민들을 탄압한 사건이었고, 여순사건 또한 제주도 파병뿐 아니라 숙군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여순사건을 거치며, 반공으로 노골화된 '숙군'의 근거로서의 '색깔론'은 정부에 반대하는 이들을 국민에서 배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다.

이러한 역사를 청산하는데 있어 동반되어야 할 것은 뿌리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선언뿐 아니라 과거의 잘못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와 반성, 후속조치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방부가 70년 만에 최초로 4.3에 대해 사과하고.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여순사건 재심을 확정하는 등 과거사 청산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로 읽힌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념사에서 한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가 없다'는 말이 단순히 좌우의 기계적인 통합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에는 과거 국가를 위해 희생한, 그리고 국가에 의해 희생당한 모든 죽음 앞에서 좌우를 가리지 않고 추모와 청산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조금 더 나아간다면 과거 국가가 저지른 죄과를 돌아보며 국가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묻고, 국가의 의미를 재정의하는 모든 과정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동반되어야만 국군의 뿌리가 광복군이라는 선언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의 뉴스레터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과거 청산, ##한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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