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어나더 컨트리> 포토타임 중 한 장면.

연극 <어나더 컨트리> 포토타임 중 한 장면. ⓒ 서정준

 
지난 5월 30일 오후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연극 <어나더 컨트리>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이번 프레스콜은 전막시연과 질의응답, 포토타임으로 이뤄졌다.

<어나더 컨트리>는 1982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처음 연극으로 올려진 이후, 호평을 받으며 1984년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작품이다. 톰 히들스턴 등이 데뷔한 신인등용문이자 콜린 퍼스의 영화 데뷔작으로도 알려졌다. 1930년대 영국의 명문 공립학교. 철저하게 권위주의, 계급화된 기숙사에서 자유를 꿈꾸는 '가이 베넷'과 마르크스를 신봉하며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토미 저드'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여러 사건을 겪으며 성장하는 과정을 그렸다.

가이 베넷 역에 이동하, 박은석, 연준석, 토미 저드 역에 이충주, 문유강, 바클레이 역에 이지현, 데비니쉬 역에 강영석, 배훈, 멘지스 역에 이태빈, 파울러 역에 이주빈, 최정우, 델러헤이 역에 김의담, 샌더슨 역에 김기택, 황순종, 하코트 역에 이건희, 워튼 역에 채진, 전변현, Mr.커닝햄 역에 김태한, 윤석원이 출연한다.

국내 언론에 첫 선을 보인 연극 <어나더 컨트리>는 다수의 신인 배우들이 등장한다는 점으로 화제를 불러모았다. 하지만 공연은 그러한 외적인 이슈를 떠나서 퀄리티만으로도 주목할만한 작품이었다. 명문 귀족 자제들이 모인 공간, 그 속에서 이방인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는 가이 베넷과 토미 저드, 그들 사이에 얽힌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인물간의 대립이 무대 위에서 밀도 있게 펼쳐졌다.

작품 전막시연이 끝난 후 윤성은 영화평론가의 사회로 김태한 연출, 배우 연준석, 박은석, 이동하, 이충주, 문유강이 참석해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질의응답 내용을 정리한 것.
 
 연극 <어나더 컨트리> 질의응답 시간. 좌측부터 윤성은 영화평론가, 김태한 연출, 배우 연준석, 박은석, 이동하, 이충주, 문유강.

연극 <어나더 컨트리> 질의응답 시간. 좌측부터 윤성은 영화평론가, 김태한 연출, 배우 연준석, 박은석, 이동하, 이충주, 문유강. ⓒ 서정준

  
- 어떻게 <어나더 컨트리>를 작업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김태한 연출 "사실 <어나더 컨트리>는 이지나 예술감독이 어릴 때 감명깊게 본 작품이라서 언젠가 무대로 올리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저는 연출로 섭외된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그때 당시에도 신인들을 대거 기용하면서 화제가 된 작품이었고, 작품 자체가 가지는 메시지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번에 올리게 됐다."

- <어나더 컨트리>를 만들며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지.
김태한 연출 "연출로서 어렵다기보단 첫 연출이라서 개인적으로 느낀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기성, 신인 가릴 것 없이 많은 배우들과 함께하며 더 즐거웠던 기억이 많고 보람있는 작업이었다."

- 김태한 연출, 배우로 만날 때와 연출로 만날 때 어떻게 다른가.
이충주 "사실 연출님으론 처음 만났지만 친한 형이지 않나. 연출일 때도 그렇고 배우일 때도 그렇고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연출가적인 시선으로 많은 도움을 줬었다. 그래서 더 많이 배우고 소통하고 싶었는데 아예 연출로서 만나서 형님다운 카리스마를 느꼈다. 저희에게 너무 재밌는 건 배우로 오셨을 땐 편하게 '야 야' 하셨는데 연출님이시니 말씀도 진중하게 하시더라. 부드러운 형님의 카리스마를 느끼며 새롭고 재밌게 작품 만들었다."

