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글에는 영화 <기생충>의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기생충>.

영화 <기생충>. ⓒ CJ 엔터테인먼트


일언지하 가족과는 함께 볼 영화는 아니라고 했다. 군데군데 선정적이고 비위 상하는 장면이 있어 어린 아이들에겐 특히 '비추'라고 했다. 올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라고 해서 본 건데, 역시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며 깎아내리기도 했다.

영화 <기생충>을 미리 본 지인들의 반응은 대개 이랬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올해 최고의 작품이라 평가했다지만, 되레 전문가들이 추천한 영화는 늘 그랬다면서 다들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아끼고 아끼다 개봉한 지 일주일만인 어제(6일)서야 봤다.

아직 보지 않은 이들을 위해 미리 밝혀둘 게 있다. 이 글은 '리뷰'라기보다 차라리 '대본'에 가깝다. 그저 그런 '스포일러'라는 표현 정도로는 독자들에게 용서받을 수 없을 것 같다. 글을 시작하려니, 장면과 소품 하나하나를 죄다 언급해야 할 것 같아서다.

감독이 영화를 제작한 의도도 분명 있겠고, 내로라는 영화 평론가들의 냉철한 분석도 있을 테지만, 영화 <기생충>을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문외한의 어설픈 영화평일지언정, 문학이든 영화든 일단 시장에 나오면 그 다음은 독자와 관람객의 몫일 테니 너무 노여워 마시길 바란다. 해몽은 자유다.

최근 우리 사회가 겪었던 사건들이 연상되다
 
 영화 <기생충> 스틸컷

영화 <기생충> 스틸컷 ⓒ CJ 엔터테인먼트


러닝 타임은 고작 두 시간 남짓인데, 한꺼번에 너무 많은 걸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아 약간 부담스러웠다. 좋게 말하면 '반전'이고, 나쁘게 말하면 '억지'쯤 될 텐데, 복선을 찾기 힘든 장면이 너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최근 우리 사회의 모순과 겪었던 사건들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이점도 있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본다. 박 사장(이선균 분)과 사모님(조여정 분)의 러브신에서 대사로 깜짝 등장하는 '마약'은 최근 강남 상류층의 '버닝 썬' 스캔들을 은근슬쩍 꼬집는 듯하다. 또, 명문대 재학증명서를 위조하는 장면을 통해 우리 사회의 온존한 학벌구조를 조롱한다.

그래봐야 부자의 마름 신세일 뿐이지만, 그들의 삶 근처에라도 가보려면 명문대 학위 정도는 필요하다는 암시다. 더욱이 과외 선생을 검증한답시고 시카고와 일리노이 등 미국의 지명이 등장하는 장면에선 우리 학계의 오랜 식민지 근성을 고발한다. 물론, 식상하리만큼 익숙한 장면이긴 하다.

박 사장의 대저택 지하실의 등장은 관객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영화 속 가장 큰 반전이랄 수 있다. '갑툭튀'인 이 설정을 통해 극심한 양극화와 부의 대물림이 군사독재정권시절 비롯된 것임을 보여주려는 걸까. 당시 지어진 부잣집들은 북한군의 공습을 피하기 위한 방공호 시설을 갖췄다는 대사를 슬쩍 흘리고 있다.

얄궂게도 영화 속 대저택 지하실은 북한군 공습이 아닌, 사채 빚에 쫓기거나 범죄를 저지른 최하층 빈민들의 피난처로 쓰인다. 우리 사회가 북한군의 침공이 아니라, 극심한 양극화로 인한 내부 모순에 의해 붕괴될 수 있다는 메타포다. 북핵 못지않게 경제적 양극화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일침 같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공권력과 기득권층

영화가 끝날 무렵엔 미란다의 원칙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경찰과 어눌한 의사가 등장한다. 내용 상 분명 사족 같은 장면인데도, 굳이 끼워 넣은 이유는 병실에 누워 그들을 마음껏 조롱하는 기우의 모습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무능하고 무기력한 공권력과 기득권층을 상징한다.

영화 속 주인공이야 기택(송강호 분)과 박 사장의 가족들이지만, 주제와 감독의 의도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다. 바로 기우가 절친 민혁(박서준 분)으로부터 선물로 받았고, 나중엔 제 발등을 찍게 만드는 '수석'이다. 말하지 않는 '수석'과 관객의 대화가 곧 영화의 처음이자 끝이다.

