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KIA 타이거즈 불펜진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올 시즌 초반 KIA는 최악의 출발을 보였다. 투타 동반부진 속에 연패가 이어지며 일찌감치 하위권으로 떨어졌고 반등의 기미조차 안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시즌을 포기하고 리빌딩 체제로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일찌감치 터져 나오기도 했다. 결국 김기태 감독, 이대진 투수코치의 중도 하차로까지 이어졌고 현재는 박흥식 감독대행, 서재응 투수코치 체제로 개편된 상태다.

놀라운 일은 이후 벌어졌다. 박 감독대행 이후 KIA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상승세를 타고 있다. 15경기에서 11승 4패의 호성적을 거두며 중위권 판도의 복병으로 부상하고 있는 모습이다. 전임감독의 사퇴가 선수단 전체의 위기의식으로 이어졌고 다시금 각성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박 감독대행도 어수선한 분위기를 빠르게 수습하며 좋은 지도자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상승세의 비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살아난 투수력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많다. 타격이 주춤거리며 경기가 풀리지 않는 날도 있지만 패하더라도 큰 점수 차로 지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는 등 마운드 싸움에서는 어느 팀에도 밀리지 않고 있다. 해당 기간 동안 KIA를 상대하는 팀들은 점수를 뽑아내기 여간 버거워하는 모습이다.

되살아난 에이스 양현종과 외국인투수 제이콥 터너가 좌우 원투펀치로 선발진을 이끄는 가운데 불펜진의 약진이 눈에 띈다. 특히 하준영(20), 전상현(23), 차명진(24), 이민우(26), 박준표(27), 문경찬(27), 이준영(27), 임기준(28), 고영창(30) 등으로 구성된 불펜진 활약은 눈부실 정도다.

고영창을 제외한 전원이 20대인지라 타팀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선발 불펜 모두 가능한 한승혁(26), 임기영(26)도 컴백 시기를 조율 중이다. 우완, 좌완, 사이드암 등 구색도 잘 갖춰진 상태다.

하준영을 제외하고는 모두 군복무를 마쳤다.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기존 마무리 김윤동의 빈자리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넘쳐나는 젊은 투수진이 펼칠 선의의 경쟁이 기대된다. 임창용, 김광수, 최영필 등 노장들에게 불펜을 의지하던 게 얼마 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환골탈태' 수준이다.
 
 KIA 타이거즈 새로운 마무리 투수 문경찬의 최대 무기는 '자신감'이다.

KIA 타이거즈 새로운 마무리 투수 문경찬의 최대 무기는 '자신감'이다. ⓒ KIA 타이거즈

 
평지풍파 가득한 KIA 불펜 잔혹사
 
젊은 불펜진 중 최근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투수는 단연 우완 투수 문경찬이다. 타이거즈는 KIA로 팀명이 바뀐 이후 늘 불펜 불안에 시달려왔다. 선동렬, 임창용 등 역대급 소방수들을 거느렸던 해태시절이 무색할 만큼, 지독한 방화 걱정에 시달렸다. 좋은 성적을 올렸던 시즌에도 소수 불펜 투수의 활약에 의지했을 뿐 전체적으로 뒷문 문제는 KIA의 풀리지 않는 과제였다.

오봉옥, 이강철, 박충식, 최향남, 최영필, 임창용 등 전성기가 지난 노장들에게 의지한 것을 비롯 다니엘 리오스, 김진우, 앤서니 르루 등 선발자원의 마무리 변신 등 다양한 시도를 거듭했다. 그럼에도 마무리 때문에 웃은 날보다는 울었던 날이 훨씬 더 많았다. 검증된 외부자원 진필중, 김세현 영입을 비롯 외국인투수를 전문 마무리 자원인 자이로 아센시오를 데려오기도 했다. 그야말로 '뒷문과의 전쟁'이었다.

'광주댐'으로 불리던 시절의 윤석민, 몸이 망가지기 전 광속구를 뿌려대던 한기주, 믿을 만한 불펜투수가 많지 않던 상황에서 선발, 중간, 소방수 등 시도 때도 없이 등판하던 신용운 등은 불안한 KIA불펜의 기둥과도 같은 선수들이었다. 09년 우승 당시에는 손영민-곽정철-유동훈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SKY 라인'이 맹위를 떨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같은 빼어난 불펜자원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으며 이런저런 이유로 대부분 활약 시기를 길게 가져가지 못했다. 무엇보다 쓸 만한 불펜층이 얇은 관계로 과부화 논란 속에서 혹사로 인한 데미지를 피할 수 없었다는 점이 안타깝다. '신한카드'로 불리던 시절의 신용운-한기주가 대표적이다.

최근 몇 년간은 불펜 문제가 더욱 심각했다. 짧은 기간 활약을 보여주던 선수는 간간히 있었으나 잠깐씩에 그쳤던지라 돌려막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최영필-임창용 등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노장들이 불펜에서 중심축 역할을 했다는 것 자체가 KIA불펜의 현실을 대변해줬다.