- 어떻게 작품에 참여하게 됐는지.
이동하 "회사를 통해 제안 받고 대본 읽었는데 무척 흥미롭고 '가이 베넷'이란 캐릭터가 제게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지점이 많아서 꼭 해보고 싶었다. 연습해보니 좋았고 배우나 스태프도 좋아서 모든 게 좋았다. 엊그제 첫 공연을 올렸는데 무대에 선지 1년 반이 넘었더라. 내가 너무 행복하고 기쁘게 하고 있구나 싶다."

- '가이 베넷'이 영화에 비해 많이 밝고 활동적으로 그려진 느낌이다. 하지만 사실은 집안사정, 교우관계 등 복잡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캐릭터다. 어떤 점이 가장 힘들고 즐거웠는지.
박은석 "늘 연기하며 가장 어려운 건 이 인물이 지금 느끼는 감정, 딜레마 등에 가까이 가는 게 어렵다. 매회할 수록 점점 더 인물의 상태에 가까워지고 싶은데 이게 그냥 연습이 길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연습 후, 공연 후 생각하다보면 잠도 안 올 때도 있다. 대사나 상태는 있지만, 거기에 보이지 않는 인물의 상태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연극 <어나더 컨트리> 중 한 장면.

연극 <어나더 컨트리> 중 한 장면. ⓒ 서정준

  
- 그런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박은석 "일단 같은 배역을 맡은 배우들끼리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토론하며 결론을 좀 내린 뒤 연출님께 가서 저희들의 생각을 말씀드렸다. 그래서 한 번 가보자 해서 되면 오케이고 아니면 다시 돌아와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 그렇게 연습 때 리스크를 감안한 많은 시도를 했다."

- 신인배우라고 불러야 할까(웃음). 첫 연극인데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연준석 "연극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은 이전부터 있었다. 오디션 공지가 뜨고 기회가 돼서 참여하게 됐다(웃음)."

- 막상 해보니까 어땠나. 연극과 매체의 차이는.
연준석 "매체도 영화나 드라마 사이에서 차이가 있겠지만 연극은 더 많이 달랐다. 다같이 한 공간에 팀원이 모여서 일주일 이상 함께 이야기를 나누니 친밀감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캐릭터와 자신의 실제 성격을 비교해보자면
연준석 "한 번 친해지면 무척 친해지는데 가이 베넷은 남들 눈치도 안 보고 낯가리는 것도 없다. 원하는대로 행동하는 인물이라서 사실 공통점은 많이 없다. 도전하는 마음으로 임했다."

- 시대나 공간이 영국 귀족 학생들이 기숙사에서 벌이는 이야기다. 2019년의 한국 관객이 봐야하는 이유가 무엇일지.
김태한 연출 "말씀하신대로 시대, 공간이 우리와 많이 다른 문화적 차이가 있다. 그래서 초반에 저도 고민을 했다. 우리 관객들이 어떤 관점으로 이 작품을 바라봐야할까. 그런데 보셔서 아시겠지만 어떤 개인이나 단체의 사소한 가치관이 낳는 부조리, 모순, 그것에서 파생되는 부작용들, 많은 사상들이 충돌했을 때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고민이 극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국가나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하는 고민이 아닐까 싶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고 그런 관점에서 작품을 그려내려고 노력했다."
 
 연극 <어나더 컨트리> 중 한 장면.