대저택의 정원과 겹치는 이 '수석'은 기택의 가족에게 복, 곧 돈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불행, 곧 재난을 몰고 오기도 하는 '성물'이다. 언뜻 주술적 요소를 가미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마저도 우리 사회의 이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기택의 가족이 부자에게 철저히 기생하게 됨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한편, 이 '수석'은 천박한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소품이기도 하다. 의미도 모르면서 귀한 물건이라며 으스대는, 우리 사회의 과시적 소비 행태를 꼬집는다. 선물 받은 기우와 기택이 상기된 얼굴로 호들갑을 떨 때, 기택의 아내가 "차라리 먹을 걸 주지"라고 말하는 솔직함이 대비된다.

영화 <기생충>은 비극이다
 
 영화 <기생충> 스틸컷

영화 <기생충> 스틸컷 ⓒ CJ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우리 사회의 극심한 경제적 양극화에 대한 이야기다. 비참한 현실을 자체로 예술품인 대저택과 반지하방으로 나눠 단도직입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하지만 관객들의 선한 바람과는 달리, 둘은 교체되거나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라는 점을 퉁명스럽게 결론지으며 자막이 올라가고 만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동일한 까닭이다. 반지하방에 널어놓은, 보기만 해도 꿉꿉한 양말 빨래. 방바닥보다 높게 설치돼 있는 변기와 피자박스, 시중에서 가장 값싼 캔 맥주 등과 함께 찢어지는 가난을 상징하는 소품으로,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다.

그런 점에서 영화 <기생충>은 비극이다. 명문대생 친구의 도움으로 케빈 선생님이 된 기우(최우식 분)가 돈을 많이 벌어 대저택을 사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는 결국 온가족이 기생충처럼 부자에 빌붙어 살면서 체득한 인생관인 셈이다.

사실 기택의 가족이 잠시나마 누리게 된 부와 행복은 비슷하거나 더 열악한 처지의 약자를 밀어내고 얻어낸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 주어지는 급여는 박 사장의 가족에게는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 '푼돈'에 불과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 이른바 '노노 갈등'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는 박 사장이 입버릇처럼 되뇌는 '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에서도 알 수 있다. 이는 하류층이 중산층까지는 몰라도, 기득권층으로의 편입은 불가하다는 선언이다. 곧, '선'이란 우리 사회 극소수 지배층과 다수 피지배층의 경계선이며, 누구 말마따나 '사다리를 걷어차는' 행위다.

온갖 협잡으로 멀쩡한 운전기사가 해고되고, 가정부가 쫓겨나면서 일찌감치 해피엔딩은 물 건너갔다. 죄다 기생충인 기택의 가족과 숙주인 박 사장의 가족 사이에 유일한 연결고리는 기우와 다혜(현승민 분)뿐이다. 그들은 파국으로 치닫는 결말 속에 그나마 '다행스러운' 장면을 보여준다.

영화의 비극적 결말은 감독이 우리 사회에 보내는 위험 신호다. 내쫓긴 가정부의 남편이 이마를 찧어가며 지하에서 지상으로 내보내는 '모스 부호'는 우리 사회 하류층의 생존을 위한 절박한 구호 요청을 상징한다. 영화 속 파국을 예언하는 복선이며, 제작 의도를 뚜렷하게 드러내주는 핵심 제재다.

'모스 부호'는 전등의 깜빡임을 통해 전달되지만, 박 사장의 가족은 그저 전등이 고장 난 것이라고 치부하며 외면하고 만다. 단추를 누르는 이마에선 연신 피가 흘러내리고 임계점을 향해 치닫는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경제적 양극화가 임계점에 다가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학교에서 아직 못 본 아이들이 있다면, '강추'할 생각

요컨대, 가족이나 아이들과 함께 보기에 불편한 영화 맞다. 복선이 부족해 사건들이 연결되지 않아 전체적인 내용이 어수선한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영화를 통해 극심한 경제적 양극화라는 '그다지 새삼스럽지 않은' 우리 사회 내부의 모순을 다시금 직시하게 만든다는 것.

이제 관객인 우리가 영화의 문제 제기에 답할 차례다. 영화관을 나오며 작품성과 오락성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평가를 내리기에 앞서, 영화가 꼬집는 모순된 현실에 당장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성찰해야하지 않을까. 모르긴 해도, 칸영화제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학교에서 아직 못 본 아이들이 있다면, '강추'할 생각이다. 적어도 경제적 양극화라는 화두를 아이들의 각인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영화라고 믿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사회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능력이다. 참고로, 이 영화는 15세 이상 관람이 가능하다.
기생충 경제적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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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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