트레이드로 데려온 김세현은 당해 연도에는 쏠쏠한 활약을 펼치며 2017년 우승에 공헌을 했으나 이후 평범한 수준의 불펜투수가 되고 말았다. 김윤동 정도가 김기태호에서 셋업맨, 마무리 등으로 거듭난 젊은 불펜이라고 할 수 있지만 고질적인 제구 불안으로 인해 안정감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야말로 KIA의 불펜 역사는 잔혹사에 가까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최근 KIA 불펜의 갑작스러운 상승세는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젊은 불펜자원들이 집단적으로 각성 모드에 들어가 '철벽 불펜'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직까지 많은 경기를 치르지 않았던지라 '반짝 돌풍'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지만 불펜 불안에 마음을 졸였던 KIA구단과 팬들 입장에서는 지금까지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웃고 있는 분위기다.

강한 불펜진의 요건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마무리라는 중심축이 굳건히 서야 한다. 역대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확실한 마무리없는 '벌떼 불펜'에는 한계가 있다. 강력한 마무리가 버텨주고 튼튼한 승리조가 함께할 때 위력이 극대화된다.

SK 김성근 왕조 시절의 '여왕벌' 정대현과 정우람, 조웅천, 윤길현, 가득염 채병용 등의 벌떼불펜, 선동렬 감독이 만들어냈던 삼성왕조의 '돌부처' 오승환과 안지만, 권혁, 권오준, 정현욱 등의 필승조가 대표적이다.
 
심상치 않은 문경찬, 타이거즈 마무리 계보 이을까?
 
그런 점에서 최근 KIA 젊은 불펜진은 확실한 마무리 후보가 등장했다는 부분에서 더욱 호재다. 1992년생 젊은 우완투수 문경찬이 그 주인공이다. 김윤동의 부상이탈로 갑작스럽게 마무리중책을 맡았는데 기대치를 훌쩍 넘는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문경찬은 올해 22경기에서 23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1.17을 기록 중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마무리 변신 이후의 성적이다. 4월 27일 고척 키움전에서 마무리로 첫 등판하며 9연패 탈출의 선봉에 선 것을 시점으로 11경기에서 1승 6세이브 평균 자책점 0.00의 엄청난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잔뜩 고무된 팬들 사이에서 "09년 유동훈의 재림이다", "오른손 정우람이 탄생했다" 같은 반응이 나오는 분위기다.

패스트볼 최고 구속이 140㎞대 중반 정도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문경찬은 이른바 구위로 찍어 누르는 스타일은 아니다. 언터처블 수준으로 평가받는 변화구도 없다. 초반 마무리로 중용 받을 당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라는 혹평이 나왔던 이유다.

문경찬의 최대 무기는 '자신감'이다. 신인 당시부터 문경찬은 "자신감 하나만큼은 즉시 전력감(?)이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구위 자체가 크게 위력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공격적으로 타자들을 상대했기 때문이다. 보통 지도자들은 어린 투수들에게 "홈런을 맞아도 좋으니 볼넷을 주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만큼 투수에게 있어 자신감 있는 피칭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문경찬은 멘탈이나 자세만큼은 거기에 걸맞는 투수였다. 두둑한 배짱을 바탕으로 자신의 공을 믿고 던질 수 있었다.

군 복귀 후 문경찬은 구속이나 제구력, 운영능력에서 한 단계 발전을 가져왔다. 공격적 자세나 뱃심은 여전했던지라 코칭스탭에서도 주목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중요한 순간 클로저의 역할을 잘해주고 있다. 워낙 인파이터식 피칭을 하는지라 상대팀 타자들도 기다리기보다는 방망이를 적극적으로 낼 수밖에 없고 그러한 상황에서 직구와 변화구를 적절하게 섞어 쓰며 아웃카운트를 늘려가는 모습이다.

이는 전임 마무리 김윤동과도 확실히 비교된다. 김윤동은 구위 자체는 좋지만 피해가는 피칭이 많았다. 제구도 정교하지 않을 뿐더러 이것저것 생각이 많은지라 상대 타자들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위기를 맞는 경우가 잦았다. 11이닝 동안 12개의 탈삼진을 잡는 동안 볼넷이 무려 11개나 됐다.

반면 문경찬은 2배가 넘는 이닝을 소화하면서 23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는데 볼넷은 4개에 불과하다. 얼마나 공격적으로 피칭에 임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문경찬이 소방수로서 든든하게 자리를 지켜준다면 젊은 불펜진의 상승세 지속화는 물론 차후 김윤동이 돌아온다 해도 셋업맨으로 보직을 바꾸어 좀 더 편안한 상태에서 던질 수 있는지라 또 다른 시너지 효과까지 기대되고 있다.

물론 아직은 초보 마무리인 문경찬이 계속해서 방어율 0의 어메이징 피칭을 이어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위기도 있고 실망스러운 순간도 발생할지 모른다. 그러나 문경찬은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다'의 줄임말)' 케이스라기보다는 꽤 긴 시간동안 2군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천천히 올라온 케이스다. 어지간한 시련은 새삼스럽지도 않을 것이다. '불펜진의 신데렐라'로 급부상한 문경찬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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