연극 <어나더 컨트리> 중 한 장면. ⓒ 서정준

  
- 실력있는 신인 배우를 많이 발굴하자는 목적으로 관심을 받았다. 목적을 달성했는지 자평해본다면.
김태한 연출 "사실 상당히 불안하고 긴장되는 부분이다. 아직 무대 경험조차 없는 배우들도 있고, 정말 경험이 적은 사실상 신인들도 있다. 관객분들이 보셨을 때 익숙치 않은 낯설음은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어쩌면 많이 부족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시도한 건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낯설지만 또다른 모습, 또다른 연기, 새로운 에너지로 표현되는 캐릭터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제 나름대론 충분히 재밌고 보람차고 가치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대성공이라고까진 말씀드리지 못하겠지만 신인들이 무대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기에 계속해서 나아질 거라 믿는다. 충분히 보시는 재미가 있으실 거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 신인 배우들, 오디션 때와 지금이랑 비교해보면 새로운 면을 발견했는지.
김태한 연출 "사실 오디션 때는 대사 몇줄 들어보고 결정해야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지도 많이 생각했다. 목소리 톤, 키, 외모, 연기력 등을 고루 생각하려 했다. 막상 연습 때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하지 못한 다양한 모습이 있더라. 진중할 줄 알았던 친구가 재기발랄하고 엉뚱하기도 했다. 그런 면이 전혀 불편하지 않고 흥미롭게 다가와서 장면 만들면서 많은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 이전 출연작인 <프라이드>나 <수탉들의 싸움>이 떠오르는 면도 있었다. 이 작품만이 가진 매력이 어떻게 다가왔는지.
박은석 "동성애 코드가 있는 작품을 이야기하셨다. 개개인의 이야기도 있고 사회적 분위기에서 억압받는 이야기, 자신이 동성애자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움도 있었다. 가이 베넷은 그런 상황에서 하코트를 만나며 본인이 확신을 갖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극의 중점이 동성애 코드는 아닌 것 같다. 거대한 체제, 사상의 미니어쳐 모델로 만들어진 게 이 영국의 공립학교가 아닐까 싶다.

이 아이들이 생활하는 1시간 50분 속에서 당시 영국의 분위기를 알 수 있고, 어린 17살 아이들이 이렇게 유창하게 고급스러운 말을 하고 있는데 이런 게 어디서 나왔겠나. 부모님, 부모님의 부모님, 그 부모님의 부모님. 1930년대 영국을 이 작은 모델에서 보여주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그 안에서 동성애를 통한 한 아이의 성장이 있다. 또 가이 베넷과 토미 저드 두 사람이 같은 사회에서 서로 다르게 반항하지만 서로 친하게 지내는 점도 좋았다. 무척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텍스트다. 좀 축소한 텍스트도 있어서 아쉽지만, 좀 더 핵심으로 달려가는 내용으로 만들었다.

생각보다 작품이 너무 잘 나와서 연출님께도 신인 배우들께도 놀랐다. 연습하며 가까이서 지켜보니 안되는게 없구나 싶더라. 그런 가능성을 가까이서 보며 저도 많이 배웠다. 정말 좋은 작품을 정말 좋은 과정으로 올린 것 같아서 만족스럽다."

- 폭풍성량, 꿀성대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는 배우다. 뮤지컬과 연극, 연기하는 입장에서 차이가 있는지.
이충주 "저는 이 일을 하며 뮤지컬만 하는 배우가 되고 싶지 않았다. 좋은 작품이라면 연극, 뮤지컬, 대극장, 소극장 가리지 않고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이번에 연극을 했는데 너무 좋은 작품에 참여하게 돼서 감사하다. 노래 없이 연기만으로 부딪히는 이 곳은 제게도 늘 큰 실험대고 많이 배우고 성장하는 곳이다."

- 토미 저드를 만들면서 나눈 이야기가 듣고 싶다.
문유강 "처음에 몇 가지 걸렸던 부분이 있었다. 관객들을 설득할 수 있는 합당한 연기를 보여드려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고민이 있었다. 그래서 저드가 좀 더 설득력있어 보이기 위해 나름대로 인물의 빈틈을 찾고, 그 틈에서 좀 더 사람냄새가 날 수 있게끔 만들려고 했다. 제 생각에 저드는 공리주의자인데 그걸 탐구하는 과정에서 만난 게 공산주의다. 이론적으로는 저드가 바라는 완벽한 면이 있는 게 공산주의니까 그걸 선택하고 신념을 가지며 어떤 결말을 맞게 되는데 그 지점을 어떻게 보여줄까 고민했다. 공산주의에 세뇌된 것이 아니라 본인이 찾는 것에 가까운 게 공산주의였고 그걸 선택하고 믿고 살아가는 모습. 그 지점을 고민하고 이야기했다."
 
 연극 <어나더 컨트리> 중 한 장면.

연극 <어나더 컨트리> 중 한 장면. ⓒ 서정준

  
- 오디션 276: 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됐다. 이 수식어가 부담스럽지 않나.
문유강 "부담이 안 됐다면 거짓말이다. 그래서 주어진 시간 동안 더 많이 고민하고 열심히 했다."

- 한국 초연인데 연출적으로 신경쓴 면이 있는지.
김태한 연출 "원작을 접했을 땐 연극도 영화도 시대적 배경도 그렇고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공립학교 학생들을 표현하는데 좀 어둡고 무겁고 어렵게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었다. 어떻게 주제를 전달하면서도 유쾌하고 위트있게, 가볍지 않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을 생각하며 만들었다. 지루하고 착잡하고 어두운 느낌을 받지 않고 볼 수 있도록 하는데 많이 중점을 뒀다."

- 캐릭터 분석 어떻게 접근하려 했고 캐릭터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나.
이동하 "가이 베넷과 저는 스무 살 가까이 차이난다. 옛날에 10대 때 느꼈던 혼란스러움 같은 게 표현되더라. 저와 베넷의 혼란스러움은 서로 달랐지만 그 기억을 꺼내 대입시켰다. 베넷이 자신의 정체성을 떠올릴 때 제 어릴적 기억을 꺼내 표현하려 했다."

박은석 "당연히 텍스트를 보며 닮은 점, 다른 점을 보고 같은 점은 증폭시키고 다른 점은 줄이려 했다. 매력은 어떤 사람마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수식어가 있지 않나. 그래서 베넷은 우선 자유로운 인물같다. 그렇기에 자신만이 가진 색깔을 제일 먼저 찾으려 했다."

이충주 "너무 냉정하고 시니컬한, 권위적이고 차가운 인물로 보이지 않으려 했다. 어쨌든 그리고 고등학생, 10대 소년이라는 것을 인지해서 이들이 가질 수 있는 감정적 변화를 입체적으로 표현해보고 싶은 게 컸다. 부드럽고 따듯한 카리스마를 가진 친구다. 대사에도 나오지만 많은 저학년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이 친구는 따돌림받는 게 아니라 본인이 원해서 아싸(아웃사이더)가 된 게 아닐까 싶어서 무척 멋있는 친구 같았다. 이런 역을 연기할 수 있어 감사하다 싶을 정도로 말 한마디 한마디가 멋있다. 그리고 사람을 정말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다. 또 베넷을 대할 때도 그렇고 마음이 따듯한 친구기도 하다. 그런 부분이 잘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연기하고 있다."

연준석 "저는 테크닉적으로 캐릭터의 옷을 입고 그런 스타일이 있지 않다. 다채롭고 이해하고 파악하기 어려운 캐릭터라 생각했는데 베넷의 대사를 계속 곱씹으며 연기했더니 어느 순간 자연스레 감정을 이해하게 됐다."

문유강 "저도 이충주 배우와 비슷한 고민이 있었다. 관객에게 설명을 좀 해드려야하기 때문에 외향적인 모습에서도 고민을 했다. 시청작 자료를 많이 활용하며 당시의 모습과 자세 같은 걸 보면서 연구했다."

한편, 간담회 끝에는 배우들이 5회차 매진 공약을 내걸었다. 연준석은 "하코트 역할로 깜짝 출연하겠다", 박은석 "워튼으로 출연하겠다", 이동하는 "크리켓 선수로 나오겠다", 이충주는 "뮤지컬 <킹 아더>에서도 춤을 추지 않는데 여기서 골반댄스를 춰보겠다", 문유강은 "원래 없는 역할인데 베넷과 하코트의 만남에서 레스토랑 직원으로 출연하겠다"며 관객들의 기대를 부를만한 공약을 밝혔다. 이들의 이색공약이 이뤄질 수 있을지 기대가 모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서정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twoasone/)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연극 어나더 컨트리 대학로 유니플렉스 페이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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